정통
G. K. 체스터턴 | 상상북스 | 317쪽
길버트 K.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1874-1936)은 영국의 언론인, 문학비평사, 사회비평가, 역사가, 희곡 작가, 변증가, 논쟁가, 시인, 수필가, 그리고 추리소설가로 활약했던, 20세기 최고 문필가 중 한 사람이다.
체스터턴은 열두 살에는 무신론자였고, 열여섯 살에는 철저한 불가지론자였다. 그는 프리랜서 예술문학 비평가로 활동한 적이 있고, 일간신문 등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는 어떤 개인적이고 절대적인 철학을 발전시켜 나가다, 그 철학이 그리스도교 정통신앙임을 깨닫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는 보통 어깨 망토를 입었고, 쭈글쭈글한 모자를 썼으며, 속에 칼이 든 지팡이를 들었다. 때로는 나이프와 장전한 연발권총을 소지했다. 그는 종종 그가 가야 할 곳을 잊어버렸고, 그래서 기차를 놓치곤 했다. 논쟁을 좋아한 그는,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버나드 쇼, 웰스, 버트런드 러셀 같은 사람들과 정다운 공개토의에 참여하곤 했다.
<정통(Orthodoxy)>은 지난 1,500년간의 도서 가운데 '꼭 읽어야 할 종교 관련 고전 10'으로 꼽힌 책이다. 이 정도의 평가를 받은 책이지만, 이 책을 접한 독자가 그리 많지는 않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브라운 신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의 종교적 추리소설을 먼저 읽었으리라.
체스터턴에 의하면, 이 책은 교회에 관한 논문이 아니라, 붓 가는 대로 써 내려간 일종의 자전적인 글이다. 분명히 이 책은 말랑말랑한 책이 아니다. 물론 그의 작가로서의 재능은 행간에 스며들어 있다. 그는 바깥에 서서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명확하고 논리적인 시선보다는, 내부로부터 인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상상과 편견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다이나믹한 구성과 마음을 낚아채는 역설적 진술들은 그의 장기(長技)다. 그는 "시인은 우주의 일부가 됨으로써 우주를 이해하려 하지만, 논리적인 과학자는 우주를 자신의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범상치 않은 통찰이 빛나는 대목도 눈에 띈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패러다임 또는 중심원리 가운데 하나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불교는 구심적이지만 그리스도교는 원심적이다. 그리스도교는 원을 부수고 밖으로 나간다. 원은 그 본질 내에서는 완벽하고 무한하지만, 그 크기 내에서는 영원히 고정되어 결코 더 커지거나 더 작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다. 십자가는 비록 그 중심에 하나의 충돌과 모순을 가지고 있지만, 네 개의 가지를 끝없이 뻗어나갈 수 있다. 오히려 중심에 하나의 역설을 지니고 있기에 모습을 변형시키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다. 원은 그 자체의 자리로 되돌아오며 갇혀 있는 반면, 십자가는 그 가지가 사방으로 열려 있다. 그것은 자유로운 여행자들을 위한 이정표이다." 그에 의하면 불교 신자는 특별히 집중된 시선으로 내부를 향하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교 신자는 극도로 집중된 시선으로 외부를 노려보고 있다.
이 책에서 체스터턴은 인생이 일종의 모험이기 때문에 황홀경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인생은 일종의 기회이기 때문에 일종의 모험이다. 또 인생은 한 권의 잡지에 실린 연재소설과 아주 비슷하다고 말한다. 인생은 고귀한 천박함으로 연재소설을 모방하며 가장 흥미로운 순간에 멈추고 만다.
체스터턴에 의하면, '정통신앙'은 엄숙하고 지루하고 무사안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착각이다. 이제껏 '정통신앙'만큼 모험에 가득 차고 흥미진진한 것은 없었다. 정통신앙은 건전한 정신에 따르는 것이었고, 올바른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미치는 것보다 더 극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스도교는 가장 침체하여 있을 때조차 현대 사회 전체를 끓어오르게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열광적이다. 그리스도교 교회가 지니는 최소한의 존재 의미는 이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최후통첩에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 사회에는 일종의 불가사의한 생명력이 숨어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는 초자연적인 생명력을 가진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정통>은 특별한 책이다. 체스터턴은 대부분의 정통파 그리스도인들과 달리, 정통신앙을 마치 처음 대하듯 신선한 눈과 경탄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특유의 작가적 성실성과 섬세함으로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고정관념들을 독특한 화법으로 깨고 있다.
체스터턴의 이런 견해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을 쓴 J. R. R. 톨킨(Tolkien)에게, 또 체스터턴의 작품을 읽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는 C. S. 루이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서른 넷이라는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에 집필한 이 책은 그의 독창적 문체와 탁월한 사상을 드러내며 현대인에게 '정통신앙'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