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선 후보 중 한 분이 경찰의 날을 맞아 경찰을 방문했습니다. 자녀들이 안전하게 등하교를 할 수 있도록 치안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경찰 인력을 대폭 증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울러 오래 동안 경찰의 숙원이었던 수사권 독립 문제에 관해서 검찰과 경찰 사이에 합리적인 수사권 분담이 이루어지조록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언론에 국민들의 반응이 소개되면서 “수사권 문제와 우리 딸 안전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라고 질문을 실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세번째 후보 토론이 있었습니다. 외교 문제를 주로 다루는 순서였습니다. 이란의 핵 무기 개발 문제, 북한 문제 등 다양한 현안들을 놓고 양 후보가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들의 대부분은 외교, 국방, 심지어 테러와의 전쟁 등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외교 실패를 지적하기 위해서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사과하는 나라가 되었고 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별로 국민들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란 핵무기가 오르기만 하고 내려 갈 줄 모르는 개솔린 가격과 취업 불안에 어떤 상관이 있는지 되 묻는 듯 합니다.

개인이 겪는 현실의 문제에 명쾌하게 답을 주지 못하다 결국 상대방 헐뜻는 광고만 넘쳐 납니다. 지방 선거와 연방 의원 선거는 포함하지 않고도 대통령 선거에만 약 20억 달러의 선거비용이 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중의 대부분이 서로 말꼬리 잡고 과거에 했던 말 실수 시비 걸고 작은 통계 숫자 하나로 과장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정치 공세만 넘칩니다. 그래서 국민은 더 피곤하고 짜증이 납니다.

최근에 방영된 언론의 역할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학생들이 패널리스트에게 묻습니다. 무엇이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었습니까? 패널리스트들이 돌아가면서 말합니다. 자유, 인권, 창의력, 개척 정신 등등. 그 중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내 인생, 내 가정을 위해서 국가는 무엇을 해 주었느냐고 묻는 국민이 많은 나라는 결코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이라면 위대한 나라의 꿈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당장 내 인생과 가정에 돌아올 유익을 약속해 줘야 합니다. 인기와 지지를 얻어서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이 나라에 대한 꿈이 있어도, 국민에 대한 비전이 있어도 표를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나라가 되어 위대한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없으면 그 나라는 더 힘들고 어려운 내리막길로 가기 쉽습니다.

위대한 나라의 필수 조건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대신에 타자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희생 시킬 수 있는 더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한국도 미국도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제 사회 속에서 자기 유익보다 더 큰 것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한 신앙생활, 자신의 축복을 위한 열심에서 타인의 유익을 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덕을 구할 때 위대한 백성이 됩니다. 목사가 자칫 표를 구하는 정치인처럼 되기 쉽고, 성도들은 눈 앞의 유익만을 구하다가 지탄 받는 무리가 되기 쉽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아직도 유효한 주님의 명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