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부의 48년 동안의 일기입니다. 그런데 그 주부는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유학을 마친 후, 이화여대에서 교육학 석사, 그리고 백석대학에서 상담학 박사를 받고 서울사이버대학 가족 상담학과 교수를 하는 엘리트이고, 남편은 올해 은퇴한 이승한 전 홈플러스 회장입니다. '나와 상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일기를 썼구나! 남편의 대기업 회장 은퇴 기념으로 작성한, 넉넉한 주부의 회고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의 일기를 읽어 보면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남편을 참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 딸에 대한 따스한 어머니의 모습, 주님을 사랑하는 마리아 같은 순수한 모습이 글 속에서 느껴집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들까요? 진실하게 썼기 때문일 겁니다. 무언가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으로 기록했다면, 분명 글에서 향기가 느껴지지 않았을 겁니다.
38년 전 청년 이승한을 만나 결혼한 그녀는 믿지 않는 남편과 교회에 간 것이 참 감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1975년 7월 6일 일기에 이런 글이 있네요. "주일날 1부 예배에 가 주는 것을 약속받았다. 어제는 60%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오늘 그에게 응석 부리며 간청하자 들어주겠다고 했다. '지금은 좀 고단하고 잘 모르겠더라도 언젠가는 우리 부인 말이 맞았다고 할 날이 올 거예요.'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부탁하고 원하는 것은 모두 다 들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교회에 나가고 싶다기보다 내가 그토록 원하니 들어주는 것 같았다. 주님, 그에게도 저에게도 믿음 더욱 주시어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주님의 빛을 드러내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삼성 비서실에서 일하는 바쁜 남편에게 주일예배만은 지켜 달라고 부탁하는 아내, 아직 믿음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소원이니 들어주겠다는 남편, 그리고 그 남편과 아름다운 믿음의 부부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허니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들 성주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맙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체육 시간에 넘어져 한순간에 의식을 잃었고 중환자실에서 투병하게 되었는데, 1년 후 하늘로 떠난 겁니다. 그리고 1년 후 저자는 위암 선고를 받는데, 1988년 4월 6일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 내시경을 하고 왔다. 위암이라고 한다. 성주를 떠나보낸 후, 난 이미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위암 선고를 받았는데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으니 말이다. 암 선고를 받고 나와, 기다리고 계시던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응, 암이래.' 웃으며 말하는데 엄마가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진찰실로 뛰어 들어가셨다. 나를 이처럼 사랑하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승한 씨, 그리고 귀여운 딸이 아니라면 사랑하는 아들이 있는 그곳, 더 좋은 그곳에 가고 싶다."
그래서 저자는 남편을 만나 결혼한 20代를 '사랑의 계절'이라고 표현하고, 아들을 잃은 30代를 '시련의 계절'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40代를 '안식의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해주는 남편과 딸의 배려 때문이었지만, 무엇보다 신앙적인 부분에서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1993년 3월 10일 일기 중 일부입니다.
"아들이 떠나간 지 6년이 되어 간다. 그 애가 떠난 후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이던 신앙이 많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즈음 다시금 차곡차곡 신앙을 정리해 가고 있다. 첫째, 주님의 깊고, 넓고, 크신 뜻은 인간의 제한적인 시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둘째, 주님 앞에 내가 고통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다는 교만을 버리고 축복을 주신 자도 주님, 빼앗아 가실 권리가 있는 것도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셋째, 타는 풀무불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더라도 나는 주님을 버릴 수 없노라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조금이나마 소유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더라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던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어느 정도 비틀거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엘리노아 루스벨트'의 이 말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Yesterday is a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Only the Present is the Present(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만이 선물이다)." 그래서 오늘을 선물로 만들기 위해 50代를 '배움의 계절'로 삽니다. 교회에서 학교 설립 계획이 있었기에 교육학 공부를 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학교 설립의 계획이 무산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래, 이 나이에 무슨 공부를 더 해. 건강도 좋지 않은데...,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뜻인가 보다.' 그런데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상담학 박사 과정 공부를 시작합니다. 건강 때문에 남편의 반대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배움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60代를 '비전의 계절'로 상담학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저자는 비전을 통해 기쁨(JOY)을 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Jesus, the first. Others, the second. You, the third(예수님을 첫번째로 섬기고, 이웃을 두번째로 섬기고, 세번째로 나를 키울 때 진정한 기쁨과 비전이 온다)." 참 멋진 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흔히 우리네 삶을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네 글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조금 달리 표현하고 싶다. 우리 삶은 사랑을 더하고 무관심을 빼며 감사를 곱하고 위로를 나누는 것이라고."
참, 왜 이 책의 제목이 '오리의 일기'인지를 말하지 않았군요. 신혼 때 남편이 저자를 '오리'라고 불렀습니다. 삐칠 때 입을 쑥 내민다고 해서 디즈니랜드 영화에 나오는 오리에 비유하며 불렀는데, 그것이 저자의 애칭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배우자를 뭐라고 부르시나요? 오래 전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이 생각나네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문제를 냅니다. "당신과 나 사이를 내 글자로 뭐라 하지?" "평생원수" 너무 태연하게 대답하던 그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저는 올해 우리 성도들과 '영성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묵상하며 그 분 안에서 행복해지기를 소망하며 진행 중입니다. 주일 오전 대그룹 예배를 마치고 소그룹 예배 시간에 영성일기를 노트에 기록하고 있고, 주중에도 공책과 홈페이지 영성일기 코너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일기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네요. 주님과 함께 쓰는 '영성일기'로 우선은 영혼이, 그리고 가정과 일터 신앙의 문제까지 모두 힐링(Healing)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늘뜻섬김지기 이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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