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11-13절에 기록된 말씀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스르엘 평야를 경계로 북쪽 갈릴리 지방과 남쪽 사마리아를 표시하였다.
갈릴리를 떠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길에 오르셨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은 여럿 있지만, 예수님은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를 지나는 길을 이용하셨다. 그 길은 이스르엘 평야를 통과하는 길이다. 이스르엘 평야의 남쪽은 사마리아 지방이며, 북쪽에는 갈릴리 지방이 있다. 예수님은 서쪽에서 이스르엘 평야를 따라 동쪽으로 가시다가 이스르엘 평야의 한 마을로 들어가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마을이 어떤 마을인지 알 수 없다. 당시 이스르엘 평야의 동쪽에 위치한 가장 큰 도시는 데가볼리의 수도였던 스키토폴리스 (Scythopolis)였다. 스키토폴리스는 구약 시대에 벧산으로 불렸던, 므낫세 지파에 속한 중요한 도시였다. 구약에 벧산으로 불렸던 도시가 후에 스키토폴리스로 불린 이유는 주전 3세기 스키티안 용병들 (Scythian mercenaries)이 벧산에 정착한 것과 관련이 있다. 스키티안 병사들은 구약 시대의 벧산 언덕 위에 그들의 신전을 건축하였는데, 그 신전은 로마 시대까지 이용되었다. 지금도 스키티안인들에 의해 세워진 신전 터를 벧산 유적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셨던 마을이 스키토폴리스(벧산)였는지를 결정할 증거는 없다. 그렇다고 그 마을이 벧산이 아니라고 배제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스르엘 평야에 위치한 한 마을에서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멀리 서서’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올 수 없었던 그들은 멀리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주 예수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문둥병자들의 외침을 듣고 예수님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레위기 13:17절(각주 1)에 기록된 율법에 기초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내 말을 믿고 제사장에게 가는 자는 나음을 입으리라’는 뜻으로 하신 것이다. 실재로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제사장으로 가는 길에 나음을 입었다. 이와 유사한 믿음의 말씀을 복음서에서 많이 읽을 수 있다. 요한복음 4장의 말씀이다. 가버나움에 왕의 신하가 있었고, 그의 아들은 죽을 병에 걸렸다. 신하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예수님을 찾아가 요청하였다. “내려 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이에 예수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셨다.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나에서 가버나움으로 내려가는 길에, 집에서 오는 종들을 만나 ‘아이가 살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가는 길에 신하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경험한 것이다.

▲2008년 8월, 이스르엘 평야의 동쪽에서 서쪽을 보며 찍은 사진이다. 사진 왼쪽에 길보아 산과 그 너머로 사마리아 산지가 있으며, 사진 오른쪽으로는 갈릴리 지방이 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이스르엘 평야를 통행하시는 길에,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므로 문둥병에서 나음을 입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는 그 믿음을 따라 표적을 보게 될 것이란 중요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누가는 ‘믿고 행하는 것’ 외에 한 가지를 더하여 기록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들은 열 명이었다. 그러나 고침을 받고 돌아와 감사를 드린 자는 한 명뿐이었다. 그 한 명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눅 17:18). 여기에서 왜 아홉 명은 감사드리지 않고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만 돌아와 감사를 드렸는가 하는 점이 궁금하다.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이면서 문둥병자였던 다른 아홉 사람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소외감, 사회적 박탈감을 덜 느낀 사람일 수 있다. 사마리아 사람은 태생적으로 이방인으로 취급받은 것에 더하여 문둥병자로서 공동체로부터 평생 버림받은 사람으로 난생 처음 은혜를 경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열명 모두 나음을 입었지만,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 감사를 드리되, 감사치 않은 아홉 명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그리고 중요한 말씀을 더하셨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셨느니라 (눅 17:19).”

그래서 우리는 믿음과 표적을 보는 것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는 표적을 볼 것이다. 표적을 보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드린다. 이런 믿음의 사람을 만나면 정말 마음이 기쁜 것은 이는 그가 참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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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여서 그 환처가 희어졌으면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그는 정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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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