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남자 대학생입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주말이면 집에 돌아와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목회자 자녀이기도 한 저는, 힘들지만 이런 생활에 만족하며 기쁨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선배가 있습니다. 그 선배도 목회자 자녀이고 대학 기숙사에서 성경 공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그 모임에 참석하고 좋았습니다만, 그 선배와 가까이 지낼수록 자꾸 마음에 갈등과 회의가 생깁니다. 그 선배는 우리들의 생활을 지적하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하라’고 자주 충고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고마운 조언으로 알아 들었었는데, 언제부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면서 무섭고 엄격한 아버지가 순진한 아들에게 훈계하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저희 친구들은 모이면 그 선배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그 선배의 말이 다 옳은 것은 아닌데, 그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죄책감이 생깁니다. 생활면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막상 본인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 말씀에 맞지 않는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야 하는데, 어떤 때 보면 그 선배를 묵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같은 기숙사를 쓰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는데, 목사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A: 상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숙사 생활하고 학교 공부하면서, 주말에 집에 돌아와 교회를 섬기는 형제의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목회자 자녀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을 텐데, 기쁨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니 그 또한 감사합니다. 하지만, 같은 학교에서 만난 선배가 인도하는 성경 모임에 참석했다가 마음에 많은 갈등이 된다고 하니, 저 역시 마음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형제의 말 속에, 그 선배의 말이 언제부터인가 ‘무섭고 엄격한 아버지가 순진한 아들에게 훈계하는 것’으로 들렸다고 하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사실 성경 공부의 리더는 어떤 의미에서 세상의 아버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 자체가 이미 상당한 권위(authority)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권위의 상징인 아버지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상담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권위의 아버지 상 (father figure)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형제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 선배에 대해서 비슷하게 느꼈다면, 그것은 형제의 마음 속에 있는 father figure가 그 선배에게 비춰진 것이 아니라, 그 선배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그 선배의 father figure가 그룹 원들에게 비춰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상담 심리학에서 투사(projection)이라고 합니다. 전문적인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간단한 말하자면, 선배는 아직 자기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다 보니, 그 한계가 노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본인의 생활도 불완전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말씀으로 지적하고 터치(touch)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야고보서 2:17)이라고 말씀했으며,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야고보서 2:2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믿음과 실천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한 마디로, 실천이 없는 믿음이 공허한 것처럼, 믿음이 없는 실천 역시 형식적이고 율법적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는 것도 실천하는 것도 우리 힘이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나를 포기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지만, 성경의 모든 부분을 그렇게 해석해서 우리의 삶에 적용할 때, 많은 갈등과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경은 문자적으로 이해할 부분들도 많지만,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역사적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들도 많습니다. 아직 신학의 깊은 부분들을 접해보지 않고, 일반 학문만 공부하고 기도만 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대학 (University)은 그 말대로 인생의 유예 기간이요, 사회에 나오기 전에 훈련장이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읽고 사색해야 하는 그야말로 universal(보편적)한 장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나친 편협주의나 주관주의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대학에서 깊은 학문들을 다양하게 접하고 마음껏 사색하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c Erikson)의 말대로, 우리는 인생의 발달 주기(Life Cycle)를 거치면서, 각 단계마다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이제 형제는 청년 초기의 중요한 시기를 거치면서, 자기 정체성(self-identity)를 확립해야 할 때입니다. 물론 이것은 평생을 거쳐서 이루어져야 할 과제들 중의 하나이지만, 젊은 날에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고, 주님께 헌신하며 충성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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