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명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카라얀과 레너드 번스타인은 20세기의 최대의 라이벌인 동시에 고전음악의 현대적 해석을 진일보 시킨 선의의 경쟁자 이기도 했다. 세계 필하모닉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베를린 필을 카라얀이 그리고 뉴욕 필을 번스타인이 맡아서 오랫동안 명성을 날렸고 방대한 양의 레코드를 남겼다.

카라얀은 오스트리아 잘즈부르크에서 태여난 그리스계이지만 나치전력이 있을만큼 전통적 독일인이라 할 수 있다. 번스타인은 미국계 유태인으로서 그들의 정치적 성향은 극과 극이었다. 카라얀은 독일인답게 유태인 작곡가인 멘델스존, 말러, 마이어베르의 연주를 경원하고 베토벤이나 반 유대주의자였던 바그너 연주에 힘을 쏟았다. 반면 번스타인은 멘델스죤이나 구스타브 말러를 자주 무대위에 올려 연주하였다. 번스타인이 미국에서 성공하고 유럽을 동경하였지만 카라얀은 그를 객원으로 불러주지를 않았는데 베를린 필의 이사회가 카라얀을 무시하고 번스타인을 초청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연주케 한다. 상상외의 대호응을 얻어낸 번스타인을 시기한 카라얀은 이후 한번도 번스타인을 초청하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번스타인의 말러연주의 성공을 질투하여 그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말러를 2번이나 연주하여 대 성공을 거둔다. 그의 연주사에 한 획을 긋는 대 반전이었던 것이다.

카라얀이 질풍노도와 같은 남성적 지휘자라면, 번스타인은 아주 섬세하고 여린 여성적 지휘자였다. 단원들을 노예처럼 부리던 비 인격적인 카라얀은 그의 독단적 필 운영에 불만을 품은 한 단원의 칼에 찔리기도 하였다. 그는 일류가 아니면 그의 단원으로 채용하지 않았는데 세계 3대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안네 소피 무터도 그가 발굴한 영재였다. 이에 비해 유모어로 단원들을 화합의 장으로 이끌어 갔던 번스타인은 뉴욕 필을 그만 둘때까지 청소년들을 위한 기획연주를 계속하는 등 고전음악의 대중화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는 생애 말년에 태평양음악제(PMF)를 만들어 젊은 음악가을 육성하는 한편, 퍼시픽(Pacific)의 평화를 소망하였다. 번슈타인은 1990년 PMF음악제 개회식에서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남겼다. "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절박한 시점에 도달했다. 음악을 위해서,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는 것이 최상일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나머지 시간을 내가 처음에 가장 사랑했던 피아노에 몰두할 것인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할 것인가, 또는 지휘자로서 활동에 전념할 것인가,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작곡가로서 활동에 전념해서 새로운 작품을 작곡할 것인가, 일흔 한살이 되면 이러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결론에 도달했다. 남은 에너지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남은 시간을 교육에 바치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대상은 다음세대를 이어갈 젊은 음악가들이다. 음악뿐만이 아니고 예술에 대해서도, 그리고 예술뿐만이 아니고 예술과 인생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아가서 진정으로 자신을 안다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 한다는 것, 이 같은 사실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퍼시픽 뮤지컬 페스티벌은 내가 남은 삶을 바치는 헌신과 정열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 때 번슈타인은 폐암 말기의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두사람은 그 연주방법 못지않게 성품도 달랐던 것이다.

세상에는 이같은 두종류의 지도자들이 상존하고 있다. 카리스마와 결단력으로 대중을 휘여잡고 결국은 하모니를 이루게 하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우유부단하다고 할 만큼 친화적이어서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 비로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지도자도 있다. 한국과 미국은 공교롭게도 대선이 맞물려서 과연 누가 차기 대통령 감인가? 하는 것이 양국민뿐 아니라 세계인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국이야 민주주의가 성숙된 나라라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염려는 없다. 그런데 태반의 대중들이 독재자라 할지라도 나라를 일사분란하게 이끌어 가 주기를 기대한다는데 한국은 큰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 확대를 부르짖고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정권하에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게된데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시간은 다가오는데 카라얀과 번스타인 중간쯤 되는 지도자가 혜성처럼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