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했던 청소년기를 겪은 후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그는 선뜻 교회에서 섬기기를 주저했다. 예전의 죄, 자신의 못난 과거가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하는 내면의 열망과 충돌했다. 하지만 그의 멘토였던 한 목회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두가 새로운 피조물”이라며 머뭇거리는 그를 북돋웠다. 그렇게 시작했던 그가 이젠 어엿한 사역자가 되어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로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두웠던 과거조차 더 밝은 미래를 완성시키는 수단이 될 뿐이다. 숨기고 싶던 사춘기의 방황이 중고등부 사역자가 된 그에게 더 성공적인 사역을 위한 디딤돌이 됐듯 말이다. 고조영 전도사가 8월 12일(주일) 인터뷰를 끝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약 두 달 전 워싱턴연합장로교회(담임 김해길 목사)에 새로 부임한 영어권 중고등부 담당 Jo Ko(한국명 고조영) 전도사. 그는 청소년들을 향한 특별한 애착이 있다. 자신이 가장 힘들어했던 시기였던 만큼,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 평생의 기반이 되는 ‘예수’를 전해주는 중요성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 함께 교회를 다녔던 친구들 중 대부분이 지금은 교회를 나오지 않아요. 저처럼 중고등학생 때 교회에 다니다가 대학교 때 다시 주님을 만난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부모님에 의한 강요로 혹은 피상적인 교회 생활로 (영적으로)자라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에 가는 일이 없도록 탄탄한 신앙의 기초를 세워주고 싶어요.”

‘상처입은 치유자’ 그 말이 적당할 것 같았다.

진짜 우리 집은 어디에?

그는 3남(男)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내심 딸을 기대하셨던 부모님, 그리고 무자하던 고모를 위해 부모님은 고모 네로 입양을 고려하셨다. 하지만 입양기관을 통해 입양 시키면 무조건 고모에게 보내지지 않는다는 걸 아신 부모님은 입양을 포기하셨다.

자라면서 형들은 ‘너 입양 될 뻔 했어’ 하는 말을 종종 농담으로 던졌고, 가끔 고모가 놀러오면 ‘너 내 아들 될 뻔 했다’며 볼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그에게 무의식 중에 ‘이 곳은 진짜 내가 속한 집이 아니다’하는 격리감을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게 했었나 보다.

반항심이 폭발했던 청소년기

부모님의 헌신적 사랑과 관심 속에도 조금씩 쌓였던 소외감, 부모님을 향한 불만들이 사춘기가 되자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10대, ‘의지할 곳’을 찾던 그에게 우연히 알게 된 ‘형’은 그런 존재였다. 성경말씀도 전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는 형들을 따라 그는 부모님을 따라 다니던 예전 교회를 나와 다른 교회를 다녔고, 부모님 보다 형들을 더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형들이 초대한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당시 그는 8학년이었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그는 점점 죄의 굴레에 빠져들었다. 교회 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고,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의 문화에 더 빠져들었다. 부모님께도 가장 많이 반항하던 때였다.

교회에서는 찬양팀도 섬기고, 봉사도 했지만 겉과 속이 다른 기독교인으로 그렇게 10대를 보냈다. 공부도 잘 했고, 교회도 다니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버지니아텍에 입학하고 2학년 때 한 교양 수업을 듣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 말이다.

제가 왜 우나요? 알려주세요

그가 대학생 때의 일이다. 어느날 교양 과목 중 사회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교수님이 “제 3국의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지”에 대한 강의를 하셨다. 그때였다. 영문도 모르는 눈물이 하염없이 터져나왔다.

왠만큼 슬퍼도 잘 울지 않는 성격인 그는 무척 당황했다. 처음엔 눈물을 감추고 있다가 할 수 없어 결국 강의실을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곧장 기숙사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가난과 비문명 속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졌다.

“하나님, 제가 왜 울고 있나요? 제가 사회학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길을 알려주세요.”

그는 “어디에 있든 제 3국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영적인 제 3국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사실도 알게됐다. 그런 깨달음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교회를 다니더라도 피상적으로 주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번져갔다.

그 후 테네시 주에서 열리는 1일 선교컨퍼런스에 참석했다가 그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헌신의 기도를 하게 된다.

나도 새로운 피조물이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다니는 교회에서 뭐라도 섬기길 원했지만, 청소년기에 지었던 죄들과 방황의 시기가 그의 발을 묶었다. 하지만 한 목회자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며 계속 용기를 심었고, 당시 다니던 서울장로교회에서 성경 교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현재 담임인 김해길 목사와의 인연도 꽤 오래되었다. 당시 같은 교회 유치부 목회자로 있던 김해길 목사가 개척을 떠난 후 그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사역을 계속 하길 원하면 신학교를 가야 한다는 목회자의 권면으로, 오랫동안 주저하던 신학교 입학을 결정했고, 메릴랜드 캐피털바이블세미너리에 파트타임으로 다니다가 달라스 신학교로 옮겨 올해 졸업했다.

이제 그는 청소년 때 고민하던 ‘진짜 집’도 찾았고, 아버지의 집에서 해야 할 ‘일’도 찾았다. 방황했던 과거가 그에게는 오히려 더 성공적인 사역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아무리 어두웠던 과거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에게는 더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응급실’ 되고 싶어요

그의 비전은 한인 담임 목회를 하고 있는 김해길 목사의 교회 비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응급 병원”이자 “ICU(Intensive Care Unit)”의 역할을 하는 교회를 꿈꾼다는 그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와서 고침받고, 그들을 계속 지켜봐주면서 영원한 약품을 공급해주는 곳이 그의 교회가 되길 바란다.

또 사도행전 2장 42절처럼 말씀을 중심삼고 ‘늘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 해외선교와 지역선교를 늘 돌아보는 선교 지향적 교회가 그가 꿈꾸는 교회다.

가르치는 중고등부 학생들은 아직 10여명 안팎이지만, 그는 “내 가치는 100명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100% 헌신된 사람”이라며 “소수라도 그들에게 튼튼한 그리스도인의 기초를 닦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2세들은 문화에서 빚어진 갈등과 부모님의 과보호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또 큰 도전 중 하나는 피상적 인간관계를 불러오는 인터넷의 발달이에요.”

그는 약 1년의 기간을 두고 중고등부 뿐 아니라 영어권 성인들도 포용할 수 있는 사역으로 발전시킬 꿈도 꾸고 있다.

워싱턴한인연합장로교회 주소) 7009 Wilson Lane, Bethesda, MD 20817
문의) 301-229-9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