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인 6일 뉴욕한민교회(담임 주영광 목사)에서는 특별한 성금요예배가 진행됐다. 바로 블랙 가스펠의 선두주자이자 뛰어난 가창력으로 주목받는 CCM그룹 헤리티지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헤리티지는 6일 저녁 진행된 성금요예배에서 찬양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헤리티지는 예배가 시작되기 전 30여 분간 예수님의 사랑을 담은 곡들을 선보였으며 헤리티지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성금요예배의 은혜를 더했다.
이날 한민교회는 성금요예배를 통해 예수님의 수난이 기록된 마가복음의 구절들을 장시간 묵상했다. 주영광 목사와 성도들은 마가복음 14장~15장에 걸쳐 기록된 십자가상의 수난을 교독하면서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되새기면서 함께 기도했다.
주영광 목사는 예배에서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갈라디아서 2:20)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십자가를 바라볼 때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에 대해 설명했다.
주영광 목사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고 하신 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릴 사람은 우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며 “예수님이 불쌍하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추악한 죄로 인해 슬퍼하고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주영광 목사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의 죄 또한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시간이 되기 원한다”며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돼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한민교회는 성도 한 사람씩 나와 큰 빵을 찢어 포도주에 찍어 먹는 성찬예식을 진행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수난과 희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성금요예배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주영광 목사가 전한 설교 주요 내용.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갈2:20)
십자가는 고통을 상징하고 죽음을 상징한다. 어떤 이는 십자가를 보면 평화를 느끼지만 원래는 십자가는 사형틀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고 그것도 아주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이었다. 순간적인 죽음이 아닌 일주일간의 처참한 고통 속에서 힘이 다 빠져 질식해 죽는 것이 십자가형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많은 영화를 봐왔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들이다. 한국에서도 맬 깁슨 감독의 ‘그리스도의 수난’이 많은 관객들을 모았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고서는 볼 수 없었다. 왜 십자가를 볼 때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가 그것을 오늘 보고자 한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저런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아들을 버리신 그 고통을 생각할 때 눈물을 안 흘릴 수 없다. 아마 여러분도 이런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 비참한 그 고통에 집중할 수 있지만 그 예수님을 보는 것만큼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죄악을 집중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더럽고 추한 죄 때문에 슬퍼하고 아파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자녀들의 관심이 돌아가신 십자가만 집중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십자가는 우리 삶 가운데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십자가의 고통만을 묵상하고 내 자신을 보려하지 않는 모습을 우리는 스스로 보게 된다.
구약에 제사를 드릴 때 양을 잡는 사람이 있다. 그 양은 제사장이 잡는 것이 아니고 양을 잡는 사람은 죄를 지은 본인이 잡게 돼 있다. 가죽을 벗기고 제사에 사용하도록 손을 보면서 양을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의 죄를 보고 통회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이 불쌍하다고 느끼기보다 나의 죄를 안타까워하면서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것이다.
눅23:27~28을 볼 때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위해 울지 말고 우리 안의 죄 때문에 슬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우리의 모습을 염려하시고 애통해 하셨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십자가라는 마땅한 고통을 져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십자가를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고난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의미다. 예수님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 됐다. 우리는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예수님의 고난과 수난을 묵상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죄를 봐야 한다.
오늘 우리가 바라볼 십자가는 예수님만 달려계시는 십자가가 아니다. 바로 나의 죄, 주홍빛같이 붉은 나의 죄를 봐야 한다. 그것이 함께 못 박혀진 십자가를 봐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쏟으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성금요일을 맞아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 내가 못 박혀야 될 십자가,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신 지고 가시고 못 박히신 그 십자가를 바라보기 바란다.
헤리티지는 6일 저녁 진행된 성금요예배에서 찬양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헤리티지는 예배가 시작되기 전 30여 분간 예수님의 사랑을 담은 곡들을 선보였으며 헤리티지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성금요예배의 은혜를 더했다.
이날 한민교회는 성금요예배를 통해 예수님의 수난이 기록된 마가복음의 구절들을 장시간 묵상했다. 주영광 목사와 성도들은 마가복음 14장~15장에 걸쳐 기록된 십자가상의 수난을 교독하면서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되새기면서 함께 기도했다.
주영광 목사는 예배에서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갈라디아서 2:20)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십자가를 바라볼 때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에 대해 설명했다.
주영광 목사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고 하신 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릴 사람은 우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며 “예수님이 불쌍하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추악한 죄로 인해 슬퍼하고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주영광 목사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의 죄 또한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시간이 되기 원한다”며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돼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한민교회는 성도 한 사람씩 나와 큰 빵을 찢어 포도주에 찍어 먹는 성찬예식을 진행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수난과 희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성금요예배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주영광 목사가 전한 설교 주요 내용.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갈2:20)
십자가는 고통을 상징하고 죽음을 상징한다. 어떤 이는 십자가를 보면 평화를 느끼지만 원래는 십자가는 사형틀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고 그것도 아주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이었다. 순간적인 죽음이 아닌 일주일간의 처참한 고통 속에서 힘이 다 빠져 질식해 죽는 것이 십자가형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많은 영화를 봐왔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들이다. 한국에서도 맬 깁슨 감독의 ‘그리스도의 수난’이 많은 관객들을 모았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고서는 볼 수 없었다. 왜 십자가를 볼 때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가 그것을 오늘 보고자 한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저런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아들을 버리신 그 고통을 생각할 때 눈물을 안 흘릴 수 없다. 아마 여러분도 이런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 비참한 그 고통에 집중할 수 있지만 그 예수님을 보는 것만큼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죄악을 집중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더럽고 추한 죄 때문에 슬퍼하고 아파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자녀들의 관심이 돌아가신 십자가만 집중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십자가는 우리 삶 가운데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십자가의 고통만을 묵상하고 내 자신을 보려하지 않는 모습을 우리는 스스로 보게 된다.
구약에 제사를 드릴 때 양을 잡는 사람이 있다. 그 양은 제사장이 잡는 것이 아니고 양을 잡는 사람은 죄를 지은 본인이 잡게 돼 있다. 가죽을 벗기고 제사에 사용하도록 손을 보면서 양을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의 죄를 보고 통회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이 불쌍하다고 느끼기보다 나의 죄를 안타까워하면서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것이다.
눅23:27~28을 볼 때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위해 울지 말고 우리 안의 죄 때문에 슬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우리의 모습을 염려하시고 애통해 하셨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십자가라는 마땅한 고통을 져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십자가를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고난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의미다. 예수님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 됐다. 우리는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예수님의 고난과 수난을 묵상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죄를 봐야 한다.
오늘 우리가 바라볼 십자가는 예수님만 달려계시는 십자가가 아니다. 바로 나의 죄, 주홍빛같이 붉은 나의 죄를 봐야 한다. 그것이 함께 못 박혀진 십자가를 봐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쏟으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성금요일을 맞아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 내가 못 박혀야 될 십자가,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신 지고 가시고 못 박히신 그 십자가를 바라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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