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반인도범죄 철폐국제연대(ICNK)는 2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통영의 딸’ 신숙자 씨와 딸 혜원·규원 씨가 강제 구금됐다는 판정을 내린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산하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WGAD)’의 공식입장을 26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WGAD는 “1987년 이래 계속된 신 씨 가족의 구금은 임의적(강제적)이었고, 현재도 임의적”이라며 “북한 정부가 이 상황에 대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다”고 전했다. 조치는 “즉시 석방과 적절한 배상”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는 지난 1995년 “신씨 모녀가 구금당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던 유엔의 판정을 뒤집는 것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유엔인권선언의 맥락상 석방(release)이라는 단어는 해외로의 자유로운 이주와 국내 송환까지를 뜻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ICNK는 북한 당국이 강제 억류상태에서 신씨의 죽음을 방치했다며 국제형사재판소에 이를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유엔은 마르주키 다루스만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을 포함한 고문(拷問)과 식량, 건강 등 5-6개 분야의 특별보고관이 다음 달 연례회의차 모여 북한인권 상황을 논의한 후 공동으로 대북 특별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양한 분야의 특별보고관들이 특정 국가에 대해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는 일은 이제껏 거의 없었다.

이같은 유엔의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엔이 이제껏 다소 소홀했던 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북한이 이같은 움직임에 불복할 경우 유엔은 반인도범죄 조사위원회를 구성, 북한 정치범수용소 등 각종 인권유린 사실을 조사하고 안전보장이사회에 주요 의제로 회부할 가능성도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번 유엔의 발표에 대해 29일 정례브리핑에서 “WGAD의 견해는 신씨 문제에 관한 국제사회의 공통된 견해를 표명한 것”이라며 “북한이 국제사회 의견을 존중해 최대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하고, 즉각적인 석방과 적절한 배상 등 필요한 구제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통영의 딸’ 구명운동도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유엔의 조치에 탄력을 받은 국내외 북한인권운동가와 전문가 등 2백여명은 ‘통영의 딸 송환대책위원회’를 다음 달 정식으로 출범시킬 계획이다.

대책위원회는 다음 달 신씨 가족이 북한으로 들어가기 전 체류했던 독일을 방문, 독일 정부를 향해 신씨의 생사확인과 모녀의 송환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고, 8월부터는 뉴욕과 제네바, 베를린의 북한 공관 앞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통영 출신의 신숙자 씨는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됐다 독일 유학생이던 남편 오길남 씨의 권유로 두 딸과 함께 1985년 북한에 들어갔으나, 이듬해인 1986년 오씨 혼자 북한을 탈출해 지금에 이르렀다. 북한은 이달 초 신씨 모녀에 대한 OHCHR의 질의서에 “신씨는 간염으로 사망했으며, 임의적 구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