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불교계가 정부와 기독교를 상대로 농성을 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현직 대통령이 교회의 장로이기 때문에 교회의 행사는 적극 협조하지만 불교계의 행사는 비협조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불평을 하고 있는 때에 유머 있는 설교로 알려진 목사님이 불교를 폄하하고 무시하는 말을 했다. 그의 인터넷에 악플이 천 개가 넘게 실렸다고 한다.

불교는 세계 3대 고등종교 중의 하나로서 기독교의 하나님과 생명은 없지만 인생을 보는 철학과 도덕적인 교훈들을 가르친다. 그들을 조롱하거나 폄하하는 것보다는 크리스쳔들은 존경받는 진실된 삶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보여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한국에는 전도하는 개신교의 숫자는 줄어들고 전도하지 않는 천주교인들의 숫자는 늘어난다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신을 찾는 종교성이 다 있게 마련이다. 그 종교성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몰렸다고 해서 그 모여든 숫자로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교회가 최소한 도덕적인 모습으로 비쳐 질 때에 세상은 교회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그 당시 5%의 지주들이 95%의 러시아의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 5%에 해당하는 지주들은 러시아 정교인들 즉 크리스쳔들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호위 호식하고 있을 때, 러시아 소작인들과 가난한 자들은 부자 크리스쳔 지주들이 믿는 신앙과 교회의 가르침에 등을 돌렸을 뿐아니라 교회를 조직적으로 말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약 70년 동안 교회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짓 밟혔다. 그 당시의 사회상은 영화 “닥터 지바고”에 잘 나타나 있다. 모든 인류의 역사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교훈이다. 콘스탄틴이 왕이 되었을 때, 크리스쳔이었던 정숙한 부인의 모습을 보면서 부인이 믿던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것도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교회는 고난과 핍박 속에서 겸손히 낮아질 때 더 큰 감동과 진정한 영향력을 끼쳤다. 부와 힘을 가지고 교만하게 비쳐질 때 교회는 부패해졌고 동시에 영향력은 상실되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공산주의 혁명은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교회는 힘을 가질수록 겸손히 자신을 부인하는 과정이 없으면 넘어진다. 개인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