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칙-필-에이(Chick-fil-A) 논쟁으로 미국 사회가 재미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니, 재미있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염려스런 모습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게다. 두 거대한 문화 충돌 사이에서 도에 지나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칙-필-에이논쟁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2012년 7월 16일 침례 신문(Baptist Press)에서 동성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대한 질문을 받자 칙-필-에이 대표 댄 캐시(Dan Cathy)가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전통 결혼관과 성경에 기록된 남녀 간의 결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후 연합 주간 라디오 토크 쇼인 켄 콜만 쇼(The Ken Coleman Show)에서도 같은 입장을 보였다. 본 쇼에서 캐시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무엇이 결혼인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잘 안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우리 나라에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무엇이 결혼이지를 재정의 하려고 시도하는 대담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교만하고 거만한 자세를 가진 우리 세대에 하나님의 자비를 기도한다”고 답했다. 이 발언으로 미국 사회가 순식간에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
캐시의 발언이 엘지비티 단체(LGBT: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들의 단체를 지칭하는 용어)와 특정 견해를 가진 정치인들의 뇌관을 건드린 셈이다. 동성연애를 주장하고 그들의 권리는 법 앞에서 보장받아야 한다는 엘지비티 그룹은 캐시의 발언을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간주하며 강한 반발을 보였다. 보스턴 시장 타마스 매니노(Thomas M. Menino)는 “보스턴에서 사업 허가 받을 생각 하지 말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 시카고 시장이나 센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의 몇몇 정부 관료들도 강한 반대 발언을 개진했다. 대학가에서는 캠퍼스 내에 있는 칙-필-에이 식당을 내어 쫓으라고 일부 학생들이 서명 운동을 벌여 관계자에게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켄사스 대학교 (University of Kansas), 루이빌 대학교 (University of Louisville), 위치타 주립 대학교 (Wichita State University) 등이 그런 학교들 가운데 속한다. 한 기업주의 의사 표명이 이런 파장을 일으킬 줄이야! 게다가 칙-필-에이 보이콧 운동으로 칙-필-에이 식당의 매장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가 돌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회 파장이 일어나자 전통 결혼관을 지지하는 다른 그룹에서는 칙-필-에이 대표의 발언을 지지하며 전통적 가족관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한 의견을 개진했다. 전 알칸사 주지사 맠 허카비(Mark Huckabee)가 그 대표 주자이다. 그는 이와 같은 거대한 여론에 맞서 칙-필-에이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8월 1일을 “칙-필-에이 감사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지하게 되었다. 결국 8월 1일은 “칙-필-에이 감사의 날”로 정해졌고, 이날 전통 결혼관과 가족관을 지지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칙-필-에이에서 식사를 함으로 그들의 의사 표현을 드러내게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날 행사는 아주 성황리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아직 칙-필-에이가 없는 도시에서는 차를 대절해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타 도시의 칙-필-에이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함으로 그들의 의사를 드러내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뒤질세라, 반대 그룹은 8월 3일을 엘지비티 그룹의 키스 날로 정하고, 그들의 의견을 보이기로 했다. 칙-필-에이 감사의 날 만큼은 그 규모가 되지 않았지만 8월 3일은 동성연애자들의 칙-필-에이 키스 일로 진행되었다.
작금의 이슈는 칙-필-에이와 그 반대 그룹 만의 단순한 견해 싸움이 아니다. 거대한 문화 전쟁이 표면화된 것이다. 캐시의 발언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은 싫고 좋음의 감정 싸움으로 흘러가고, 이 틈을 탄 어떤 정치인들은 그들의 표 굳히기 작전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논쟁 가운데 우리의 가치관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중심잡기가 어렵다. 세 가지 질문을 던짐으로 일의 기준을 잡아보려 한다.
칙-필-에이는 설 자리를 잃어야 하는가? 사회적 심판의 이슈이다. 캐시의 전통적 가족관 지지 발언은 반대 그룹의 의견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한 사업체의 대표가 어떤 발언을 할 때, 이는 그 업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와 다른 견해를 표명한다”고 하여 상대를 “매장”해야 한다면 우리 모두는 매장 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의 사명은 좋은 음식으로 만족스런 고객 스비스를 하는 것에 있지 아니한가? 식당이 사업 코드를 어기거나 불법적인 일을 자행했을 경우, 이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견해 밝혔다고 해서 그런 심판을 요청하는 것은 사회적 반감을 조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들의 보이콧 운동은 있을 수 있는 일이나 -물론 그것이 민주적으로 진행될 경우에- 정치인들의 실력 행사성 발언은 더우기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캐시의 발언은 잘못된 것인가? 권리의 문제, 옳고 그름의 문제, 그리고 신앙관과 가치관의 문제이다. 캐시의 발언은 그 내용에 있어서 잘 못된 것이 없다. 그는 기자와 토크 쇼 진행자의 질문을 받았고 그 질문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의 발언 내용은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에 명시된 언론, 종교, 집회의 자유를 위배하는 어떤 요소도 포함하지 않고있다. 오히려 그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와 신앙관과 가치관의 문제는 어떠한가? 그는 전통적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성경적 가정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교육받은 가치관을 이야기 했고 성경적 가정관을 피력했다. 적어도 그가 한 답은 가치관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틀렸다고 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된 것은 그의 가치관이 엘지비티가 주장하는 가치관과 다르다는 데에 있다. 거대한 문화의 차이에서이다. 지금의 문화가 그 어느 때 보다 급격히 변하고 가치관 정립이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가 도덕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수가 옳다고 하여 그것이 반드시 민주적이거나 옳은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민주적 언변이 보장된 사회에 다른 가치관을 표명한다고 하여, 타도를 외친다면 이는 “가치관 폭력”이 아닐까?
전통적인 결혼관과 가정관은 포기되어야 하는 것인가? 덕의 문제, 도덕의 문제, 신앙의 문제, 가치관의 문제 등이 이 질문에 달려있다. 교육의 문제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한 장성한 남자와 한 장성한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 전통적 결혼관이다. 이 결혼관이 최근 엘지비티 그룹에 의에 도전받고 있다. 그러나 엘지비티가 이 가치관에 반대한다하여 전통적 결혼관과 가정관이 공격을 받아야 하거나 포기되어야 할 어떤 것은 아니다. 엘지비티 그룹이 그들의 인권과 권익을 법에 호소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전통적 결혼관을 지지하는 이들의 권익 또한 보장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더 이상 좋고 싫고의 감정 문제로 대립해서는 아니 될 문제이다.
최근 칙-필-에이 논쟁을 통해, 이런 이슈를 대화 할 수 있는 민주성에 대한 면은 기릴 만 하다. 그러나 민주성이 균형을 잃고, 옳고 그름의 문제를 좋고 싫음의 문제로 옮겨가는 것을 볼 때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바른 것을 바르다 말하지 못하는 시대가 이 시대인가?
/ 최원식 자유기고가
칙-필-에이논쟁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2012년 7월 16일 침례 신문(Baptist Press)에서 동성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대한 질문을 받자 칙-필-에이 대표 댄 캐시(Dan Cathy)가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전통 결혼관과 성경에 기록된 남녀 간의 결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후 연합 주간 라디오 토크 쇼인 켄 콜만 쇼(The Ken Coleman Show)에서도 같은 입장을 보였다. 본 쇼에서 캐시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무엇이 결혼인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잘 안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우리 나라에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무엇이 결혼이지를 재정의 하려고 시도하는 대담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교만하고 거만한 자세를 가진 우리 세대에 하나님의 자비를 기도한다”고 답했다. 이 발언으로 미국 사회가 순식간에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
캐시의 발언이 엘지비티 단체(LGBT: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들의 단체를 지칭하는 용어)와 특정 견해를 가진 정치인들의 뇌관을 건드린 셈이다. 동성연애를 주장하고 그들의 권리는 법 앞에서 보장받아야 한다는 엘지비티 그룹은 캐시의 발언을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간주하며 강한 반발을 보였다. 보스턴 시장 타마스 매니노(Thomas M. Menino)는 “보스턴에서 사업 허가 받을 생각 하지 말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 시카고 시장이나 센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의 몇몇 정부 관료들도 강한 반대 발언을 개진했다. 대학가에서는 캠퍼스 내에 있는 칙-필-에이 식당을 내어 쫓으라고 일부 학생들이 서명 운동을 벌여 관계자에게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켄사스 대학교 (University of Kansas), 루이빌 대학교 (University of Louisville), 위치타 주립 대학교 (Wichita State University) 등이 그런 학교들 가운데 속한다. 한 기업주의 의사 표명이 이런 파장을 일으킬 줄이야! 게다가 칙-필-에이 보이콧 운동으로 칙-필-에이 식당의 매장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가 돌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회 파장이 일어나자 전통 결혼관을 지지하는 다른 그룹에서는 칙-필-에이 대표의 발언을 지지하며 전통적 가족관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한 의견을 개진했다. 전 알칸사 주지사 맠 허카비(Mark Huckabee)가 그 대표 주자이다. 그는 이와 같은 거대한 여론에 맞서 칙-필-에이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8월 1일을 “칙-필-에이 감사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지하게 되었다. 결국 8월 1일은 “칙-필-에이 감사의 날”로 정해졌고, 이날 전통 결혼관과 가족관을 지지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칙-필-에이에서 식사를 함으로 그들의 의사 표현을 드러내게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날 행사는 아주 성황리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아직 칙-필-에이가 없는 도시에서는 차를 대절해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타 도시의 칙-필-에이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함으로 그들의 의사를 드러내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뒤질세라, 반대 그룹은 8월 3일을 엘지비티 그룹의 키스 날로 정하고, 그들의 의견을 보이기로 했다. 칙-필-에이 감사의 날 만큼은 그 규모가 되지 않았지만 8월 3일은 동성연애자들의 칙-필-에이 키스 일로 진행되었다.
작금의 이슈는 칙-필-에이와 그 반대 그룹 만의 단순한 견해 싸움이 아니다. 거대한 문화 전쟁이 표면화된 것이다. 캐시의 발언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은 싫고 좋음의 감정 싸움으로 흘러가고, 이 틈을 탄 어떤 정치인들은 그들의 표 굳히기 작전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논쟁 가운데 우리의 가치관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중심잡기가 어렵다. 세 가지 질문을 던짐으로 일의 기준을 잡아보려 한다.
칙-필-에이는 설 자리를 잃어야 하는가? 사회적 심판의 이슈이다. 캐시의 전통적 가족관 지지 발언은 반대 그룹의 의견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한 사업체의 대표가 어떤 발언을 할 때, 이는 그 업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와 다른 견해를 표명한다”고 하여 상대를 “매장”해야 한다면 우리 모두는 매장 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의 사명은 좋은 음식으로 만족스런 고객 스비스를 하는 것에 있지 아니한가? 식당이 사업 코드를 어기거나 불법적인 일을 자행했을 경우, 이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견해 밝혔다고 해서 그런 심판을 요청하는 것은 사회적 반감을 조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들의 보이콧 운동은 있을 수 있는 일이나 -물론 그것이 민주적으로 진행될 경우에- 정치인들의 실력 행사성 발언은 더우기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캐시의 발언은 잘못된 것인가? 권리의 문제, 옳고 그름의 문제, 그리고 신앙관과 가치관의 문제이다. 캐시의 발언은 그 내용에 있어서 잘 못된 것이 없다. 그는 기자와 토크 쇼 진행자의 질문을 받았고 그 질문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의 발언 내용은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에 명시된 언론, 종교, 집회의 자유를 위배하는 어떤 요소도 포함하지 않고있다. 오히려 그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와 신앙관과 가치관의 문제는 어떠한가? 그는 전통적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성경적 가정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교육받은 가치관을 이야기 했고 성경적 가정관을 피력했다. 적어도 그가 한 답은 가치관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틀렸다고 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된 것은 그의 가치관이 엘지비티가 주장하는 가치관과 다르다는 데에 있다. 거대한 문화의 차이에서이다. 지금의 문화가 그 어느 때 보다 급격히 변하고 가치관 정립이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가 도덕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수가 옳다고 하여 그것이 반드시 민주적이거나 옳은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민주적 언변이 보장된 사회에 다른 가치관을 표명한다고 하여, 타도를 외친다면 이는 “가치관 폭력”이 아닐까?
전통적인 결혼관과 가정관은 포기되어야 하는 것인가? 덕의 문제, 도덕의 문제, 신앙의 문제, 가치관의 문제 등이 이 질문에 달려있다. 교육의 문제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한 장성한 남자와 한 장성한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 전통적 결혼관이다. 이 결혼관이 최근 엘지비티 그룹에 의에 도전받고 있다. 그러나 엘지비티가 이 가치관에 반대한다하여 전통적 결혼관과 가정관이 공격을 받아야 하거나 포기되어야 할 어떤 것은 아니다. 엘지비티 그룹이 그들의 인권과 권익을 법에 호소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전통적 결혼관을 지지하는 이들의 권익 또한 보장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더 이상 좋고 싫고의 감정 문제로 대립해서는 아니 될 문제이다.
최근 칙-필-에이 논쟁을 통해, 이런 이슈를 대화 할 수 있는 민주성에 대한 면은 기릴 만 하다. 그러나 민주성이 균형을 잃고, 옳고 그름의 문제를 좋고 싫음의 문제로 옮겨가는 것을 볼 때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바른 것을 바르다 말하지 못하는 시대가 이 시대인가?
/ 최원식 자유기고가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