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전기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 시공사 | 964쪽 | 38,000원

2천년 전 로마인들에게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면, 기독교인들에게 모든 길은 ‘예루살렘’으로 통한다. 구약의 중심인물 중 하나인 다윗왕 이후 이 성은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지였고, 신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도 바로 이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과…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복음을 처음 전파한 곳도 예루살렘이었고, 성경의 맨 마지막 책(요한계시록)에서 모든 환란이 마무리된 후 등장하는 곳도 ‘새 예루살렘’이다.

하지만 이 ‘성스러운 도시(聖都)’ 예루살렘의 3천년 역사는 기독교인들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이슬람 근본주의에게도 ‘성지’였고, 문명이 충돌하는 전략적인 전장이자 무신론과 신앙이 부딪치는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 도시는 많은 세월동안 뺏고 뺏기는 전쟁터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군침을 흘렸으며,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예루살렘 전기(시공사)>는 이 영욕(榮辱)의 도시 예루살렘의 역사를 집중 조명하면서, 세계의 역사까지 조망하는 책이다. 저자인 유대인 역사가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이 도시를 “하나의 신(神)이 사는 집이자, 두 민족의 수도이며, 세 종교의 사원이고, 하늘과 땅에서 두 번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가 됐다고 말한다. 이러한 ‘성스러운 도시’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예루살렘이 신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에 있어 지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하지만 이 도시는 경제학적이나 입지조건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리 매력적이진 않다. “왜 하필 예루살렘인가? 그곳은 지중해 해변의 무역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물도 부족하고 여름에는 태양이 작열하며 겨울에는 바람이 살을 에고, 돌산들은 험해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그 도시는 그만큼 오랫동안 성스러웠기 때문에 신성이 점점 더 강화된 것이다. 성스러움에는 영성과 신앙 뿐 아니라 합법성과 전통도 요구된다.”

예루살렘이 ‘거룩함의 원형’이 된 것이 크리스천들에게는 물론 하나님이 임재하셨던, 다윗왕이 지은 성전(聖殿)과 그 안의 지성소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파괴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는 대재앙을 겪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시온의 영광’을 기록하고 호소했는데, 보통 이러한 대재앙을 겪은 민족들이 사라지는 반면 유대인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이를 ‘전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느부갓네살 이후 수많은 ‘영웅’들이 탐내는 곳이 됐고, 성경에 나오는 평화와 환희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대로부터 나폴레옹과 수많은 십자군, 이슬람의 살라딘과 심지어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3세까지 눈독을 들였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처참히 파괴되던 서기 70년 ‘예루살렘 공방전’을 다루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던 그리스도 예언의 성취로 일컬어지는 그날 이후,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강제로’ 되찾아지기까지 2천여년간 이 땅은 ‘원 주인’인 유대인 대신 다양한 세력들의 차지였다.

이후 로마인들을 비롯해 이슬람, 십자군과 또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거친 이 예루살렘의 ‘전기’는 유대인들이 다시 되찾은 이 땅을 지켜내는, 1967년 6일 전쟁까지의 기록으로 대단원을 마무리한다. 저자는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오늘의 예루살렘’에 대해 “매일 해가 뜰 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생명을 얻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해가 뜰 무렵이면 바위 돔에서는 무슬림들이, 서쪽 벽에서는 유대인들이, 성묘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언어로 기도하고 있는 곳.

‘예루살렘의 내일’에 대해서는 두 개의 길이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예루살렘 시민, 즉 종교적 민족주의 국가 대 ‘거품’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유주의적이고 서구화된 텔아비브”가 그것이다. 예루살렘은 이제 중동의 조종석이며, 서구 세속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사이의 전쟁터가 됐다. 그곳은 어떤 면에서 너무도 사랑스럽지만, 어떤 면에서는 언제나 증오와 공허함과 무모함이 가득하고 터무니없이 저속하며 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강렬하다. 저자는 방대한 연구를 통해 한 도시의 일대기를 완성한 후, 감상적인 필체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천국과 지상이 만나고, 신이 인간을 만나는 신성한 둔치는 여전히 인간의 지도제작 능력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햇살만이 그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데, 빛은 마침내 예루살렘에서 가장 정교하고도 신비스러운 건축물 위로 떨어진다. 태양 빛으로 몸을 씻고 반짝이는 빛을 내며 황금의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마지막 날이 올 때까지 황금 문은 잠겨 있을 것이다.”

‘우리들만의 예루살렘’만을 생각했던 크리스천들에게 ‘다른 시각’에서 이 도시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유익한 책이다. 저자는 이스라엘 독립에 큰 역할을 한 유대 명문가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예루살렘 주변을 배회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집필의 적임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광범위한 조사 연구, 생동감 넘치는 묘사로 대하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보인다. 9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여름 휴가철을 맞아 도전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