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은 이뤄졌다. 무일푼으로 미국에 갔던 장도원•장진숙 부부는 30여 년 만에 36억 달러(약 4조1400억원)의 재산을 모았다.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부자 가운데서도 상위권인 88위다. 올해 처음 400대 부자에 진입한 18명 중 최고 순위다. 그들이 창업한 ‘포에버21’이 고속성장 중이고 올해 매출액이 3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여 내년에도 미국 부자 순위를 흔들 인물로 전망된다. 이런 놀라운 성공은 이 부부를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 7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커플’로 한국계로는 유일하게 38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9월엔 부인 장진숙씨가 미국에서 6명밖에 없는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 중 한 명으로 포브스 선정 세계 파워우먼 39위에 올랐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49위)보다 높은 순위다.
이들 부부가 만든 패션 브랜드 포에버21은 패스트 패션계의 다크호스다.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자라, 일본의 유니클로에 맞서는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 성장한 것이다. 이제는 미국,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 어딜 가도 중심가에서 포에버21 매장을 만날 수 있다. 미국의 이민자로 출발해 전 세계 500여 개 매장에 4만여 명의 직원을 두고, 3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패션 제국의 수장 장도원 회장은 남다른 감각과 수완으로 짧은 기간에 포에버21을 굴지의 패션 브랜드로 키웠다. 그는 친구들과 달리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시 한국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서울 명동에 터를 잡는다. 커피가 유행을 타기 시작한다는 걸 재빨리 알아차리고 커피 배달 일에 뛰어든 것. 겁 없이 시작한 한 평짜리 작은 커피 배달 가게는 그의 첫 사업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넓은 땅에서 기회를 잡고 싶었다. 1981년 아내인 장진숙씨와 함께 무일푼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식당 접시닦이, 청소, 주유소 아르바이트…. 낯선 미국에서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저희가 이민 온 81년에는 미국에서 ‘Korea’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를 때였습니다. 그 당시 이민 온 사람들은 언어, 문화,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직업을 선택할 여지는 거의 없었죠.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해야만 했죠.” 그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했다.그렇게 해서 $11,000이 모이자 이민 3년만에 3년 동안 6사람이 망해 나간 가게를 싸게 얻어1984년 의류업을 시작했다. 그게 바로 포에버21이다.
“미국은 저에게는 제2의 고향이자 지금의 저와 가정, 그리고 포에버21이 있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찾던 중 실업률 문제가 절실하다는 걸 알았죠. 그 후부터 회사의 안정과 매출보다는 고용창출에 중점을 두게 됐습니다(포에버21의 직원은 2008년 2만1000명에서 현재 3만5500명으로 늘었다).” 유통업(Retail)은 단시간에 성공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오랜 시간 끊임없는 노력과 재투자를 해야 하고 결과 또한 바로 나타나지 않죠. 저희는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을 때도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한 우물만 팠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믿음입니다. 저희는 기독교를 믿으며 다시 태어났습니다(Born again Christian). 믿음이 있었기에 회사, 가족, 신앙 생활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되지 못했을 겁니다.”
2009년 포브스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25명의 재미동포’라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 장도원 회장은 첫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리스트에 올라간 대부분의 재미동포는 고학력 엘리트였다. 자수성가해 사업가로 꿈을 이룬 이는 장 회장 등 몇몇에 불과했다. 그는 성공 요인으로 ‘하나님의 힘’을 꼽는다. 그는 거듭난후 단기 선교에 다녀 오면서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점검해 보니까 돈을 사랑하고 있는것을 발견하고 돈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후 시험이 왔다. 5%의 마진을 떼고 4천5백만불을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쓸수 있는 계약 제안이 들어 왔다. 기도 했더니 “네가 그 돈이 필요하냐 너무 편하고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면 네가 나를 찾겠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회사에서 난리가 났다. 그가 싸인을 안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돈에 붙잡히는 것을 매우 조심했다. 돈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그는 십분의 일로 산다.
아내와 두딸과 함께 가족경영을 하는 그는 “두 딸에게 성경적 교육을 시켜왔습니다. 잘못했을 땐 애들 엄마가 매를 들고, 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방학 때는 꼭 두 달씩 아프리카, 파키스탄, 인도 등지에 단기 선교를 보내 봉사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본인들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합니다. 후에 본인들 2세에게도 꼭 그렇게 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몇 대에 걸쳐 가족사업으로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냅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딸들에게도 사업을 물려줄 생각입니다. 우리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축복하신 이유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위해 물질을 사용한다. 선교를 위해서 많은 물질을 드리고, 자신들이 가난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북한 주민에 대한 식량 지원도 계속하고 있다.그는 유명해진 후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아왔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이 그것이다. 하지만 대답은 “옛날 이스라엘에 솔로몬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그는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임박해서는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향해 살았기에 그는 헛되다고 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께 에게 감사하다고 할 수 있는 삶이 진정한 성공 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이들 부부가 만든 패션 브랜드 포에버21은 패스트 패션계의 다크호스다.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자라, 일본의 유니클로에 맞서는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 성장한 것이다. 이제는 미국,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 어딜 가도 중심가에서 포에버21 매장을 만날 수 있다. 미국의 이민자로 출발해 전 세계 500여 개 매장에 4만여 명의 직원을 두고, 3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패션 제국의 수장 장도원 회장은 남다른 감각과 수완으로 짧은 기간에 포에버21을 굴지의 패션 브랜드로 키웠다. 그는 친구들과 달리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시 한국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서울 명동에 터를 잡는다. 커피가 유행을 타기 시작한다는 걸 재빨리 알아차리고 커피 배달 일에 뛰어든 것. 겁 없이 시작한 한 평짜리 작은 커피 배달 가게는 그의 첫 사업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넓은 땅에서 기회를 잡고 싶었다. 1981년 아내인 장진숙씨와 함께 무일푼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식당 접시닦이, 청소, 주유소 아르바이트…. 낯선 미국에서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저희가 이민 온 81년에는 미국에서 ‘Korea’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를 때였습니다. 그 당시 이민 온 사람들은 언어, 문화,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직업을 선택할 여지는 거의 없었죠.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해야만 했죠.” 그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했다.그렇게 해서 $11,000이 모이자 이민 3년만에 3년 동안 6사람이 망해 나간 가게를 싸게 얻어1984년 의류업을 시작했다. 그게 바로 포에버21이다.
“미국은 저에게는 제2의 고향이자 지금의 저와 가정, 그리고 포에버21이 있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찾던 중 실업률 문제가 절실하다는 걸 알았죠. 그 후부터 회사의 안정과 매출보다는 고용창출에 중점을 두게 됐습니다(포에버21의 직원은 2008년 2만1000명에서 현재 3만5500명으로 늘었다).” 유통업(Retail)은 단시간에 성공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오랜 시간 끊임없는 노력과 재투자를 해야 하고 결과 또한 바로 나타나지 않죠. 저희는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을 때도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한 우물만 팠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믿음입니다. 저희는 기독교를 믿으며 다시 태어났습니다(Born again Christian). 믿음이 있었기에 회사, 가족, 신앙 생활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되지 못했을 겁니다.”
2009년 포브스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25명의 재미동포’라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 장도원 회장은 첫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리스트에 올라간 대부분의 재미동포는 고학력 엘리트였다. 자수성가해 사업가로 꿈을 이룬 이는 장 회장 등 몇몇에 불과했다. 그는 성공 요인으로 ‘하나님의 힘’을 꼽는다. 그는 거듭난후 단기 선교에 다녀 오면서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점검해 보니까 돈을 사랑하고 있는것을 발견하고 돈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후 시험이 왔다. 5%의 마진을 떼고 4천5백만불을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쓸수 있는 계약 제안이 들어 왔다. 기도 했더니 “네가 그 돈이 필요하냐 너무 편하고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면 네가 나를 찾겠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회사에서 난리가 났다. 그가 싸인을 안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돈에 붙잡히는 것을 매우 조심했다. 돈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그는 십분의 일로 산다.
아내와 두딸과 함께 가족경영을 하는 그는 “두 딸에게 성경적 교육을 시켜왔습니다. 잘못했을 땐 애들 엄마가 매를 들고, 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방학 때는 꼭 두 달씩 아프리카, 파키스탄, 인도 등지에 단기 선교를 보내 봉사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본인들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합니다. 후에 본인들 2세에게도 꼭 그렇게 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몇 대에 걸쳐 가족사업으로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냅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딸들에게도 사업을 물려줄 생각입니다. 우리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축복하신 이유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위해 물질을 사용한다. 선교를 위해서 많은 물질을 드리고, 자신들이 가난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북한 주민에 대한 식량 지원도 계속하고 있다.그는 유명해진 후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아왔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이 그것이다. 하지만 대답은 “옛날 이스라엘에 솔로몬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그는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임박해서는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향해 살았기에 그는 헛되다고 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께 에게 감사하다고 할 수 있는 삶이 진정한 성공 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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