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척의 배로 나라를 구했던 이순신의 거북선, 우리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박지성의 골, 전세계인을 매료시킨 스티브 잡스의 ‘아이 시리즈(iPhone·iPad) 등의 공통점이 있다면? ‘비그리스도인’들의 위대한 업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기뻐하실까? <무례한 기독교>, <버거킹에서 기도하기(이상 IVP)> 등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에 대한 날카로운 글을 집필해 왔던 리처드 마우 풀러신학교 총장이 ‘전도할 때 꼭 한 번씩 듣게 되는’ 이 문제에 답했다.

그의 신간 <문화와 일반 은총(새물결플러스)>에서는 ‘(네덜란드) 칼빈주의적 입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과 공통적인 것이 무엇이며, 죄인들이 하나님과 회복되는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통해 지금 우리의 맥락에서 문화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먼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의 이 ‘공통성’에 대해 역전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제한다. 둘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며 ‘남은 자’ 또는 ‘구별된 자’로 살던 복음주의자들은 열린예배 등으로 세상의 문화를 적극 도입하거나 세속 정치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복음과 문화를 연속선상에서 보는 자유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비난을 너무 받아서인지 점차 근본주의화되고 있기 때문에 공통성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

마우 총장은 ‘하나님은 모든 아름다운 것 가운데 빛나신다(He Shines in All That’s Fair)’는 원 제목처럼 ‘일반 은총(Common Grace)’의 개념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선행’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이러한 것들이 구원 계획을 향한 하나의 수단이어서가 아니라, 이것의 존재 자체에 있다.

그는 인간을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않은 자 두 부류로 나누는 근본적인 견해에 동의하지만, 우리가 비록 전적으로 부패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구속된 백성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로운 행위를 하도록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또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의 ‘친절한 행위’ 가운데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 의로운 기준에 일치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불의함’에서 나왔다 해서 ‘의로움을 가장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칼빈주의의 정통 교리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도 근거를 든다. ‘본래부터 진노의 자녀인 우리는 ‘어떠한 구원받을 수 있는 선(any saving good)을 행할 수는 없다’는 선언에 대해 “미묘한 뉘앙스로 구원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더라도 도덕적으로 선을 행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해석했다.

구원받지 않은 백성들의 선행은 “최소한 하나님을 덜 노엽게 한다고 말할 수 있고”, 만약 그들에게 살인이나 강간 같은 끔찍한 불행이 일어난다면 “그들의 구원 여부와 관계없이 하나님도 찢어지듯 아파하시지 않을까, 우리도 연민과 동정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설명도 곁들였다.

마우 총장은 “하나님은 복합적인 목적(multiple divine purposes)으로 세상을 이끌어가신다”며 “쉽게 말해 하나님은 각 사람의 영원한 운명에도 분명 관심이 있으시지만, 더 나아가 더 넓은 창조 세계에까지 그 분의 계획이 미치고 있다”고 자신의 근본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모든 존재들을 ‘좋게 보셨고’, 선택받지 않은 피조물에도 그렇게 호의를 베푸신다고 생각하더라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문화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일수록 칼빈주의적 온전함과 더불어 겸손함으로 문화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상처 입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잡하고 다양한 뜻을 분별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저자는 이외에도 ‘타락 후 선택설과 타락 전 선택설’ 등 일반 은총과 관련된 다양한 논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