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 지적 장애인에게 성례를 베풀라
김홍덕 | 대장간 | 160쪽 | 9,000원
“지적 장애인에게 성례를 베풀지 않는 교회 목회자님들께 호소합니다. 제발 한 번만 지적 장애아를 둔 부모의 처지에서 생각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사실은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성적이 되지 않는 아이를 특별전형으로 합격시켜 달라고 떼쓰는 느낌이 드니까요.”
지난 1997년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늦둥이 딸 ‘JOY(조은)’을 키우다 아예 딸의 이름을 딴 ‘조이장애선교센터’를 세워 발달장애인들과 삶을 나누고 있는 김홍덕 목사는, <교회여! 지적 장애인에게 성례를 베풀라(대장간)>를 통해 묻는다. “어떤 성경적 근거로 지적 장애인에게 성례(세례와 성찬)를 거부하십니까?” 깊은 생각 없이, ‘관행이니까’ 그렇게 해 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지적 장애인들에게 성례를 베푸는 교회를 방문하시거나, 그들의 소리를 한번 들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그는 지적 장애인들에게 성례를 개방하는 것은 결코 그들에게 특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유아세례를 베풀면서도 지적 장애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면, 그건 자신들 신학에도 충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적 장애아를 둔 부모들에게 이들의 ‘구원과 세례’ 문제는 마치 자살자 유가족들에게 ‘자살자의 구원 여부’처럼 민감한 부분이다. 저자인 김 목사는 물론 “성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적 장애아의 손을 잡고 교회를 가는 부모의 마음은 여러 모로 착잡합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지적 장애아를 데리고 교회를 나가는 데는 여전히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적 장애아를 둔 부모의 마음을 찢어놓을 때는 정작 따로 있습니다. 성례 주일입니다.”
어느 장애아의 이야기란다.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세례를 신청했습니다. 세례 문답에 번번이 낙방했습니다. 미리 나눠 준 세례 문답 문제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는 이유입니다. 하늘나라 가는 데도 이렇게 입시가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교회 가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 하루종일 찬송을 흥얼거리는 아이, 그런데도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떡을 받을 수 없는 성찬식을 대할 때마다, 마치 아이를 땅에 떼어놓고 혼자 천국에 올라가려 애쓰는 못된 부모가 된 심정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이슈도 지적 장애인 가족들에게 가시 같은 질문이라고도 토로한다. 구원 문제를 논하는 기존의 신학적 질문이 하나님을 아는 ‘지적 능력 유무’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7조)을 언급하며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부여받았고, 인간이 지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데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며 “우리는 하나님 형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이해해야 하고, 바울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성령을 통해서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적 장애인도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예정 안에 있고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뤄지므로 예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은 모두 구원의 초청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때 소위 ‘소외된 자’들을 품으셨으므로 당연히 지적 장애인도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게 결론이다.
‘지적 장애인이 성례전에 참여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를 대라’는 이들에게는, “참여할 수 없는 근거를 먼저 대라”고 일갈한다. 세례가 구원의 ‘인증서’나 ‘면죄부’도 아닌 입장에서 보면, 세례를 배제할 ‘결정적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차라리 요즘 소위 예상문제를 배부하고 외워 맞추는 식의 세례 문답이 오히려 신앙고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했다.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방법이 없는 중증 장애인들에게는 어떻게 하겠는가?” 신앙고백 측정 방법으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적극 사용할 필요도 있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구약 율법에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일부 ‘제약’ 때문에, 한때 교회는 ‘장애’를 하나님의 ‘형벌’ 또는 ‘부정한 사람이 가지는 것’으로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장애인들도 교회에서 비장애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 ‘장애신학’이 따로 필요치 않게 되는 그날, 신학도 ‘장애’가 없어질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한 일도 없을 뿐더러, 특별히 장애인들에게만 적용되는 생각과 규율을 정하신 적도 없기 때문이다.
장애아가 태어나리라는 진단에도, “장애를 갖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기쁨(JOY)’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저자는 복지 차원이 아닌,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장애신학’과 ‘장애선교’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