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한인목회연구원 6월 정기모임. | |
▲최윤환 목사. | |
▲워싱턴한인목회연구원 6월 정기모임. | |
워싱턴한인목회연구원(원장 노규호 목사) 6월 정기모임이 5일(화) 여정그리스도의교회(담임 최윤환 목사)에서 열렸다.
이번 모임에서는 최윤환 목사가 요한계시록 2장 12-17절에 나오는 버가모교회를 직접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버가모 이야기”란 주제로 발표했다.
최 목사는 “버가모는 실제로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때 그의 지배하에 떨어졌었을 것”이라며, “그의 사후에 그의 막료였던 필레타리우스가 이 버가모 왕국을 세워서 통치하였는데, BC 33년에 스스로 로마제국에 편입해, 사도바울이 소아시아(Asia Minor) 지역의 이방인들에게 3차 전도여행에 나섰을 때에는 소아시아의 수도가 되어 있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최 목사는 “사도요한은 버가모가 로마의 소아시아주 수도로 로마황제를 아폴로의 화신으로 떠받들고 있어, 이 지역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로마 권력의 대표가 살던 곳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곳을 악마 중의 악마가 사는 곳이라고 비유했으리라 여겨진다”며, “성지를 순례하며 현장에서 얻는 체험을 통해서 성서를 실증적으로 이해하고 신앙을 구체적으로 내면화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다음은 최윤환 목사의 ‘버가모 이야기’ 전문이다.
버가모 이야기(연구 1)
버가모교회(계시록 2:12-17) 사건은 분명하게 성경에 기록으로 하여 놓은 사건이기에 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사건으로 우리는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향한 그 상황을 계시록을 통해 이미 예시적인 오늘날의 상황을 예증하여 주고 있습니다.
마게도니아의 에에게해 해안을 거쳐 <알렉산드로포리스> 도읍을 건넜습니다. 옛 <트로이(드로아)>를 돌아서 닿은 곳이 <베르가마(버가모)>입니다. 옛날 신작로 흙길 도로 맞은편으로는 한국 서울의 남산 반쯤 높이의 마른 풀 언덕 산이 솟아있고, 그 마루터기에는 하얀 표시 터키 깃대 표치인 달과 별이 널따랗게 온 마을에서도 처다 올려다보기에 알맞게 새겨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자연 풍광은 실제로 고대 헬라인이나 <그레대>섬사람 소위 <씨 피이플(sea people)>들에게는 모험 충동을 일으키기에 걸맞게, 거친 바다를 건너와서 이 미지의 세계에 당시 도시국가를 건설하려는 유혹에 충분히 매력을 느끼게 하는 조건 환경을 펼쳐주고 있었습니다.
이 <버가모>는 실제로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때, 그의 지배하에 떨어졌었을 것이고, 사실 그의 사후에 그의 막료였던 <필레타리우스>장수가 이 버가모 왕국을 세워서 통치하였는데, BC 33년에 스스로 로마제국에 편입을 하여, 사도바울이 소아시아(Asia Minor) 지역의 이방인들에게 3차 전도여행에 나섰을 때에는 이곳이 소아시아의 수도가 되어 있었던 곳입니다.
이제 산상도시를 내려와 시내로 들어서자
이 동방의 7교회는 그간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모두 그 소재지가 밝혀졌는데, 이곳 터키 지중해 연안 <이즈미르(옛 서머나)>, 에베소, 라오디게아, 알라세히르(옛 빌라델비아), 사데, 버가모, 악크히사르(엣 두아디라)들이 모두 말을 타면 반나절 또는 멀어야 하루가 걸리는 거리에 있습니다.
옛날 선교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사도바울과 요한이 쓴 서신의 내용 중에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언급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의 7교회는 실제적인 건물을 일컬음이 아니라 신자들의 모임을 지칭한 것이며, 교회 건물은 AD 313년 이후에 세워지게 되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이곳 버가모가 로마의 소아시아주 수도로 로마황제를 아폴로의 화신으로 떠받들고 있어, 이 지역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로마 권력의 대표가 살던 곳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곳을 악마 중의 악마가 사는 곳이라고 비유했으리라 여겨집니다.(계 2:13)
또 이곳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 이집트와 토착 <아나톨리아>의 제신(諸神)들을 모신 신전들이 있고, 이들 우상 중 최고의 우상인 제우스의 신전이 산 정상에 위치하여 세상을 호령하는 형국이라, 계시록 저자 사도요한의 비판을 받을 만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버가모 이야기(연구 2)
이른 아침 버가모 마을로 들어섰다. 터키표식 산마루턱을 돌아서 눔에 확 띠는 붉은 벽돌성곽을 오른편으로 끼고 돌짝밭 길을 선회하자 붉은 벽돌 성곽이 확 트이면서 일반 교실 약 네배쯤 되는 직사각형의 돌 마당 홀 공간이 펼쳐지고 그 안에 숱한 깨어져 나뒹구는 굵은 화강석 돌기둥들이 나 널브러져 있으면서, 바로 이곳이 사도요한 교회당이었다는 장소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 잠시동안 마음 안에는 아무 소리가 일거나 들려오지를 않는 순간을 스스로 맞았다.
얼마동안 길목을 돌아서 우리 답사원 일행은 잡풀들 사이에 군데군데 반토막 안팍 깨어져 나간 기둥들이 우뚝우뚝, 또는 흩어져 있고 네모꼴 무질서한 돌바닥이 뻗어있는 낭간같은 길을 돌아서 출구도 없는 옆길로 새어, 한 둔덕에 올라서니 한 마장 건너편쯤에 높다라이, 한 열남은 기둥들이 줄서 있는 그림 같은 정경 앞에서 멀리 건너다보다가, 느닷없이 발 앞에 나뒹굴어 있는, 무슨 그림이 새겨져 있는 돌덩어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요즘 병원마다 앞에 표식 새겨 놓은 뱀이 감겨있는 칼자루지팡이 그림이었다. 물론 의술표식이었다. 그 옛날 이 곳에 이 표식이 새겨진 것이 근거가 되어 오늘날의 의술상징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맘 담아 본다.
이제 그 건너편 기둥들 가까이 찾아가니 바로 옛 학창시절 교실에서 배웠던 코린트식,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높다란 그 기둥들이 똑바르게 나란히 엇갈려 균형맞게 줄서 있었다. 뿐 아니라 그 곁쪽으로는 역시 높다랗게 반쯤은 부서져 내린 이중 돌벽이 오래 바랜 모습으로 기억자로 서 있었다. 바로 이곳이 당시의 도서관 자리였던 것.
그 옆쪽으로 얼마를 돌아 내려가니 거기에는 원형극장 둘러있는 돌 좌석이 둘러 있었는데 그 돌 좌석 앞쪽마다 약간 옴폭 패인 줄이 져 있어서, 이는 이 원형극장이 야외원형극장임을 알아차리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 홈 줄이 비가 오면 물이 흘러내려 가게 하는 홈 줄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래쪽으로 계단을 밟아 내려오면 왼편 옆쪽에 계단 몇 개를 내려 밟으면서 물 샘이 나타났다. 이 샘이 바로 누구나 병자가 마시면 그 병이 낫게 된다는 기적수였다.
그 정면 쪽으로 굴 문을 통과하면서 사람 한 키 반 만하게 둥근 굴이 길게 뚫려 있고, 천장 군데군데 위쪽으로 구멍이 나 있었는데, 이 구멍을 통해 이 굴을 통과하는 환자에게 의사들이 굴 위쪽에서 굵은 소리를 내서 <당신의 병은 얼마 안가서 나아질 것이라> 소리를 들려준다는 굴이었고, 또 이 굴을 한 15분쯤 통과해 나오면 병이 많이 나아졌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는 환자 굴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이 굴을 다 통과해 나오는 곳에는 예전의 의료병동 치료소의 폐허가 둘러있었다. 이 모든 폐허들이 발굴되면서 예전의 모습을 되살려 놓고 있었다.
한 마장쯤 다시 지나 작은 운동장 같은 넓은 마당이 펼쳐졌는데 이 광장은 로마의 황제가 와서 의사들 또 환자들 앞에서 시정연설을 하였던 광장이었다는 것.
이 <버가모>의 산정고원 폐허 군(群)을 돌아보면서 요한계시록 2장의 12-17절까지의 기록을 깊이 가슴에 담아보며 머리를 숙여 보았다.
알렉산더왕이 33세로 니느웨에서 세상을 끝낸 후, 그의 부하 장수 4명에게 자신이 점령했던 영토를 나누어 가지게 된 후 그 중에 <리시마쿠스>장수 령에 포함되었던 이 <베르가몸>지역을 차지해서 그의 부하장수 <필레타리우스>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그가 <시리아>의 왕 <싸이러스(성경에는 고레스왕)>와의 전쟁에서 패퇴의 길에 들어서자 그는 이 <베르가몸>을 그리스에게 그대로 넘겨주는 역사를 안고 있다.
이곳에서 한 4마일쯤 떨어즌 교외에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온>신전이 있습니다. 신전 앞 샘에서 나오는 물은 환자 치료에 효과가 커서 기적수라 하여, 이 나라의 생수는 마시지 말라는 수칙을 무시하고 모처럼 장난삼아 물을 눈에 바르고 마셔보았는데, 글쎄요 물이 정말 미지근 찝질하여 실망을 했습니다.
완벽한 하수도 시설, 통풍장치, 지하광장까지 딸린 고대의 지하도, 극장과 도서관을 갖춘 이곳 요양소에서 로마의 의성(醫聖) <갈렌>이 의술을 펴고 500권 이상의 의서를 저술도 하였습니다.
<히포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의성이라면, <갈렌>은 로마의 의성으로 로마황제 <안토니우스>는 그에게 의사들의 황제라는 칭호를 내릴만큼 추앙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이같이 성지순례 현장에서의 추체험(追體驗)을 통해서 성서의 실증적인 이해로 신앙의 구체적인 내면화에 커다란 추진력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실감함을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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