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목회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늘 하노라면, 아직도 목회가 무엇인지를 잘 몰라서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질문은 평생 해야 하는 질문이어서 그래야 하는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둘 다 맞는 듯 합니다. 목회란 하면 할수록 ‘어렵다’ 아니, ‘잘 모르겠다’가 정답입니다. 어떤 직업이든 반복되면 탄력이 붙을 것 같은데, 목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좀 안다고 하는 순간부터 목사라는 이름을 내려놓을 때까지 이 질문은 끊임없이 되물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평생 갈등(?)’이란 말이 맞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목사님! 요즘 힘이 드시나?” 혹은 “아니, 그만큼 목회했으면서도 아직도 그러시나?”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반대로 “아, 목회란 하면 할수록 쉽고 명쾌해. 원리대로만 하면 되는거야. 성경에 다 나와 있는데!”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반응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야, 정말 유능한 목사야? 역시 목사다워!” 하실까요? 아닐 것입니다. 요즘은 은퇴석상에서 지난 시간 무탈없이 목회하여 마쳤음을 감사하는 선배목사님들의 고백이 그냥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목회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목사라는 성직이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결코 맞지 않는, 참으로 부담스런 옷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거룩’(聖) 하지 않은데, 거룩한 직업이라는 ‘성직’(聖職)의 옷을 입혔으니, 그것이 자기와 잘 맞는다고 한다면 그 자체가 모순일 것입니다. 그래서 매번 그 옷을 입고 벗을 때 마다 스스로 질문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 지금 잘 하고 있나?” “나, 지금 뭐하고 있나?”... 물론 성직은 위로부터의 부름이 없다면 애초부터 시작이 어렵지만, 그 부르심이 날마다 명쾌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목회가 본질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목회란 사실 신에 대한 것 이상의, 사람에 대한, 아니 사람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현실적으론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늘 변하는 사람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은 사실 가장 어려운 주문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목회에서 오는 회의는 이 세상의 악이나 하나님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변화무쌍함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은 믿음이 아닌 사랑의 대상임을 알지만,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와 실망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희망과 재기의 빛은 가끔 엉뚱한데서 조우하게 됩니다. 지난 주, 한국에 오가는 동안 ‘허 준’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1998년에 나온 이 드라마의 감동을 잊을 수 없었는데, 엑끼스로 편집된 내용이나마 이전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시는대로 그 내용은 조선시대 기울어가는 가난한 양반의 가정, 게다가 서출의 신분으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노름과 사기로 인생을 전전하다가, 유의태라는 의원을 스승으로 만나게 되고, 그 후 수많은 고난과 갈등, 유혹을 뚫고 진정한 의사, 아니 한 인간이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의사가 되어 누군가를 고친다는 것이 결코 어떤 방법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기에, 오늘이라는 시대에서 갈등하는 목사로 살아가는 저 자신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목사’라는 이름만을 가진 사람에게만 적용이 될까요. 사실 당시 화제가 되었던 [허 준 신드롬]은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근원적인 물음을 제시하였고, 부끄럽게도 우리는 아무 답을 갖지 못한 자신을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당시의 폭발적인 시청률은 시대적인 흐름과도 연결되어, IMF를 통해 거품 성공이 아닌,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를 묻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 선배 한 분이 쓴 책의 제목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길, 신의 길’입니다. 이 제목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요, 동시에 그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의 길 위에서 신의 길을 묻는 것’, 이것이 실제적으로 목회의 업으로 사는 저와 심증적으로 목회의 삶으로 사는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숙제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같이 안전지향적, 물질만능적 시대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순교보다도 더 어려운 믿음의 길을 걷고 있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대의 목사로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 교우들의 삶을 지켜보노라면, 적지 않은 생각들이 머리와 가슴을 조여옵니다. 어쩔 때는 손에 땀이 날 정도의 안타까움으로, 때론 털썩 주저앉고 싶은 허탈의 심정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사건을 만나고 그 시간을 통과하는 교우들이 순간마다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을 하기를 원하는 간절함입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삶의 길 위에서, 훗날 정말 잘했다고 할 수 있는 결단으로 점철되는, 진정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신이 사람의 길 위에 서 있음을 인식하지만, 동시에 그 길 위에서 부단히 신의 길을 묻고, 찾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이 본질적으로 평생 갈등이라도, 정녕 후회없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목사가 업인 사람보다 훨씬 괜찮은 삶이 여기 있음입니다. 이번 주도 하늘 복으로 충만한 삶을 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