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주재우 씨. 그도 한때는 장애인인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절망의 골은 깊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하나님을 붙들고 일어섰다. 장애는 더 이상 그에게 장애가 아닌 행복의 조건이다.
참 살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가진 것이 없고, 할 일이 없어 어제도 오늘도 힘들었다고. 내일의 태양? 지쳐버린 마음은 좀체 희망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포기해야 할까. 아마 그 경계선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방황하는 이들이 많으리라. 만약 그렇다면, 잠시 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자신이 지금 가진 것들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뇌병변(뇌성마비) 1급 장애인 주재우(40, 강북제일교회) 씨다.

주 씨는 너무 일찍 세상의 빛을 봤다. 그의 어머니는 7달 만에 주 씨를 낳았지만 집이 가난해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넣지 못했다. 결국 아이는 뇌에 이상이 생겼고 그 때부터 장애인이 됐다. 쌍둥이 동생은 태어난지 10일 만에 죽었다.

어머니도 그가 7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서만 키웠다. 아버지의 자존심은 장애인인 아들을 남에게 쉽게 보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13살이 될 때까지 주 씨는 집 안에서만 컸다. 세상이 궁금했다. 마침 몸도 많아 좋아졌던 터라 그는 아버지 몰래 문 밖을 나서곤 했다. 그래봐야 집 앞 몇 미터가 고작이지만 그에겐 그것조차 신비함 그 자체였다.

‘탈출’을 들키는 날엔 아버지로부터 매질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도 그런 그를 더 이상 나무라지 않았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할 만큼 세상은 그에게 생기를 더하는 공간이었다.

교회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그를 반기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를 친동생처럼 아껴준 누나들도 많았다. 어머니의 따뜻함을 오래 느껴보지 못한 그에게 교회는 어머니의 품,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을 그런 사랑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다녔다. 신앙은 깊지 않았지만 나름 교회 활동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주 씨는 집을 떠나 세상과 섞여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친구들로부터 자신이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 그와 친구들 사이에 놓인 것만 같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밤낮을 고민했다. 비로소 한 동안 잊고 지낸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애인이라는 사실, 그래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아픈 현실이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그를 덮쳐왔다.

피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사나운 파도는 그의 마음을 휘저어 상처를 내고 온갖 더러운 것들을 그곳으로 실어 날랐다. 마음에 둔 이성이 있어도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는 사춘기였던 그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잔인하고 또 무거운 짐이었다.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남들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지만 몸은 너무나 달랐던 그…. 부모님이 싫었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하나님이 야속했다.

죽고 싶었다. 죽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삶은 쉽게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남몰래 우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그곳으로 그는 자꾸만 몸을 움크렸다.

그 때 빛이 보였다. 불현듯 ‘내가 이렇게 절망 속에서 삶을 허비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실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 십자가에 달려 죽게하셨다는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그는 이전과는 다른 눈물을 흘렸다. ‘그래,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삶이니 다시 힘을 내보자!’

그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 노력했다.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주보를 만들고 문서들을 처리하는 것들이었다. 누군가에겐 하찮은 일일 수 있지만 그에겐 소중한 삶의 한 부분이었다. 어느덧 컴퓨터를 쓰는 일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노력의 보상이었을까. 교회 동생의 추천으로 한 여행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다. 그의 나이 30세가 넘어 얻게된 첫 일자리였다. 이후 어느 광고회사에서도 일했고, 지금은 그와 같은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TV’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도 한때는 ‘난 장애인이 아니야, 내가 왜 장애인이야’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에게 우을증과 대인기피증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하지만 장애인인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인 후 그의 삶도 변해갔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이니,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할 수 있다 생각하니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고, 나도 행복하다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많은 것들이 마침내 보이더군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또 감사할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내 삶에, 그리고 내 미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