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라합은 자신이 살던 여리고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정탐 왔던 이스라엘 남성들을 숨겨주었다. 이들은 감시를 피해 무사히 탈출한다. “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수 2:15)”.
그런데, 성벽 위에 집이 있었다니? 그러나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성벽 자체를 집의 벽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왜 하필 라합은 많은 집들 중 그런 집을 골라서 살았을까? 가난해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손님’들의 마누라가 들이닥칠 경우 줄행랑을 칠 수 있는 완벽한 비상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정탐꾼들은 마치 그런 남정네들처럼 창문에서 밧줄을 타고 도망친 것은 아닐까.
고고학자들이 발굴해낸 당시 집들은 매우 밀집돼 있었고, 무척 혼잡스럽고 구불구불하고 좁은 골목들이 사이사이에 있었으며, 문가에는 작은 마당도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여가 생활이나 다른 작업, 빨래 같은 것을 널 수 있는 공간이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붕은 종종 무엇을 쌓아놓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떠오르는 장면.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수 2:6)”. 두 정탐꾼을 지붕으로 보낸 라합은 마침 지붕에 있던 삼대(flax), 즉 세마포나 아마포라 불리는 더미를 사용해 이들을 숨길 수 있었다.
이렇듯 생활에 요긴하고 훌륭하게 쓰였던 지붕이, 어느 한가로운 이에게는 ‘옆집 여인’의 목욕 장면을 몰래 엿보는 곳이 됐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삼하 11:2)”.
전쟁터에서 부하들이 목숨 걸고 싸우고 있을 때, 다윗은 오후 내내 낮잠을 잤는지 저녁 때가 돼서야 침상에서 일어나 지붕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이렇듯 당시 부유층들에게 지붕은 한가로움과 관계 있는 여가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살던 예루살렘 왕궁 곁에는 맨눈으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가옥들이 있었으며, 이곳에는 우리아 같은 장수급 인물이 살고 있었다.
‘출애굽 후 광야를 떠돌던 백성들은 어떤 옷을 입고 하루종일 무얼 했을까? ‘한 방에 훅 간’ 골리앗은 정말 성경대로 그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었을까? 성경에는 왜 그렇게 ‘근친상간’이 자주 나올까?’ 이처럼 성경을 읽다 보면 모세나 다윗이 살던 당시 생활상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러한 궁금증에 ‘뒷골목 전문가’인 기민석 목사(공주꿈의교회)가 「구약의 뒷골목 풍경(예책)」으로 답했다.
저자는 마치 ‘직업병’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와 사회, 생활상을 재구성하면서 성경을 읽어내려갔다. “성경은 신앙의 유산을 전수하기 위해 적힌 책이지만, 우리가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그 소설적 감흥 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역사적 정보와 풍속을 발견하듯 성경을 통해서도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사회, 생활 풍경을 엿볼 수 있다.”
기 목사는 위에서 소개된 ‘집’ 외에도 가재도구나 먹거리, 의복과 성(性), 장신구와 화장, 장례와 결혼 풍습, 농사, 전쟁과 여가 활동에서 정치제도나 당파, 법률까지 본문 속에서 단서를 찾고 고고학적 자료를 동원해 풍성한 읽을거리를 만들어 냈다.
‘인문학으로 성경 읽기 시리즈’ 첫번째 결과물인 이 책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화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종교개혁 이래 이어진 “성경을 그 시대적 배경에서 읽어야 한다”는 관점에 입각해, 성경 속 고대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저자는 영국 킹스 칼리지 유학 시절에도 뒷골목을 좋아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런던을 소개하러 나서면, 빅뱅이나 트라팔가 스퀘어 같은 빤한 곳보다 자그마한 임뱅크먼트 가든에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같이 먹고 템스 강변의 어느 후미진 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2년 전 두란노 30주년 기념 문학공모전에서 「예언자, 나에게 말을 걸다」로 우수상을 수상한 실력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