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세대학교에는 새터민 학생동아리 ‘통일한마당’이 있다. 통일한마당은 연세대 정종훈 교목이 시작했고, 2006년도부터는 전용관 교수(사회체육학과)가 이끌고 있다. 통일한마당 새터민 학생들은 매주 한번씩 모여 친교를 다진다. 그런데 이 모임을 시작한 정종훈 교목이나 전용관 교수나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보니, 이 모임은 상당히 기독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초에는 미국 6개 주를 돌며 미국교회에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집회에서 간증했고, 올해는 캐나다 원주민 선교에까지 합류한다.

5월 셋째주, 통일한마당 정기모임에 참석했다. 이날 전용관 교수는 새터민 학생들에게 올 여름에 떠날 캐나다 원주민 선교에 대해 브리핑했고, 여기에 참석했던 다수의 학생들이 참가신청서를 냈다.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 이들이, 이제는 문명에서 소외된 캐나다 원주민에게로 간다. 정기모임을 마친 이후 신촌의 한 식당에서 새터민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사실 통일한마당의 모든 새터민 학생들이 깊은 신앙인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통일한마당에서 활동하면서 신앙적인 개념과 사고에 대해 상당히 익숙해져 보였다. 말에는 아직 북한어투가 남아있었지만, 대화 내내 명랑한 분위기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들은 대부분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기독교 메시지 중 ‘원수를 사랑하라’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했다.

-남한과 북한 청소년들의 가장 큰 차이가 뭐라고 보는가? 주체사상 대신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웠나?

(16세에 탈북해 중국에 머물다 남한으로 온 20대 자매가 대답했다. 이 자매는 다른 학생들보다 어릴 때 남한으로 와서 그런지 대화가 수월했고 가끔 다른 학생들과 의사소통이 안될 때 기자에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나는 청소년기에 탈북해서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남한과 북한 청소년들의 차이점이라면 개인주의의 정도 같다. 북한 아이들에겐 영웅심리가 있다. 즉 ‘자기가 가치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한 친구들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었다.

주체사상을 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북한에 있을 때, 처음엔 주체사상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였는데, 점점 살기가 힘들어지니까 ‘과연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정말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산다는 것을 알까’라는 일종의 회의감이 들었다. 특히 1996년 북한이 가장 힘든 시기에는 더욱 그랬다.”

-남한사회에 적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3~4년 전에 탈북한 20대 중후반 형제가 대답했다.) “이곳은 북한과 다른 사회체제 즉 경쟁사회다. 여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도태되면 안된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감이다.”

-남한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2000년도 이후에 남한으로 들어온 한 자매가 대답했다.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이 자매는, ‘저 자매에게 힘들었던 과거가 정말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활발하고 밝은 성격을 갖고 있었다.) “자유다. 내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북한도 제한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선택의 폭이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이 좁다.”

-기독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90년대에 탈북해 중국에 수년간 있다가, 2004년 정도에 남한에 온 형제가 대답했다.) “나는 중국에서 삼자교회를 다니면서 기독교를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기독교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김일성은 성경 구약에 나오는 아주 나쁜 왕들과 같은 사람이다. 나는 그를 결코 사랑할 수가 없다.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손 목사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았다고 들었다. 나는 손 목사님처럼 할 수 없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실 때만 가능한 것 같다.

북한은 암흑의 땅, 자유가 없는 땅이다. 최근 북한이 해외 외교관들에게 자녀들을 귀국시키라는 명령을 했는데 아무도 자신의 자녀를 귀국시키지 않았다. 그들도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니 그 땅으로 돌려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본 기독교에 관해 말해 달라. 그리고 이번 캐나다 원주민 선교에는 왜 동참했는가.

(2000년도 이후에 남한으로 들어와, 지금은 가정을 꾸린 형제가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을 잘 모른다. 그런데 기독교가 하는 일을 보고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한 사회에서 불쌍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곳은 교회다. 나라가 새터민들, 외국인노동자들을 보살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도 기독교 메시지 중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너무 어렵다. 나는 김일성을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이번에 캐나다를 가는 가장 큰 이유는 해외경험을 해 보고 싶어서다. 북한에서 해외여행이란 상상도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캐나다 원주민들에게 내가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내가 하나님을 전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새터민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전용관 교수에게 “새터민 학생들에게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전 교수는 “이 학생들이 북한, 아시아, 중동 등 아직 어두운 땅의 선교사로 파송되길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압제받고 고통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 죽음까지 경험했던 이들이, 그 누구보다도 고통받는 영혼들을 잘 이해하고 품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