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출신 30대 목회자들의 ‘본질적 메시지’들이 한국 기독출판계를 강타하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아직 ‘얼굴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나이’의 이들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핵심을 곧바로 찌르면서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일으키고 있으며, 각각 입양(데이비드 플랫)과 투병(매트 챈들러)으로 ‘이야깃거리’도 풍부하다.
예수님 사역 당시와 같은 연령대인, 이들의 메시지를 좀더 가까이 들여다 보자.
우리가 잃어버린 기독교의 심장, 완전한 복음
SNS를 통해 ‘완복이’라 불리며 출간 한 달도 되지 않아 대학 레포트 제출용 과제로까지 등극한 <완전한 복음(새물결플러스)>. 원제는 다소 낯선 단어인 ‘the Explicit Gospel’로, ‘분명한, 명쾌한, 솔직한’ 등의 의미다. 1974년생 매트 챈들러(Matt Chandler)는 로마서를 토대로 ‘땅에서 바라본 복음’과 ‘하늘에서 바라본 복음’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심리치료적 조언과 도덕주의적 교훈’을 넘어선, 말 그대로 ‘완전한 복음’으로의 회복을 역설한다.
1백명 남짓의 쇠락해가던 댈러스 빌리지교회(The Village Church)에 2002년 부임한 매트 챈들러 목사는 이를 1만명 이상의 ‘멀티사이드 교회’로 이끌었다. 챈들러는 2009년 추수감사절 오전 갑작스레 발작을 일으켰는데, 이후 1년여간 악성 뇌종양과의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메시지는 에둘러가지 않고, 성경 그대로를 강력하게 전하고 있다.
1부 ‘땅에서 바라본 복음’은 복음의 능력, ‘완전한 복음’이 한 사람을 어떻게 바꿔놓는지에 집중한다면, 2부 ‘하늘에서 바라본 복음’은 사영리, 즉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어디로, 어떻게 이끄시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후 3부에서는 둘 중 한쪽으로 치우친 모습, 즉 ‘땅에 매인 복음’과 ‘하늘에 매인 복음’에 대해 경고하면서 특정한 행동 양식(종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복음)으로 변화되기를 촉구한다.
저자는 십자가가 구원의 그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에도 스스로의 힘이 아닌 그 ‘부활의 능력’이 끊임없이 필요함을 1부에서 상기시킨다. 그 복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이 만나는 그곳, 은혜와 진노가 교차하는 장소인 ‘십자가’이다.
그는 매년 교회에서 성도들을 향해 사역자들이 ‘연두교서’라 부르는 선언을 발표한다. “만일 여러분이 생각하는 교회가 뷔페식당 같은 곳이라면, 다른 곳으로 가서 드십시오.” 듣는 사람의 반응을 고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복음의 메시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기독교를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큼 멋있는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복음에 대한 반응이 복음은 아니며, 가감 없는 복음이 능력의 복음이다. 이는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부터 이어지는 ‘주권’을 신뢰할 때 가능하다.
이처럼 1부 ‘땅에서 바라본 복음’만 봐도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강력하다. 2부 ‘하늘에서 바라본 복음’은 3부 ‘하늘에 매인 복음’의 위험성을 통해 좀더 파악이 쉽다. “땅에 매인 복음의 위험이 본질적으로 종파주의라면, 하늘에 매인 복음의 위험은 혼합주의다. 땅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선교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반면, 하늘에 너무 오래 머물면 교회와 세상의 구분이 불가능하게 된다.” ‘하늘에서 바라본 관점으로’ 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다, 복음에 그리스도가 빠지거나 문화를 우상시하고 심지어는 ‘복음 전도’를 포기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저 착하게 살면 언젠가는 우리의 근본이 ‘그리스도’임을 알 거라며, ‘복음’을 추정하게 만들지 말고 “복음을 살고 복음에 대해 말하고 복음을 설명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도록 도울 것”을 촉구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단순한 도덕군자로 알게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용서받고 변화된 사람임을 알게 하라는 것. “사람들이 이런 복음을 알고 있으리라고 추측하면 절대 안 된다. 대신 완전한 복음을 우리의 위대하신 왕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허락하신 모든 힘과 사랑으로 신실하게 살아내고, 진실하게 선포하자.”
뒤에 소개할 <팔로우 미>의 데이비드 플랫 목사도 추천사를 남겼다. 그는 “이 책을 읽고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위대하심에 압도되기를, 그래서 이제 삶의 모든 영역과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 복음을 명쾌하게 드러내는 데 당신의 인생을 사용할 수 있기를 온 맘 다해 바란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현재 아픔을 겪고 있는 새들백교회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올해 단 한 권의 책을 읽을 계획이라면 단연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만큼 중요한 책이다”라고 평했다.
죽으라는 부르심, 그리하여 살라는 부르심
전작 <래디컬>을 통해 많은 독자들의 이름에 각인된 1979년생 데이비드 플랫(David Platt)은, 신작 <팔로우 미>를 통해 ‘팔로잉’만 하지 말고 ‘팔로워’가 될 것을 주문한다. 출간 2년 만에 1백만권이 팔린 <래디컬>이 현대 문화와 교회 안에 널리 퍼져 있는 복음과 상반된 가치와 사상을 드러내는 데 힘을 기울여, 예수를 따르려면 마땅히 버려야 할 세상에 속한 사고방식과 요소들을 하나 하나 짚었다면, <팔로우 미>에서는 그 다음 단계를 목표로 삼는다. 저자 자신의 말에 의하면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에서 “누구를 붙잡아야 하는가?”로 시선을 돌렸다고 한다. 그 ‘누구’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다.
앨라바마 브룩힐즈교회(The church at Brook Hills) 담임목사인 데이비드 플랫의 메시지도 매트 챈들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복음의 본질을 붙들고, 2000년 전 제자들처럼 목숨까지도 내놓은 채 주님을 따르라는 것. 그는 복음과 비(非)복음, ‘완전한 복음’과 그 이후에 따라오는 것, 부차적인 것들을 명확히 구분할 것을 명령한다. 그는 무슬림 지역에서 기적적으로 일어나는 ‘제자들’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능력의 회복을 꿈꾼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질병 치료나 물질적인 번영 따위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예수님은 병든 몸을 고치실 수 있으며, 고통스러운 질병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셨다. 하지만 그건 복음의 핵심이 아니다. 발 닿는 곳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세요. 건강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습니다’라고 부르짖지 않는다. 그건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고 위대하다.”
그는 단호하게 계속해서 말한다. “주님의 복음은 병이란 병은 죄다 고쳐주시겠다는 게 아니라, 모든 죄를 영원히 용서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열심히 믿어서 일정한 수준에 오르기만 하면 세상에서 건강하고 넉넉하게 사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영원토록 화목하게 교제할 수 있다는 게 주님의 복음이다.”
그는 실제로 카자흐스탄과 중국에서 두 아이를 입양한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의 양자된 우리’에 대해 실감나게 전하기도 한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단순명료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생후 10개월짜리 사내아이가 부디 카자흐스탄으로 찾아와 자신을 가족으로 맞아 달라고 초청한 게 아니다. … 전적으로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갓난이가 우리를 찾아온 게 아니다. 그를 추적해 간 건 순전히 부모 편이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나 자신을 통째로 바꾸면서 그 분을 따랐다면, 이제 당당한 모습으로 ‘나를 따를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첫 제자들 12명은 곧바로 120명으로 불어났고,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세포분열하듯 그들을 4백 배 이상으로 만들어냈다. 조건은 언변이나 사회적 지위,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전혀 아니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의 권능을 덧입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두루 다니며 제자를 삼았던 것”이다. 이는 그저 ‘영접기도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당신 자신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까지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