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최남단 사막 속 뼈대이룬 둔덕 높이
마른 이끼 같은 수목을 옷 입고 둘러 선
세 개의 절벽 산등성이,
비바람 씻겨 내리는 차가운 폭우로 솟구쳐 오른
산 뼈대 위엔, 사방형 고원평지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로마 타이터스 장군은 東征의 야심을 터득해
시리아를 넘나들더니 아시리아까지
第十戰團으로 주름을 잡고
남하하여 3개월의 예루살렘 목을 조르는데

겹겹이 철통같은 로마군 포위망을 어떻게든
굶주림으로 뚫고 脫出한 에쎄네파 무리들이
배고픔보다 더한 생명으로 여기던
필사본 양피지, 파피루스 經典 항아리
감춰 안고 도망쳐 내려간 곳이
사막 끝 마싸다 산마루턱이었던 것,

978명의 군사 가족으로 어린아이까지,
70~73년까지 3년을 버티더니
유대인 포로를 전면에 내세워
흙 회벽 둔덕으로 쌓아 올린 工挺隊로
던져대는 石砲丸에 못 견뎌서,

포로로 잡혀간 자기네 동족을
비탈언덕 최전방에 내 세운 戰線 때문에
동족의 殺殘앞에
뜨거운 물, 돌 떨궈 뜨리는 전술도 못 펴고

저들의 최후의 차가운 밤 새벽으로, 외치던 장수들은
카랑카랑한 목청을 다하여,
가족들의 결사를 결의하고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자식들
짝지어 자결하는 최후의 자해(自害)를 결행하는 데,
숨은 5명의 여인과 딸의 골짜기에서
살아남아서
그 쓰라린 역사가 세상에 알려졌던 이야기.

그 때의 그 정황을, 얼마 훗날
쿰란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한 少年兵士
요세프스가 로마로 끌려갔을 때,
그의 명석함을 발견한 타이터쓰 황제가 풀어 주며
전투전황 기록가로 전선을 쫓아다니게 하였고
당시의 유대의 역사를 지금 내, 그 기록으로 남기게 한
아픈 역사

축구장만 한, 산정 평지에 남겨져 있는 자취 폐허가
우리들 마음을 써늘하게 저며 오는 것은,

곡물 땅 속 창고자리, 로마식 터키 식 목욕탕
산기슭 헤롯 여름 궁전의 색깔 모자이크 바닥마루
병기 창고, 유대 식 예배의 성전 자리
전장에 쓰였던 석 포환무더기
땅 속을 파서 만든 거창한 식수저장 회벽 창고
아직도 인간 내음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뼈저린 역사를 전해주고 있는데

때로는, 우리네 아픈 사연,
걸어 온 지난날의 아팠던 이야기마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지금 내, 불어오는 휘파람 산 간벽을 타고 불어치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애절한 아우성,
우리 귀를 때리고 있어
저들, 품고 뛰쳐나온 경전(經典) 항아리가
저 건너 쿰란 폐허 산등성에 즐비하게 발굴되고도
아직껏, 가득 묻혀, 파내고 있지 않는가,

역사는, 아픈 인간 내음을 퍼내는 作業場
우리네 삶마다 저린 굴곡 이야기들
펼쳐 올려 내 보다가
모두가 목메어, 오르는 굴곡들을
몇 천 폭, 몇 만 폭의
깊숙이 감긴 뜻의 인간사 일기 歷史 章의 사연들로
전시 장 되어 넘쳐나고 있을 것 아닐 가.

가장 아픈 이야기 중 하나가, 저들의 차가운 새벽 결단의 절규였습니다. 근래로 받아보는 잡지에서, 타이터스황제와 그 새벽의 스스로 가족을 시해(弑害)하는 고고학 자료집에서 찾은 자료, 죠세프스歷史家의 휴상(胸像) 자료를 함께 실려 봅니다. 하지만 더욱 성서고고학 학도에게 담아야 할 이야기라고 한다면, 저들이 가슴마다 묻고, 예루살렘 함락의 철통같은 포위를 숨어 벗어나와, 마싸다 山頂까지 치달려온 經典(성경)항아리들이였습니다(AD.70).

사실은 이 파피루스들은 처음으로 1957년에 베두인 목동에 의하여 우연하게 발견케 된 토굴에서 찾아냈고, 이를 예루살렘 대학에서, 다시 시카고 대학에서, 레이저로 연구해서, 필사본 진본으로 찾아 낸 經典이었습니다. 인간역사는 감추어져 있지를 않습니다. 사람이 일부러 만들어 내는 조작으로도 감추어지게 되지를 않는 게 인간 역사의 진실입니다. 부끄러운 일은 그대로 부끄러 웁게, 아니, 더욱 수치스럽게, 뼈아픈 진실은 또 그렇게 올바르고 확실한 진실로 들쳐 나타나지고야 마는 것이, 인간역사입니다. 수많은 이유 없이 사라져 간, 순수한 순교자들의 절규도 하늘 공간에서 스러져가는 구름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순수한 외침은 시간이 얼마, 얼마 흘러서, 피해 입은 마음들 앞에, 하나도 어굴함도 없이, 환하게 펼쳐지고야 마는 현실로 부활하여, 한 가지 한가지 씩, 현실 위에 펼쳐져 나타나 옴을 역사는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또 더욱 명확히는, 우리가 또 어느 날 經典(성경)에 진리처럼 분명히 부활하게 되어, 더욱 뚜렷한 현실로, 확실하게 보게 될 것을 우리는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