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熱烈)하다'는 동사로 쓰일때와 형용사로 쓰일때 그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동사로서는 열로 말미암아 광물 따위가 갈라지다는 뜻이 되고, 형용사는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이나 태도가 매우 맹렬하다는 뜻이 된다. 예를 들어 열렬한 사랑, 열렬한 지지, 열렬한 팬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열열한 그리스도인은 형용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물론 맞춤법으로는 열렬한 이라고 해야하지만 기왕에 동음사용을 즐겨 그리스도인 들의 모습을 살펴보았기에 열열(熱熱)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조어(新造語)를 사용키로 한다.
열열은 한자표기에서 보듯 내면의 열이 활활 타오르는 상태이다. 사람들이 즐겨 말하기를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라고 하지만, 머리가 차거우면 가슴도 차가울 수 있고, 가슴이 뜨거우면 머리도 뜨거운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신앙은 이 뜨거움과 차가움의 진자운동(振子運動) 이 너무 심하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 대한 강조로 한국교회는 무수한 군소 신학교가 난립하게 되었을 뿐아니라 이루다 헤아릴수 없는 성경연구 시리즈등이 세미나형식으로 노도광풍으로 휩쓸고 지나갔다. 평신도들을 위한 경건서적 출판이 호황을 이루어 구멍가게였던 기독교계 출판사와 서점이 거대기업을 이루는가 하면, 점차 수준높은 신학서적들이 번역출판되다가 이제는 구미각국에서 수학한 젊은 신학자들이 한국 신학의 기치를 걸고 수많은 자작 신학서적들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예전 성도들이 감히 범접할수 없는 수준의 성경지식과 신학수준에 이르고있다. 뿐아니라 평신도지도자들이 성경을 가르치고 직접 세미나를 인도하는 괄목 할만한 발전을 이루게 된것이다.
그런데 참담하게도 한국교회는 예전에 그 따뜻함을 잃어버렸다. 이상하게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냉기(冷氣)가 점령하게 되었다. 이것만 보아도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라는 것이 얼마나 이상에 지나지 않는지 알게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씩 열기(熱氣)가 다시 불어오고 있다. 기도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갈급한 희구가 되살아나고 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물론 비 성경적인 기도운동, 성령운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냉동고(冷凍庫)가 되기전에 이런 영적흐름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수 없다. 그저 기복신앙이나 교회성장의 수단으로 이 열기가 번져나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성도들의 가슴속에 따뜻함이 복음의 열기로 나타나고 드디어는 예전처럼 예수만으로 열열한 그리스도인이 넘쳐나기를 바랄 뿐이다. 예수를 열렬이 사랑하는, 예수를 열렬히 지지하는, 예수의 열렬한 광펜이 되어 전 생애를 헌신하는 그리스도인, 이른바 열열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정인량 칼럼]열열 그리스도인
워싱턴영광장로교회 정인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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