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교회가 희망이다」는 한국교회에 ‘작지만 건강한 교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믿을 뿐 아니라 이를 몸소 실천한, 박은조 목사(은혜샘물교회)의 지난 30년간 여러 차례의 분립개척과 학교·담임목회 사역 등에 대한 보고서이다.
박 목사는 손봉호 교수(전 동덕여대 총장)가 이끌던 서울영동교회 담임목회자로 17년간 봉사하면서 세 곳의 교회를 분립 개척했고, 네번째 분립 개척을 할 때는 자신이 직접 뛰어들었다. 이때 세운 교회가 분당샘물교회다. 이후 그곳에서 14년 섬기던 그는 또다시 성도 150명과 함께 용인 동백 지역으로 떠나 은혜샘물교회를 분립 개척했고, 성도 20명과 판교 지역에서 새롭게 세운 은혜샘물교회도 맡고 있다. 뿌리인 서울영동교회를 포함해 총 12곳의 교회가 한 가족을 이루게 된 것.
그는 자신이 직접 분립 개척지에 뛰어든 것에 대해 “서울영동교회를 17년간 섬기던 저를 교회 개척으로 부르시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제게는 교회 개척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었다”며 “하나님의 생각은 제 생각과 달랐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박은조 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17년간의 목회 자료 파일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만을 따라가는 개척에 뛰어든다. 교회 이름조차 성도들의 선택으로 결정했다. 지금은 그 이름이 좋지만, 당시엔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비전을 갖고 있던 학교 사역, 장애인 사역, 구제 사역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지론은 이렇다.
“교인 1만 명 이상의 대형교회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겠지만, 규모가 작은 교회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교회 분립의 목표는 성숙입니다. 한 교회만 계속 있었으면 교회가 그렇게 자라지 못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2007년 ‘아프간 피랍 사태’ 대한 고백도
박은조 목사나 ‘분당샘물교회’ 하면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지난 2007년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프간 피랍 사태’이다. 박 목사는 이 책에서 사태의 당사자로서 직접 Q&A까지 만들어 가면서 그 ‘오해와 진실’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그는 먼저 “비록 봉사를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이런 일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게 돼 죄송하기 그지 없었다”며 “한국교회가 그 동안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해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많은 분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은 것 또한, 샘물교회를 포함한 한국교회의 책임이라 하지 않을 수 없고 거듭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도 고백한다. “심성민 형제님이 순교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제 방에서 눈을 감고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마음 속에 가득했습니다. … 지금 제 부모요 제 아비인 한국교회가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데, 저는 팔짱을 끼고 ‘하나님, 저는 그런 목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욕을 먹을 사람이 아닙니다’ 이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복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성숙한 대응’도 빠짐 없이 기록했다.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성도들은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켰으며, 이는 하루 네 차례의 기도회와 ‘목장’의 힘이었다고 전한다. 대응 과정에서 피랍자의 부모님들 중 믿음이 없던 이들은 처음에 많이 힘들어했지만, 석방 후에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다”고 고백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피랍됐던 이들 중 일부는 다시 아프간 사람들을 섬기러 다시 떠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프간 사건은 분명 샘물교회의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물교회 성도들은 이 시련을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헌신함으로 잘 극복했습니다. … 순교의 영성은 샘물교회 식구들에게만 주신 가르침이 아니고,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 주님께 온전한 헌신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