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추양(秋陽) 한경직 목사(1902~2000)와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1901~1987)는 동시대를 풍미한 신앙의 거장들인 데다가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동문들이지만, 후대는 이들을 서로 전혀 다른 신앙의 소유자로 기억한다. 한 목사가 보수 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면 김 목사는 그 반대인 진보 교계를 이끌었다. 이들은 왜 각자의 신앙 노선을 달리했던 걸까.

‘(사)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가 3일 오후 서울 수유동 한신대 신대원 장공기념관에서 제28회 목요강좌를 열었다. 주제는 ‘한경직과 김재준, 그들의 삶과 사역’이었다. 김은섭 박사(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연구목사)가 같은 주제로 발표했다. 김 박사는 두 목사의 삶을 돌아보고 그들의 사역을 평가했다.

눈길을 끌었던 건 김 박사의 발표에 이은 연규홍 박사(한신대 교회사)의 논평이었다. 김 박사는 한경직·김재준 목사 각각의 삶과 사역을 따로 분석하며 그들의 ‘신앙적 색깔’이 조금 다르다는 점만을 언급했는데, 연 박사가 그 차이에 대한 답을 말했기 때문이다.

‘학자적’이었던 장공과 ‘목회적’이었던 추양

연 박사는 두 목사의 신앙적 색깔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장공이 너무나 학자적인 사람이라면 추양은 너무도 목회적인 사람”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런 차이는 자라온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연 박사는 덧붙였다.

먼저 장공에 대해선 “유학자의 집에서 태어나 19세기까지 한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동양고전을 외우고 썼다”며 “경서를 읽는 깊이 있는 눈으로 성서도 읽었다. 구약성서를 전공한 그는 특히 예언자적 통찰력과 미래감각으로 시대를 앞서가며 현실의 모순과 불의를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에게 있어 신앙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선택과 결단의 행동”이라며 “그래서 그는 ‘행동하는 신앙’을 말한 야고보를 좋아했다. 한 평생 그의 키만큼 글을 썼고 그 글 하나하나는 시대의 진실을 증언하며 역사를 바꾸는 힘을 갖고 오늘의 한신과 기장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반면 “추양은 부끄러움 없이 남 앞에 서서 말하는 웅변에 능했다. 그래서 복음의 선포를 통해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많은 이들을 회개하게 했다”고 연 박사는 말했다.

연 박사는 “그의 메시지는 남녀노소 누구든 감동시키는 힘이 있었고 권위가 있었다”며 “오늘날 영락교회의 놀라운 부흥은 그의 설교의 열매였다. 특히 그는 과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병으로 사선을 넘어 목회자가 되었기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말하는 사도 바울을 매우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공산주의·독재체제 대하는 입장 달랐다

그러나 둘의 신앙적 노선이 달랐던 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는 게 연 박사의 주장이다.

“추양은 비록 군사독재라 할지라도 그것이 무정부주의나 공산주의보다는 낫다는 것, 즉 반공국가가 더욱 현실적이라는 목회적 판단을 했다. 그러나 장공은 진정 공산주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독재체제 하에서 천민자본주의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반독재·반자본주의적 입장에 섰다”는 것이다.

연 박사는 ‘공산주의’를 두고 추양과 장공의 입장이 갈라진 배경에는 둘의 ‘신학사상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는 “추양과 장공은 둘 다 개혁교회의 신학전통에 선 장로교회의 목회자이다. 둘 다 교회와 국가에 대한 칼빈의 그리스도 왕권론적 정치윤리를 받아들인다”며 “그러나 1972년 유신체제 이후 전개된 독재정권의 국가폭력 하에서 교회 공동체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점에서 서로의 입장이 달랐다”고 말했다.

즉 “추양에게 있어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교회의 보호였다. 그 다음이 교회의 성장을 통한 (독재체제) 국면의 전환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가능한 선택은 비참여적 묵인의 길이었다. 그러나 장공에게는 잘못을 그대로 두는 것이 더 큰 잘못이었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나 정부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이에 비판적으로 저항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 장공은 믿는 그대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연 박사는 “추양과 장공은 험난한 한국 현대사를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살며 우리 앞에 길을 열어 놓으셨다”며 “이제 우리는 그 두 길보다 더 나은 길을 선택하고 가야 한다. 두 분의 삶은 물질화된 영혼의 빈곤과 동물화된 문명시대의 야만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찾으라는 커다란 도전”이라고 강조하며 논평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