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 여인숙 (Inn of the Good Samaritan)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은 중간 입장의 질문이 아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이었다 (눅 10:25). 누가복음 11:4절에서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에서 시험 (test/ peirasmo,j)은 유혹 (temptation)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이다. 예수님은 율법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느냐?” 이에 율법사는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율법사는 당시 모든 유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토라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했다. 랍비 아키바 (R. Akiva)는 토라의 가장 큰 교훈을 신명기 6장과 레위기 19장이라고 가르쳤다 (Sifra Kedoshim ch. 4 on Lev. 19:18). 율법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신명기 6:5절과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레위기 19:18절에 근거하여 대답했다. 율법사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에 율법사가 다시 물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았지만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던 중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 (여인숙)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은 그 율법사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비유의 말씀이지만 예수님은 매우 사실적인 배경에서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여리고,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 강도 만날 수 있는 상황, 이 모든 상황은 1세기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사실적인 배경에서 언급된 이 비유에서 ‘여인숙 (주막)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복음 10:25-37절에는 여인숙의 위치에 대해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비유를 읽는 사람들은 여인숙의 위치에 대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어딘가에 있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한다.

역사적으로 여인숙의 위치는 4세기, 비잔틴 시대의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4세기 말,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은 로마 공의회 가족인 파울라 (Paula)와 함께 성경에 기록된 거룩한 장소들을 찾아 성지 순례에 동행하였다. 이후 파울라는 성지 (Holy Land)로 이사했고 베들레헴에 수도원을 건축하기도 했다. 파울라가 사망한 이후, 404년 제롬은 파울라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은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에 있다고 적었다.

“그녀 (파울라)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여리고로 내려갔다. 이 길은 누가복음 10장에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길이다. 제사장, 레위인은 그 사람 옆을 지나갔지만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 (보호자)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망의 장소에서 그를 구하여 자기 짐승에 태워 여인숙, 교회로 데려갔다. 여기에서 그녀 (파울라)는 (피의) 아둠밈으로 불리는 장소를 마음에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곳은 강도들이 자주 출현했던 곳이고 많은 피들을 흘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십자군 요새에서 서쪽 멀리 보이는 보이는 산지가 감람산이다
유세비우스의 오노마스티콘 (Onomasticon)에 보면, 제롬이 말한 “아둠밈은 붉은 비탈길 (the Ascent of the Reds) 또는 피가 배인 장소 (Blood-Stains)로도 불렸다. 강도들의 피해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에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있다. 이 길에 이곳을 통행하는 여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군 막사가 있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비유 가운데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상황을 말씀하셨다.

제롬과 유세비우스의 기록은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에 관한 가장 오래된 역사적인 기록이다. 제롬의 편지에 대한 유세비우스의 설명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여행자들을 돕기 위한 군 막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은 마알레 아둠밈 곧 아둠밈 비탈길 (Maa’ale Adummim, 수 15:7, 18:17)로 알려진 곳이다. 아둠밈 (붉은)이란 이름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 지역 양쪽의 붉은 (adamdam) 바위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판단된다. 또는 아둠밈의 어원을 히브리어의 피 (dam)에 근거하여 마알레 아둠밈이란 강도를 만난 피해자들이 흘린 많은 피로 말미암아 피의 비탈길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비잔틴 시대에 이곳에 군 막사, 여인숙 그리고 교회가 있었다.

제롬이 말한 여인숙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중간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 거리는 약 16마일이다. 이 길은 수 천 년에 걸쳐 예루살렘과 요단 계곡을 연결한 길이다. 1차 성전 시대 (1,000-586 B.C.)에 이 길은 아라바 길 (신명기 2:8, 삼하 2:29, 4:7, 왕하 25:4, 렘 39:4, 52:7)로 불렸다.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수 많은 기독교 순례자들은 갈릴리에서 요단 계곡을 따라 여리고에 이른 후, 유대 광야의 이 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이 길의 일부 구간은, 현대 도로에 포장되어 매일 수 많은 차량들이 통행한다.

▲십자군 시대의 요새이다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 발굴은 1998년부터 시작되어 2006년까지 9년간 계속되었다. 발굴 결과 이곳에서 구약 시대의 어떤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발견된 유물들은 모두 2차 성전 시대에 속한 유물들이다. 주후 1세기 로마 시대에 이곳에 군 막사 (military fortress)가 건축되었고, 4세기 비잔틴 시대에는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와 여행객들이 머물 수 있는 숙박 시설, 그리고 여행객들이 탈 짐승을 위한 축사도 건축되었다. 비잔틴 시대의 교회 바닥 모자이크는 1934년 당시에도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지만 이후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이 모자이크에 사용된 작은 돌들을 기념품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70년이 지난 지금은 모자이크가 거의 남지 않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바닥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모자이크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보다 모자이크 전체를 보수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다행인 것은 영국이 통치할 1930년대에 찍은 바닥 모자이크 사진이 있었고, 고고학자들은 그 사진에 표현된 대로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 교회의 바닥 모자이크를 보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보수된 모자이크는 2009년 6월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 박물관 (Good Samaritan Inn Museum)이란 이름으로 개관되었다.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에서 서쪽으로 멀리 보이는 높은 산지는 감람산이며, 동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지는 모압 산지이다. 이곳에 세워진 가장 최근의 건물은 19세기 오토만 술탄 이브라힘 파샤 (Sulta Ibrahim Pasha)에 의한 건축된 칸 (Khan)이다. 칸 (Khan)은 아랍인들의 숙박소를 말한다. 칸 (Khan)에서 북서쪽 현대 도로의 건너편으로 헤롯 (37-4 B.C.)이 건축한 모자이크, 스투코, 프레스코로 꾸며진 목욕 시설 (a palace with a bathhouse adorned with mosaics, stucco and frescoes)을 갖춘 궁전이 발견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이 건물은 후기 십자군 시대에 크게 훼손되었다. 그리고 칸의 북동쪽 언덕에는 지금도 악당들의 여행 (Tour Rouge) 또는 붉은 탑 (Red Tower)으로 불렸던 십자군 시대의 요새를 볼 수 있다. 이곳에 가면, 아직도 남아 있는 돌 계단을 따라 탑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곳 정상에 서면, 탁 트인 사방을 잘 볼 수 있다. 동쪽 모압 산지, 서쪽 감람산, 남쪽 유대 광야와 북쪽 벧엘 산지까지 볼 수 있다. 십자군 시대의 요새는 세 겹으로 방어되었다. 해자, 해자를 보호한 성벽, 그리고 요새의 남쪽과 서쪽으로 참호가 있었다. 십자군 시대 이전, 이곳에는 4세기 초기 비잔틴 시대의 요새가 있었고 그 후에는 템플 기사단 (Templars)의 요새도 있었다.

누가복음 10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읽어본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율법사에게 예수님은 비유로 대답하셨다. 이 비유 가운데,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데리고 가 돌보아주었던 주막이 실재했다면, 그 주막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중간 정도 아둠밈 비탈길에 있는 지금의 사마리아 여인숙 자리가 분명하다.

성경을 사실적인 배경에서 공부할 마음이 있어 이스라엘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이곳도 방문하면 좋다. 그러면 누가복음 10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훨씬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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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