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일주일 동안 여름학기 강의가 있었다. 목회학 석사와 기독교상담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회돌봄’(Pastoral Care)이란 과목으로 열렸던 이번 강의에서 나와 학생들은 매우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었다. 인간이 겪는 고통과 아픔과 상실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하루에 6시간씩 일주일 동안 함께 인간들의 유한성, 기본적인 목회돌봄과 상담 모델 심층경청법, 상실과 비탄, 십자가신학과 인간고통에 대한 것들을 다루었던 것이다.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이론들이 아니라 우리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니, 그 날 모인 15명의 학생들과 나 자신이 경험했었던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소그룹 모임과 전체 강의시간을 통해서 서로 나누면서 실천적으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었다. 저 멀리 있었던 것 같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행복해 했다.
강의를 준비하고, 수업이 시작되어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나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 속에서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그 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나 쓰라린 상처의 흔적 속에서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많은 대답들 속에서 오늘 나는 바로 하나님께서 진실로 살아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과거에 계셨고 혹은 영원토록 살아계실 하나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시점에서 중요시 여기는 목회상담과 돌봄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하나님은 바로 “오늘 여기”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인 것이다. 시편 기자는 42편 2절에서,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라고 말하면서 5절에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양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시편 기자의 고백에서 오늘 고통과 불안과 좌절과 실의에 빠진 이들이 위로와 새 힘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 속에서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은 약속만 하시고 잠시 사라져 버렸다가 언젠가 먼 미래에 나타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소망을 간구하는 하나님께서는 바로 지금 우리에게 나타나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오늘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들이 왜 현재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 이유에 대한 많은 설명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즉, “인간은 행복하다고 느껴야만 행복할 수 있는 존재인데, 불행히도 인간은 항상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영원히 행복해 질 수 없는 존재이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들의 속내를 잘 표현하고 있을 까 싶다. 필자는 기독교 상담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지만, 여러 통로를 통하여 실제로 상담을 하다 보면,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그렇게 절망으로만 가득한 것 같지 않은데, 죽고만 싶다는 것이다. 한국에 이런 사례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인생이 일이 잘 풀리고, 돈 걱정이나 자식 걱정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살아가고 싶은 지 모른다. 그래서 현실에서 조금만 어려움을 만나거나 상처를 받게 되면 마치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직선적이거나 단순하지 않다. 넘어야 할 산이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벼랑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현실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힘 주시고 도우시는 “지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 역시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바로, 진실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희망이 되시는 이유이다.
장보철 목사, 워싱턴침례대학교 기독교상담학과 교수/ bcchang@wbcs.edu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이론들이 아니라 우리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니, 그 날 모인 15명의 학생들과 나 자신이 경험했었던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소그룹 모임과 전체 강의시간을 통해서 서로 나누면서 실천적으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었다. 저 멀리 있었던 것 같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행복해 했다.
강의를 준비하고, 수업이 시작되어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나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 속에서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그 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나 쓰라린 상처의 흔적 속에서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많은 대답들 속에서 오늘 나는 바로 하나님께서 진실로 살아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과거에 계셨고 혹은 영원토록 살아계실 하나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시점에서 중요시 여기는 목회상담과 돌봄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하나님은 바로 “오늘 여기”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인 것이다. 시편 기자는 42편 2절에서,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라고 말하면서 5절에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양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시편 기자의 고백에서 오늘 고통과 불안과 좌절과 실의에 빠진 이들이 위로와 새 힘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 속에서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은 약속만 하시고 잠시 사라져 버렸다가 언젠가 먼 미래에 나타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소망을 간구하는 하나님께서는 바로 지금 우리에게 나타나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오늘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들이 왜 현재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 이유에 대한 많은 설명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즉, “인간은 행복하다고 느껴야만 행복할 수 있는 존재인데, 불행히도 인간은 항상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영원히 행복해 질 수 없는 존재이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들의 속내를 잘 표현하고 있을 까 싶다. 필자는 기독교 상담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지만, 여러 통로를 통하여 실제로 상담을 하다 보면,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그렇게 절망으로만 가득한 것 같지 않은데, 죽고만 싶다는 것이다. 한국에 이런 사례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인생이 일이 잘 풀리고, 돈 걱정이나 자식 걱정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살아가고 싶은 지 모른다. 그래서 현실에서 조금만 어려움을 만나거나 상처를 받게 되면 마치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직선적이거나 단순하지 않다. 넘어야 할 산이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벼랑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현실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힘 주시고 도우시는 “지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 역시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바로, 진실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희망이 되시는 이유이다.
장보철 목사, 워싱턴침례대학교 기독교상담학과 교수/ bcchang@wbcs.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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