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특별새벽기도 기간, ‘거룩’ 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 기간 매일같이 거룩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어느 날 새벽, 저는 주님 앞에 심각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물론 막연히 거룩에 대한 갈망은 항상 있었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결심하며 고백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후, 저는 절대로 하나님의 이름이나 명예에 누를 끼치는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실만한 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Trust me, Lord!” 그리고는 이후, 성령님께 이같은 인생이 되도록 매순간 저를 주장하고 도와달라고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그 결심을 한 날, 저는 Henry Blackgaby 저서, Holiness 가운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죄’ 라는 내용을 설교 중 잠시 인용하였는데, 그 날 따라 그 메세지가 제 심령을 유난히 사로잡았습니다.

삼하 12장에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야를 전쟁터로 내보내어 죽게 한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을 질타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블랙가비 목사님은 그 가운데 죄를 나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내가 너를 신뢰하고, 내가 너를 아끼고 사랑하며 내가 너에게 모든 은총과 특권을 아끼지 아니하였는데, 어찌하여 너는 나를 멸시하고 이 큰 죄를 지었는가 힐문하셨습니다.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하나님을 멸시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힐문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여 너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나의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하였고, 너를 나의 자녀삼아 나의 모든 능력과 은총과 영광을 아낌없이 부어주었는데, 어찌하여 너는 나를 멸시하며 나의 말을 버리는가. 네가 받은 은혜들을 헤아려 보라, 네게 주어진 축복들을 헤아려 보라, 그런데 어떻게 너는 나를 그렇게 멸시하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이렇게 애통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죄를 짓는 우리들은 결코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연약하여 실수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또한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원수로 크게 훼방거리를 얻게 하였다고 말씀하는데, 이 본래 의미는 하나님의 원수로 하나님을 모욕하게 하였다는 뜻 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원수들이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고 에배하며 섬기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우리의 자녀가 죄를 지을 때 우리의 원수들이 빈정되겠지요. “자식 잘 키웠군, 얼마나 잘 키워서 그 모양인가”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원수들이 하나님에게 그렇게 조롱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간들의 꼬락서니를 보시오. 전능하다는 당신은 왜 자녀들의 타락조차 막지 못했나요.” 나의 죄로 인하여 내가 비난을 받고 벌을 받는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죄로 인하여 나의 하나님이 사단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허용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히 10:26-29. 말씀처럼 믿는 자들이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밟는 것이고,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하는 것이며,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밟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하나님 아들이 흘리신 보혈을 경홀히여기는 것이 얼마나 진노를 불러올 끔찍한 죄입니까? 보혜사가 되사 늘 우리를 도우시는 은혜의 성령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죄입니까?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최고의 천사들로부터도 그 거룩하심이 찬양받으시는 지고 지순하신 분이십니다. 불의와는 상관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는데, 당신의 자녀들이 저지르는 불의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이 얼마나 손상되는 것인가 생각할 때, 죄라는 것이 정말 끔찍하다고 여겨집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도대체 우리가 하나님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모세의 법을 무시하며 범한 것도 큰 심판을 받아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을 조롱하고 버리는 이 나라를 생각하면 그저 가슴 아픈 탄식만 나올 따름입니다. 부지런히 회개하며 하나님의 궁극적 뜻인 거룩으로의 부르심을 이루어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