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사범대학(현 김형직사범대학) 러시아어 교수이자 북한 로열패밀리의 가정교사에서 서울의 망명 탈북자로, 미국 예일대학의 초빙교수로, 현재는 조지메이슨대 연구교수이자 평양성경연구소(PBI)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김현식 교수의 두번째 자서전 '80년, 7만 리'가 최근 홍성사를 통해 출간됐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이야기 속에는 북한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을 선택해서 80년이라는 오랜 세월, 7만 리라는 긴 여정을 사랑으로 감싸 안고, 때로는 채찍으로 때리면서 끝내는 '평양성경'이라는 목적지로 이끌었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밝히 드러나 있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에게 남겨진 사명, '평양성경'을 완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김현식 교수에게서 평양성경의 태동부터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평양성경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러시아 국립사범대학 파견교수로 있을 때, 내가 묵었던 숙소 바로 옆방에 선교사 한 사람이 있었다. 국적은 미국이지만 남한 출신이었던 그가 어느날 내게 검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표지에 금박으로 '성경'이라 새겨져 있었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말로 된 성경을 받아 든다면 성경은 '성에 대한 책'으로, 구약은 '오래된 약', 신약은 '새로운 약', 창세기는 '창끝의 세기', 레위기는 '레가 처한 위기', 적그리스도는 '빨갱이 그리스도'로, 심지어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는 '열 십(+) 자로 된 선반'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 십자가는 '십자 사형틀'로 해야 통할텐데...
선교사는 분명히 우리말로 된 성경이라고 했는데, 평생 동안 말을 연구하며 살아온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우리말이 성경에 가득했다. 선교사는 내게 하루 열 페이지씩만 읽어 보라고, 그러면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했지만, 나는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던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런 식의 선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무얼 가르치려면 적어도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이 필요할 만큼 한국말과 평양말이 달라졌는가?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1960년대 초에 언어 분야에서 혁명을 단행했다. 그는 해방 직후부터 시작하여 3년간 국민의 80%이상인 문맹자를 가르쳐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연이어 그는 한자어와 외래어를 순수 평양말로 다듬는 운동을 벌였고, 전국적으로 사투리를 없애고 평양말 즉, 문화어로 다듬었다.
이렇게 '사회혁명을 실행하기 위한 유력한 무기'라고까지 말하는 '언어혁명'을 통해 김일성은 최고위층인 당지도일꾼부터 시작해 일반 노동자, 농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가지 말로 듣고 말할 수 있는 언어체계를 확립했다.
또한,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어휘가 넘쳐나는 남한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국민들이 자유롭게 새 어휘를 만들 수 없다. 새 어휘 하나를 만들려면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의 검토를 거쳐, 신문, 방송, TV 등 언론계의 테스트를 거치고 당 중앙의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에 많은 러시아어 전문가들이 핵심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북한의 언어체계가 러시아어 체계를 기반으로 바뀌게 됐다. 러시아어는 과학적일뿐만 아니라 음률이 있어 부드럽게 흘러가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긴 글도 피곤하지 않고 쉽게 읽혀진다. 그렇게 반세기가 지났으니 북한 사람들에게 남한말은 단순히 어휘 몇 개만 바뀐 것이 아니라 새로운 외국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영어 문법 교재도 러시아어 문법에 기초해서 만들어야 북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평양말 대역성경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남한에서 출판된 성경을 그대로 북한에 보낼 수 없는 이유다.
- 평양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나?
평양성경연구소(Pyongyang Bible Institute, 이하 PBI)에서 만들고 있다. 2007년 미국 시카고 위튼대학에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Empower Conference'가 열렸다. 이때 나는 북한 체제의 철학적 기초, 북한 사람들의 의식 구조에 대해 강의하면서 북한의 예수 사상화(복음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평양성경'을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LA 풀러신학교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열렸었고, 이후 평양성경을 쓰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이 계속 늘어나서 그 수가 100명 가까이 되었다. 이런 실정에서 평양성경을 쓸 조직체가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2008년에 PBI가 결성됐다.
PBI의 사명은 북녘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평양말(북한 표준어인 문화어)로 된 성경을 써내는 것이다. 또한 영어학습을 통해 조국 통일에 기여하도록 북녘 학생과 지식인들을 돕는 데 있다. 어학·신학·법학·과학 분야의 전문가들과 박사과정 학생들이 번역과 심의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 한국말 성경이 아닌 영어성경을 직접 평양말로 번역하게 된 이유는?
원래는 남한에 있는 성경을 평양말로 다듬어 보려고 했지만, '지금의 성경에서 한 단어, 한 획, 한 점도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부딪혀 진행할 수 없었다. 따라서 PBI는 영어성경을 직접 평양말로 번역하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어성경 The NET Bible(New English Translation, 2011년판)을 평양말로 번역하다가, 2013년 8월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읽히고 있는 NLT(New Living Translation, 2007년판)의 번역 저작권을 미국 틴데일(Tyndale) 출판사로부터 얻어 번역을 시작했다. 앞으로 PBI는 NLT 성경의 신·구약 전체를 번역해 나갈 예정이다.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는 영어-평양말 대역성경은 구약인 <예수 전편>과 신약인 <예수 후편>으로 나누어 나가게 된다. 처음에는 분책으로 출판하다가 나중에 모든 분책을 한데 묶어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이미 번역이 완료된 첫 분책, 영어-평양말 대역성경 <하나님의 약속:요한>도 최근 출간됐다. 현재는 누가복음 번역이 거의 완료된 상태다.
-영어 교재 형식인 대역성경으로 평양성경을 출판하는 이유는?
북한은 지난 60년간 "기독교와 성경은 무저항주의자를 낳게하는 아편이고, 선교사는 침략의 앞잡이다"라는 구호 아래 반기독교적인 사상교육을 해왔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은 북한이 개방되고 그들에게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다 해도 교회에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경을 읽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에는 단순한 성경이 아닌, '영어 교재' 형식의 성경을 전해야 한다. 영어/평양말 대역성경은 의역이 아닌 직역으로 되어 있기에, 러시아어를 배운 북쪽의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혼자 공부하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성경 내용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한 마디.
지금 북한 국민 모두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기독교인들이 모시는 하나님, 예수님보다 더 높은 진짜 신으로 믿고 따르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북한의 실정이 우리 기독교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인간을 진짜 신보다 더 높은 신으로, 인류의 태양으로 만들어 믿고 따르게 하는데, 기독교인들은 실제로 살아계신 신이신, 하나님을 어떤 식으로 믿고 따르는가. 나는 기독교인들이 북한의 이러한 실정을 직시하고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따져 보며 통렬히 반성함으로써 새로운 믿음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후에 평양에 간다면.
내가 평양에 가면 40년 동안 키웠던 제자들, 그리고 그 제자들의 새끼 제자들이 수만 명은 될 것이다. 내가 그 선두에 서서 "예수 사상을 배우러, 교회당 앞으로!"라는 구령만 한 번 지르면 그 수만 명이 다 따라나설 것이다. 바로 이를 위해 하나님이 나를 사범대학에 보내셨고, 이처럼 크게 키워 주신 것이다. 내가 평양에 돌아갔을 때, 북한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산 증거가 되고 싶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으나 지난 60년간 북한의 반기독교 정책으로 완전히 기독교 황무지가 되어 버린 북한 땅에 평양말로 번역된 성경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감으로써, 그 땅에 예수 사상화(복음화)의 생기가 솟아오르고,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믿음과 흠모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리라 확신한다.
PBI는 평양성경을 번역 출판하는 데 이제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더 많은 믿음의 식구들, 특히 남한과 미국의 교회들과 젊은이들이 이 성스러운 일에 힘을 보태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김현식 교수는>
1932년, 함경남도에서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 시작때까지 믿음으로 성장했다. 함흥 영생중학교 졸업 후 흥남고급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참전했으나, 다음 해에 전선에서 큰 부상을 당해 의병제대했다. 전쟁 중에 개교한 평양 김형직사범대학(당시 평양사범대학)에 입학해 러어러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젊은 나이에 김형직사범대학 교수로 섰다. 북한의 교육 분야 핵심 간부로서 김일성의 교육실험 담당자로, 김정일의 고교 시절 러시아어 과외 지도교수로, 김일성 두 처남 자녀 과외 교육을 20년 가까이 담당했다.
러시아 국립사범대의 조선어 파견교수로 있던 중 진퇴양난의 상황에 직면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남한으로 망명했다. 그 후 통일정책연구소(이사장: 황장엽) 연구위원 등을 지내며,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한국 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과 국가정보대학원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북한에서 러시아어 교과서 및 사전 등을 집필한 그는 남북 언어 차이를 조사·연구한 《남북 통일말 사전》을 집필하는 한편, 북한 학생들의 국제화 교육을 위해 '영조사전 보내기 운동'을 추진했다.
급성 뇌출혈로 왼쪽 팔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이후, 남한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도미하여 《남과 북이 함께 읽는 성경이야기》를 집필하며 '평양성경' 출판 사역을 위한 기초 작업을 시작했다. 예일대 초빙교수로 3년간 북한 사람들의 의식구조, 김일성과 김정일의 후대 교육론을 강의했으며 하버드, 미시간, 듀크 등 50여 개 미국 대학에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강연을 해왔다. 현재 조지 메이슨대 연구교수이자 평양성경연구소(PBI)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열네 살 때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목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절대 순종'하는 그의 곁에는 어머니를 꼭 닮은 아내 김현자가 있다.
<평양성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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