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피터 진(33) 목사는 일리노이주(州) 글렌뷰에 살던 어린 시절 무서운 기억이 있다.

모자 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어느날 흑인 강도에게 심하게 맞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후 피터는 부모가 운전을 하다가도 흑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만 가면 차 문을 잠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의 흑인 밀집지역 랭든에서 교회 목사로 활동하는 진 목사는 지난 7월 4일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과거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는 "흑인이겠구나"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매일 흑인들과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 그는 이미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미 유력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6일 `인류에 대한 신뢰(Faith in Mankind)'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종을 초월해 미국의 흑인사회에 스며든 피터 진 목사의 사연을 소개했다.

흑인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초콜릿 시티(Chocolate City)'로 불리는 워싱턴DC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경계나 질시, 심지어 미움의 대상이다. 아시아계 이민자들 상당수가 가난한 흑인 밀집지역에 살지 않으면서 이곳에서 흑인들을 상대로 장사해서 부를 누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리언 배리 전 워싱턴DC 시장은 최근 "우리 지역에서 더러운 가게를 여는 아시아인들은 나가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 동부의 한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의대를 다니던 진 목사는 기독교 여름캠프에 참가한 뒤 부모의 기대를 뒤로하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북부 버지니아주에 정착했지만 활기있는 도시를 찾아 2009년 수도 워싱턴DC로 옮겼고 우연한 기회에 `피스 펠로우십(Peace Fellowship) 교회'의 임시 목사직을 맞게 됐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흑인들과 교분이 거의 없던 그는 교회에서 흑인들이 자신을 거리낌없이 받아주는 것을 알았고, 지금은 전혀 벽을 느낄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흑인사회의 일원이 됐다.

진 목사는 "이민 2세대로서 내가 깨달은 것은 (흑인에 대한) 모든 걱정이 부모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미국에서 자라고, 흑인문화를 잘 이해하는 나 자신의 경험은 이와 다르다"고 말했다.

독립기념일에 도둑을 당한 진 목사에게는 며칠 뒤 목수직업을 갖고 있는 한 흑인 교회신자로부터 부서진 문을 바꿔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어떤 신자는 방범카메라가 필요하느냐면서 자신이 비용을 대서 달아주겠다는 제안을 해 왔고, 이웃에 사는 흑인들은 용의자 인상착의를 경찰에 알려주고 음식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고 WP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