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루살렘의 동쪽 베다니 마을에 도착하심 (요 11:55-12:1, 9-11)
요단강 동편, 베뢰아 지역을 떠나신 예수님은 여리고(각주 1)를 거쳐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동쪽에 위치한 베다니 마을에 도착하셨다. 때는 많은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때였다. 예수님께서도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 도착하셨다. 이곳은 현재 엘 아자리야 (el Azariya)라는 아랍 마을로써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마을이기도 하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던 길은 데이빗 도르시 (D. Dorsey)에 따르면 아둠밈 비탈 (Mishor Adummim) - 와디 호드 (Wadi el Hod) – 에인 호드 (Ein el Hod) – 아자리야 (el Azariya)를 지나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다. 이 길은 여호수아 15:7-9과 18:16-17에 기록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과 일치한다. 예수님은 이 길을 이용하여 베다니에 도착하셨다.

절기가 임박하면 더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였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는 유월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된 양의 수를 256,500마리로 기록한 예가 있다. 만약 이 숫자가 옳다면, 양 한 마리 당 10명이 나누어 먹을 경우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수는 약 2백만 명이 넘었을 것이다. 요세푸스의 또 다른 기록에는 유월절 예루살렘에 모인 순례자들의 수는 약 2,700,000명이라 기록하기도 했다 (JW II, 14:3).

예루살렘 인근, 곧 안식일에 걷기 알맞은 거리에 많은 마을들이 세워졌다. 이런 마을의 주민들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온 순례자들에게 숙박과 필요한 희생양 그리고 의식에 필요한 도구들을 제공하였다.

요한복음 12:2-8절에 따르면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고 기록되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거기>란 마가복음 14:3에 기록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으로써 마가 (막14:3-9)와 마태 (마26:6-13)는 향유를 부은 사건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이틀 전의 사건으로 기록하였다.(각주 2) 예수님은 유월절 엿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셨으니 그 때는 금요일 오후였다.

▲벳바게에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가셨던 경로

2. 유대인의 왕 (메시아)으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심 (막 11:1-11, 마 21:1-11, 14-17, 눅 19:29-44, 요 12:12-19)

아마도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약 이틀의 시간을 보내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베다니에서의 약 이틀 간의 행적은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는다. 베다니에서 약 이틀의 시간을 보내신 예수님은 일요일 오전에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나아가셨다. 벳바게에 이르러 예수님은 두 제자를 벳바게의 맞은편 마을로 보내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어오라>고 말씀하셨다. 벳바게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그 마을은 여리고에서 베다니를 경유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연결되는 고대 도로에 위치했음은 분명하다. 아마도 지금의 아부 디스 (Abu dis) 아랍 마을이 가장 유력하다. 만약 벳바게의 위치가 아부 디스 (Abu dis)가 확실하다면 나귀가 매여있던 맞은편 마을은 지금의 감람산 경사진 곳에 위치한 실완 (Silwan)이 확실하다.(각주 3)

벳바게 맞은편 마을에서 끌어온 나귀를 타시고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의 모습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가셨다. 이 사건은 모든 복음서에 기록되었다. 이 사건을 두고 마태는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하였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각주 4) >. 많은 사람들이 자기 겉옷을 나귀 안장에 얹고 또 길에 펴고 밭에서 베어온 나뭇가지(각주 5)를 길에 펴기도 하며 소리지르기를 마가의 기록에는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태의 기록에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누가의 기록에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을 환영하며 맞는 무리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불평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으로 좀 더 가까이 가셔서 성을 가까이 보시고, 눈물을 지으며 말씀하시기를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예루살렘 성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이후 예수님은 무리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는데 그 내용은 마태복음에 기록되었다.(각주 6) 나귀를 끌며 앞서기도 하고 뒤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을 바라본 성 안에 많은 무리들은 크게 소동하였다: <이는 누구냐>라 묻는 무리들에게 따르는 사람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선지자 예수라> 대답하였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는 아이들과 나아오는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성전에 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냐>며 분노하였다. 이에 예수님은 <그렇다 어린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본 일이 없느냐>고 말씀하셨다. 이 모든 일이 있은 후에 예수님은 성전을 떠나 베다니 마을로 다시 돌아가셔서 그곳에서 머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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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여기에서 말하는 여리고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여리고가 아니라 헤롯에 의해 건설된 신약 시대의 여리고를 가리킨다.

각주 2: 누가복음 7:36-50에 기록된 <바리새인인 시몬의 집에서 어떤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기름 부은 사건>은 베다니에서의 사건과 분명히 다르다. 누가복음에는 그 여인을 가리켜 <죄인인 한 여자>라고 기록되었을 뿐 후기 전승에 의한 막달라 마리아란 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막달라 마리아란 역사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는 내용이다. 아울러 누가복음에 기록된 여인을 마가와 마태의 기록에 나오는 베다니 마리아로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각주 3: 감람산 정상에 위치한 벳바게로 이야기하는 자리는 십자군 시대에 채택된 벳바게 기념 장소로써 현재 프란체스칸에 속한 기념 교회가 서 있다.

각주 4: 스가랴 9:9에 기록되기를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이사야 62:11을 참고한다.

각주 5: 종려나무에 대한 기록은 요한복음에만 나타나고 그 외 복음서는 밭에서 베어온 나뭇가지라 표현하였다.

각주 6: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신 후에 마태는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을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일련의 사건 속에 포함시켰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성전 청결 사건을 그 다음날 곧 월요일 오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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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