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사

폴 존슨 | 포이에마 | 892쪽

"기독교 없는 인류는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가 만들어낸 문화의 기세가 주춤해진 것도 사실이다."

총 3권으로 구성된 <2천년 동안의 정신(살림)>이 포이에마에서 <기독교의 역사>로 다시 태어났다. 저자인 폴 존슨은 <모던 타임스>, <르네상스>, <창조자들>, <윈스턴 처칠의 뜨거운 승리>, <예수 평전> 등 장르를 넘나들며 방대한 집필활동을 해온, 영국의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저자는 '예수 종파의 출현'부터 최근 소식을 전하는 '끝나지 않은 역사'까지 말 그대로 2천년간 기독교의 역사를 거시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방대한 자료를 아우르는 20여년간의 연구 끝에 포괄적인 정보들을 버무려 1976년에 나온 이 작품은, 2천년 기독교 역사를 단순히 '성령의 역사'라는 말로 더 이상의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고, 당시 사회·정치적 상황들도 고려하면서 보여주고 있다.

그 덕분에 내부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빛과 그림자'를 균형있게 짚을 수 있다. 심지어는 모두가 혐오하는 부끄러운 '그림자'마저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프로테스탄트가 무기력하게 나치에 협력하게 된 원인에 대해 "독일의 프로테스탄트들은 루터 이후로 단 한 번도 국가에 반기를 든 적 없이 국가를 위해 헌신해 왔고, 스스로를 공무원처럼 생각했다"며 "히틀러는 이처럼 독특한 역사 전통의 수혜자였던 셈"이라고 항변한다. 어쩌면 히틀러가 이를 교묘하게 이용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저자의 '소속'이 '보수 가톨릭'인데도 '종교개혁'이나 그 이후 개신교의 역사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고, 그 '덕택'으로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파악할 수 있다.

2000

폴 존슨은 "그 동안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기독교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사상은 없었다"며 "2천년이 지나도록 서양 사회에서 기독교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독교 없는 인류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 이유로 그는 "기독교는 탄생한 순간부터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다른 어느 것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을 정도로, 교회의 태동과 발전 과정은 사회와 밀접히 관련돼 있었다"며 "기독교는 처음부터 보편주의의 성격을 띠고 출발했고,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범세계적 구조로 개편하여 모든 민족의 종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며, 오리게네스는 기독교 형이상학을 대중들의 열망에 맞게 삶의 철학으로 확대시켜 기독교가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 파고들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오늘날 기독교가 만들어낸 문화의 기세가 주춤해졌다"면서, 그 이유를 "기독교가 제공했던 역동성으로부터 대학살과 고문, 편협성과 파괴적 교만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자'도 그에게는 이 방대한 글을 쓰게 만든 하나의 동기였다.

이러한 현재의 기독교에 대해 저자는 특히 '세속화의 물결'의 악영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공적 기독교' 관념을 무너뜨리고, 대신 사적 기독교의 지성을 강조하는 '에라스무스적 관념'과 개별 기독교인이 도덕적 변화를 이루는 능력에 대한 '펠라기우스적 강조'에 맞추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기독교는 서구화라는 껍질을 벗고 신선한 정체성을 형성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기독교는 인류를 안전하거나 행복하게 혹은 위엄있게 만들어주지는 못했지만, 무엇보다 '희망'을 주었다"며 "기독교는 실질적인 자유를 엿보게 하고 차분하고 합리적인 존재를 암시해주면서 '이 세상을 문명화하는 동인(動因)이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인류의 야만성으로 기독교가 왜곡돼 있다 해서 기독교에 포함된 아름다움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그리고 기독교가 가르치고 있는 신격화를 소망하고 있기 때문에 덜 열등하고 덜 비천해질 수 있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독교의 스펙트럼을 유럽과 미국을 넘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까지 확대시켜 연구했지만, 오늘날 세계 기독교에서 적지 않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은 역자인 김주한 교수(한신대)가 달래주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기독교는 짧은 역사에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성장했고, WCC 제10차 총회가 우리나라 같은 신생 교회 지역에서 열린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기독교의 위상과 역량을 세계 교회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은 막대했고, 기독교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주류 종교로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그는 또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비난과 불신의 대상이 됐는데, 아무쪼록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내고 기독교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