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회 흐름 중 하나는 ‘리더십 교체’다. 이는 소위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났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교회들은 대부분은 근래에 새 담임목사를 맞았다. 그러면서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목회가 이양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른바 ‘구심점의 공백’이 그것이다.

‘개척 목회자’ 사라지고 ‘청빙 목회자’ 대두
지지기반 약해 권한 축소… 교회 내홍 야기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대부분 ‘개척 목회자’들이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교회를 개척해 대형교회를 일구고 이를 통해 한국교회 부흥을 가져왔던 이들이다. 조용기·김선도, 故 옥한흠·하용조, 이동원 목사 등이 바로 이런 ‘개척 목회자’다. 이들은 개척이라는, 어쩌면 태생적 강점을 바탕으로 강력한 교회 장악력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개교회를 넘어 교단은 물론, 연합사업까지 주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런 ‘개척→대형교회’ 이력의 목회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이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목회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게다가 한국교회 성장세가 멈춘 상황에서 교회를 개척해 대형교회로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현재 대형교회를 이끄는 목회자 대다수는 해당 교회 개척과는 무관한, ‘청빙 목회자’들이다.

대형교회에서 이런 청빙 목회자가 갖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교회 내 입지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점이다. 개척 목회자와 달리 이들에겐 교회의 기초를 놓지 않았다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기업에 비유하면, 개척 목회자를 대기업 ‘창업주’라고 했을 때 청빙 목회자는 그 대기업이 고용한 ‘경영자’라 할 수 있다. 창업주는 기업과 뗄 래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경영자는 언제고 다른 이로 바뀔 수 있는 처지다.

대형교회일수록 당회는 비대해지기 마련이고, 그만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개척 목회자에겐 그와 함께 동고동락한 소위 ‘충신’들이 많아 의견 충돌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개척 목회자가 떠나고 청빙을 통해 후임이 당회장이 되면, 권한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구심점 공백기’가 생긴다. 그리고 이 때, 그간 수면 아래 있던 의견들이 강하게 표출된다. 그러면서 쉽게 갈등이 발생되는데, 문제는 청빙 목회자에겐 이 갈등을 수습할 만한 내부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데 있다. 최근 대형교회들의 내홍이 빈발한 것도 이런 리더십 교체로 인한 구심점의 공백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 의견이다.

한 목회자는 “개척 목회자가 은퇴 등을 이유로 목회에서 물러날 경우 교회는 청빙을 통해 후임을 데려온다. 그런데 이 청빙된 목회자는 당회원들에게 ‘고용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며 “쉽게 말해 개척 목회자가 ‘갑’의 위치에 있었다면 청빙 목회는 ‘을’의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회자는 또 “게다가 대형교회일수록 청빙 목회자는 교회 내부 사정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럼 자연스레 당회원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이는 더욱 갑과 을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으로 작용한다”며 “이런 저런 이유로 청빙 목회자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교회를 대표하는 담임목사지만 실상은 ‘설교가’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리더십이 교체되면서 소위 ‘개척 목회자’를 대신한 ‘청빙 목회자’가 목회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상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가 없습니다).

교회 장악력 떨어져 연합사업까지 부실화

‘구심점의 공백’은 비단 교회 갈등 등 내부적인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개척 목회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청빙 목회자의 교회 장악력은 결국 연합사업의 부실화로까지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목회자는 “재정이나 인력 등을 교회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연합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개척 목회자의 경우 강한 리더십으로 교회의 의사결정을 빨리 이끌어낸다. 그럼 연합사업의 추진이 한결 쉬워진다. 그런데 요즘 교회마다 리더십이 교체되면서 후임 목회자가 갖는 권한이 축소되자 연합사업 역시 탄력을 잃은 감이 있다. 여기에 교회 내홍까지 겹치면 당연히 연합사업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목회자 권한’ 두고 상반된 의견… 퇴보냐 진보냐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이 같은 ‘과도기적 현상’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리더십 부재로 인한 구심점의 공백이 앞서 언급한 교회 내홍 내지 연합사업의 부실을 불러와 한국교회를 퇴보시킬 것이라는 의견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혼란은 오히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이라는 견해다. 즉 개척 목회자 개인이 독점하던 교회 내 권력이 이들의 퇴장으로 말미암아 평신도에게 돌아가고 있는데, 이는 민주적 교회가 지향해야 할 최종 목표점이라는 것이다.

이런 엇갈린 두 시각은 ‘과연 목회자가 얼마만큼의 권위를 가져야 하는가’를 두고 서로 다른 주장들이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목회자를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로 여겨 그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 평등한 ‘제사장’으로 목회자만 특별한 권한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전자를 지지하는 이들은 “한국교회에 인물이 없다”고 토로한다. 예전처럼 강한 카리스마로 한국교회의 갈등을 봉합하고 흐름을 주도해갈 리더가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인물난’의 이면에 교회 내 기반이 약한 청빙 목회자가 있음을 지적한다. 반면 후자에 속한 자들은 오늘날 대형교회들이 겪는 내홍을 교회가 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여긴다. 물론 청빙 목회자의 축소된 권한 역시 바람직한 현상으로 평가한다.

이와 관련해 한 신학자는 “지금 한국교회가 과도기적 현상을 겪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한 세대의 리더십이 지고 다음 세대의 리더십이 부상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라며 “청빙으로 인한 목회자의 권한 축소를 긍정적으로 볼 수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퇴보를 가져오느냐 아니면 진보를 선물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