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생활에 있어서 스트레스라는 용어는 매우 흔하게 사용되며, 우리의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따라다니는 상당히 친숙한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심리학 사전에는 간단하게 “내부적이나 외부적으로 다가오는 압력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결과”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는 이 내부적, 외부적 압력을 ‘스트레서’(stressor)라고 부릅니다. 즉, 사람의 내부나 외부의 스트레서에 의한 육체적/심리적 결과가 스트레스인 것입니다. 사전적으로는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한두 마디로 스트레스를 정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긍정적 스트레스와 부정적 스트레스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 용어들은 스트레스 개념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Hans Selye(1907-1982)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좋은 요인들에 의한 스트레스는 ‘유-스트레스’(eustress)로, 나쁜 요인들에 의한 스트레스는 ‘디-스트레스’(distress)로 구별하는 것입니다. 유스트레스 앞의 접두사 ‘유’(eu)는 헬라어(Greek)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가 ‘well’이나 ‘good’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유스트레스라고 하면, 문자적으로는 ‘좋은 스트레스’(good stress)라는 뜻이 됩니다. 접두사 ‘유’에 대한 매우 좋은 예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 천사가 목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이 구절에서 “좋은 소식”(good news, NIV)이라고 번역된 원래 헬라어 단어는 “euangelion”(유앙겔리온)이며, 역시 앞에 “eu”(좋은)으로 시작됩니다. 과연 모든 인류에게 최고로 복된 좋은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Good News)입니다!

좋은 스트레스라는 뜻의 유스트레스는 다른 말로 ‘긍정적 스트레스’라고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할 때는 ‘부정적 스트레스’인 디스트레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안 역시 좋은 불안과 나쁜 불안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난 칼럼에서 불안을 적당한 불안과 과도한 불안으로 나누면서, 적당한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닥쳐온 문제들을 보다 더 긴장하고 집중해서 살펴보게 하며, 체계적으로 그 문제들을 분석하여 적합한 대책을 세우도록 도와서, 보다 더 효과적으로 극복하도록 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적당한 수준의 불안 역시 좋은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좋은’ 불안이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불안이라면 하는 것도 괜찮지’라거나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마땅히’ 해야만 하는 불안입니다. 즉, 인생이라면 누구나 의도적으로 노력해서라도 해야만 하는 불안인 것입니다. 실제로 이 불안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불안을 배워야 할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4:10).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이 불안은 인생에게 복을 누리게 합니다(신 6:24).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라는 불안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김재덕 목사는 총신대학교(B.A.)와 연세대학교(B.A.) 및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미국 Liberty University (Lynchburg, VA, www.liberty.edu)에서 목회상담(Pastoral Care and Counseling)을 전공했다(Th.M. & Ph.D.). 현재 Liberty University의 상담학과에서 교수(Assistant Professor)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