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기쁨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명예 등 환경이 주는 기쁨입니다. 이러한 기쁨은 환경과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찰라적인 기쁨이며 지극히 인간적인 기쁨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 다른 종류의 기쁨이 있음을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쁨이 있고 그 기쁨으로 우리가 충만하기를 진정 원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 15:11. 이 말씀을 마지막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라.” 요17:13, 예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직접 들은 사도 요한은 후에 요한 서신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함이라.” 요일 1:4.
오늘 우리는 이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환경이나 상황과 무관합니다. 바울은 옥에 갇혀서도 내가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환경에 관계없이 크게 기뻐하는 삶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본질이 악하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이길 수 있으며, 오히려 개선장군처럼 기뻐하며 살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저도 제 딸이 기뻐할 때 행복합니다. 그 아이가 우울하면 제 마음도 무겁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늘 기뻐하며 살아가기를 참으로 원하십니다. 그래서 범사에 기뻐하고 항상 기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감사와 기쁨이 삶의 전반적인 스타일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기쁨입니다. 어떻게 이같은 주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환경이나 자신이 아닌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지요. 그러면 주님은 당신의 기쁨을 주십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하나 둘씩 자신을 떠나 예수님께 나아갈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요 3:29. 사실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직 주님께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거룩한 기쁨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주님께 초점을 맞추며 살려면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고 권면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오직 쉬지 말고 기도할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라.” 요 16:24. 크고 작은 삶의 이슈들을 가지고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러면 우리는 응답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 응답의 간증이 넘칠 때 삶이 힘이 있고 기쁨이 넘칩니다. 항상 기도하는 자들은 부활의 기쁨, 해산의 기쁨을 경험합니다. 요 16:20,21. 지난 주간, 새 성전 이주 문제를 놓고 간절히 씨름하며 기도하는데 어느 순간, 심령의 깊은 곳에서 찬양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깊은 감동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딸아, 모든 상황가운데 나의 평강이 가득하리라. 모든 성도들의 심령을 나의 평강으로 채우리라.” 그 순간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한없는 기쁨과 감사가 심령에서 샘 솟듯 솟아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평강이요, 하나님의 기쁨이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연 기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습니까? 주님께 매달려 더 기도하라는 신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살도록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고 성령님과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바라보며 성령님과 말씀을 붙잡고 살아간다면 환경에 관계없이 언제나 주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기쁨이 삶의 전반적인 스타일이 되게 합시다.
오늘 우리는 이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환경이나 상황과 무관합니다. 바울은 옥에 갇혀서도 내가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환경에 관계없이 크게 기뻐하는 삶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본질이 악하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이길 수 있으며, 오히려 개선장군처럼 기뻐하며 살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저도 제 딸이 기뻐할 때 행복합니다. 그 아이가 우울하면 제 마음도 무겁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늘 기뻐하며 살아가기를 참으로 원하십니다. 그래서 범사에 기뻐하고 항상 기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감사와 기쁨이 삶의 전반적인 스타일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기쁨입니다. 어떻게 이같은 주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환경이나 자신이 아닌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지요. 그러면 주님은 당신의 기쁨을 주십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하나 둘씩 자신을 떠나 예수님께 나아갈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요 3:29. 사실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직 주님께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거룩한 기쁨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주님께 초점을 맞추며 살려면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고 권면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오직 쉬지 말고 기도할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라.” 요 16:24. 크고 작은 삶의 이슈들을 가지고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러면 우리는 응답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 응답의 간증이 넘칠 때 삶이 힘이 있고 기쁨이 넘칩니다. 항상 기도하는 자들은 부활의 기쁨, 해산의 기쁨을 경험합니다. 요 16:20,21. 지난 주간, 새 성전 이주 문제를 놓고 간절히 씨름하며 기도하는데 어느 순간, 심령의 깊은 곳에서 찬양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깊은 감동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딸아, 모든 상황가운데 나의 평강이 가득하리라. 모든 성도들의 심령을 나의 평강으로 채우리라.” 그 순간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한없는 기쁨과 감사가 심령에서 샘 솟듯 솟아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평강이요, 하나님의 기쁨이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연 기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습니까? 주님께 매달려 더 기도하라는 신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살도록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고 성령님과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바라보며 성령님과 말씀을 붙잡고 살아간다면 환경에 관계없이 언제나 주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기쁨이 삶의 전반적인 스타일이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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