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인회관 건립위원회의 역대 위원장과 기금 모금 활동

1979년도에 애틀랜타 한인회관 건립위원회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1979년 한인회장 강석영씨가 1980년도 한인회장 김학봉씨의 협조에 의해 1980년에 발족하였다.
초대(1980~1981년)위원장은 방창모 박사(에모리 대학 수학과 교수),
2대(1982년) 위원장은 신영교씨(창고식품 대표),
3대(1983년) 위원장은 이상호씨,
4대(1984년) 위원장은 송준희씨,
5대(1985년) 위원장은 임종호씨(전 라이온스 클럽회장),
6대(1986년~1987년) 위원장은 박선근씨(전 미주 총연회장),
7대(1988년) 위원장은 이재승씨(미주 사업개발 부동산 대표),
8대(1989년) 위원장은 박선근씨,
9대(1990년) 위원장은 황신자씨(전 한미부인회 회장),
10대(1991년) 위원장은 박명자씨,
11대(1992년) 위원장은 우병욱씨,
12대(1993~1994년) 위원장은 손광석씨(전 노인회장 작고),
13대(1996~1998년) 위원장은 박선근씨 등으로 이어졌다.

1980년 1월 26일 오후 7시 영빈관에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가 전∙현직 한인회 이사 및 임원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총회를 개최함으로써 발족하였다. 이 창립 총회에서는 방창모 박사가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창립 총회에서 1977년부터 모아 온 건립기금 3천1백2달러 69센트, 1979년도 예산 집행액의 10%인 1천64달러 등 총 4천2백36달러 69센트를 강석영 회장이 방창모 위원장에게 인계하였다.

1980년 11월 13일 오후 6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는 다운타운에 있는 힐튼 호텔 크리스탈 룸에서 한미 인사 1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용식 주미대사를 초빙하여 모금 파티를 열었다. 이 날 한인회관 모금 파티에는 20여 명의 미국인도 참석하였다. 김용식 주미대사는 초청 연설에서 애틀랜타 한인회관 건립 모금 파티에 초청해 준 데 대하여 기쁘다고 말하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 날 회관 모금 파티에 들어온 돈은 약 1만1천 달러이지만, 이 가운데서 약 4천 달러가 비용으로 지불되었다.

1982년 1월 30일 오후 6시 송스식당에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는 정기 총회를 개최하고 1982년도 건립위원장에 신영교(당시 아세아 무역 대표)씨를 만장일치로 추대하였다. 이 날 모임은 방창모 위원장 등 7명의 위원이 출석하였으며 2명의 전권위임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한인회관 건립 기금을 위해 지난 2년 동안 위원장직을 맡아 온 방창모 박사는 1981년도 한인회에서 들어온 1,920달러와 그 동안에 모금되었던 기금을 합하여 16,504달러를 신임 신영교위원장에게 인계하였다.

1985년 4월 16일 오후 7시 평화각에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는 신∙구 임원들이 모여 인수인계를 완료하였다. 이 날 송준희 전 건립위원장으로부터 건립기금 등 사업 일체를 인계받은 신임 임종호 위원장은 애틀랜타 한인 1만 명에게 1달러씩을 모금하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되 대규모의 모금 파티는 되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론인들에게 전하였다.

1986년 1월 31일 오후 7시 한국관에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 신∙구 위원장 인수인계식이 있었다. 임종호 구 위원장은 총수입 49,855달러 13센트 중에서 총지출금 4,355달러 35센트를 제외한 45,499달러 78센트를 신임 박선근 위원장에게 전달하였다. 이 날 인수인계식에는 신∙구 위원장 이외에 전년도 한인회장 배수일씨, 전년도 한인회 이사장 송종규씨, 전 한인회 이사장 이광명씨, 전 한인회관 건립위원회 재무부장 권재봉씨 등이 참석하였다.

1986년 6월 12일 오후 7시 코리아하우스에서 건립위원회(회장 박선근) 모임을 갖고 연간 2만 달러 목표로 모금을 펼치기로 하였다. 그리고 현재 모금된 5만 달러의 회관 건립 기금을 부동산에 투자하기로 하되, 박선근 위원장, 박진호 한인회장, 부동산업자 1인, 변호사 1인, CPA 1인 등 5명의 소위원회가 책임을 지고 투자하여 기금을 관리하기로 하였다. 1986년 11월 29일 오후 7시 센추리 센터 호텔에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회장 박선근)는 한인 219명이 참가한 가운데 모금 파티를 개최하여 28,307달러의 모금 실적을 올렸다. 애틀랜타 다운타운에서 서양 식품점을 경영하는 백영화씨와 백영희씨 모녀가 5,100달러의 모금을 내는 등 각계 각층이 관심을 보였다.

1987년 11월 3일 한인회관 건립위원회가 모임을 갖고 건립 기금 모금 파티(11월 28일)개최 여부를 논의하였다. 글렌우드 애비뉴 흑인촌에 위치한 대지 20에이커 부지 구입 문제 등에 관해서도 토의하였다. 이 날 박선근 위원장은 건립위원들의 비협조를 지적하면서 위원장직을 사퇴하려고 하였으나, 다른 위원들의 만류로 사퇴를 철회하였다. 글렌우드 대지 구입 문제는 부동산업자 이재승씨로 하여금 여러 한인 부동산업자들과 현지를 답사한 이후에 투자 가치를 판정하여 차후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하였다. 1987년 11월 28일 오후 7시 센추리 호텔에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회장 박선근)는 회관 건립 기금 모금 파티를 개최하였다. 이 날 모금 파티에는 약 260명의 한인들이 참가하여 40,949달러를 모금하였다. 이로써 경비 10,850달러를 제외하고 순모금액이 30,099달러에 이르렀다. 이 날 임창빈씨가 6천달러, 손이식씨가 3천 달러, 김창명씨가 2천 달러를 기금으로 내놓는 등 많은 한인들과 한인 단체들이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 날 모금된 기금을 합쳐 1987년 11월 28일까지 모은 기금은 총 10만6천 달러가 되었다.

1987년 12월 18일 오후 7시 코리아하우스에서 애틀랜타 한인회관 건립위원회(회장 박선근)는 모임을 갖고 글랜우드 애비뉴에 있는 대지(19.45 에이커)구입 문제를 놓고 장시간 마라톤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날 참석한 13명의 위원 가운데 2명이 반대를 하고 11명이 대지를 투자용으로 구입하는 데 찬성하여 투자용 대지를 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부지는 당시 야외 극장으로 사용되던 장소로서 Ⅰ-285에서 글렌우드로 빠지는 지점에서 1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복조리 모양을 하고 있는 부지였다. 이 땅은 결국 에이커당 7,500달러로 145,875달러에 구입하였다. 당시 시가대로라면 에이커당 2만 달러였으나, 소유 회사의 내분으로 낮은 가격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우선 부지 대금을 1차로 10만 달러를 지불하였고, 나머지 45,875달러는 차후 2년 동안 2회에 걸쳐 자불하기로 하였다. 매입자는 1988년 당시 애틀랜타 한인회장 안수옹씨 명의로 하였다.

1988년 1월 12일 오후 7시 코리아하우스에서 애틀랜타 한인회관 건립위원회(위원장 박선근)는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다. 정기 총회에서는 박선근 위원장이 대지 구입 관계를 상세히 보고하였다. 그리고 정기 총회에서는 이재승씨를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는데, 위원장에 선출된 이재승씨는 “힘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박선근씨를 신임 이사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번 부지를 구입하는 데 수고하였던 최진 변호사는 회관 건립위원회에 1,450달러를 기부하였다.
1988년 5월 7일 글렌우드 로드에 있는 한인회관 건립위원회 부지에서 애틀랜타 한인회관 건립위원회(위원장 이재승)는 부지 정지 작업을 하는 테이프를 끊었다. 이 날 정지 작업 기공식에는 이재승 위원장, 안수웅 한인회장, 박선근 전 위원장, 김학봉 동남부 연합회장, 교회협의회 회장 서삼정 목사 등이 참석하였다. 다음달 부지 정지 작업이 끝난 이후 글렌우드 한인회 부지에 체육 공원을 만들기로 하고 체육 공원 설치위원회에 은용씨를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축구장, 배구장 등의 체육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약 1만 달러 예산도 편성하였다.

1988년 9월 30일 오후 7시 궁전 레스토랑에서 애틀랜타 한인회관 건립위원회(위원장 이재승)는 이사회를 개최하여 동 위원회의 모금 파티를 논의하였고, 11월 20일 오후 7시 센추리센터 호텔에서 모금 파티를 개최하였다. 모금 파티에 앞서 이 부지에 한인회관을 건립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이 송준기(한인 토목건축가) 건립위원회 이사에 의하여 설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후 이 부지의 일부가 침수 가능 지역(Flood Zone)으로 확인되어 한인회관 건립을 위한 부지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회관 건립이 구체적으로 착수되지는 않았다. 1989년 2월 23일 오후 7시 엠프레스 차이나 Ⅲ에서 애틀랜타 한인회관 건립위원회(위원장 이재승)는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다. 이 날 이재승씨를 재추대하였으나, 이재승씨가 극구 사양하였고, 마땅한 다른 인사가 없어서 잠정적으로 이재승씨가 위원장을 맡기로 하였다. 1989년 8월 24일 오후 7시 30분 궁전식당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고 이재승 위원장 후임이 없어 공석 중인 현 위원회 위원장에 박선근씨를 만장일치로 선출하였다. 다음 해(1990년) 1월 15일까지 약 2만5천 달러의 잔금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회관 건립 부지를 빼앗기게 된다는 급박한 상황이기에 박선근씨가 다시 맡기로 하였다.

1989년 말엽 애틀랜타 한인회관 건립위원회(회장 박선근)는 동양건설(대표 남건주)에서 제작한 회관건립 모금함 19개를 식당이나 식품점 등에 비치하여 한인들이 모금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동위원회는 1989년 12월 16일 오후 8시 머서 대학 강당에서 건립 기금 모금 파티를 열었다. 이로써 부지 대금 잔여액과 재산세를 합친 3만 달러의 모금이 완성되었다. 마침내 글렌우드 부지에 대한 2차 잔금이 1990년 1월 15일에 모두 지불되었고, 한인회관 부지 20에이커가 완전히 한인회 재산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매년 재산세 약3,000달러를 납입하여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