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 무엇입니까? 물으면 ‘빛’이라고 말합니다. 이 빛은 1초에 30만km를 달립니다. 지구 일곱 바퀴 반을 1초 만에 돈다고 합니다. 우주가 얼마나 광활한가 하면, 우주에 빛의 속도로 수십억 년을 달려야 겨우 도달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별들도 많다는 겁니다. 우주는 정말 거대하고 대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좌는 그 우주를 넘어 셋째 하늘에 있습니다. 그 셋째 하늘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달려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하는 순간, 첫째 하늘의 대기를 넘어, 둘째 하늘이 천체를 넘어, 셋째 하늘인 하나님의 보좌에 도달하며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것처럼 빠른 것이 어디 있으며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포소리입니까? 천둥소리입니까? 아니면 전쟁 소리입니까? 그런 소리가 아무리 커도 한 나라 밖을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이웃의 전쟁 소리를 들은 적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작게 부르는 찬양이라고 해도 부르는 순간 하늘 보좌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보다 더 큰 소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한 찬양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찬양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찬양이 결코 시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찬양은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놀라운 사랑이고,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입술의 고백인 것입니다. 찬양으로 무장한 사람은 비록 가진 것이 전혀 없다 해도 주님을 찬양으로 삶고, 여호와는 나의 방패 나의 힘이라 외치며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찬양의 삶이란 오늘 내 삶속에 능력의 주님을 붙들고 사는 날 동안 모든 순간을 주님의 힘으로 채우며 살아가는 기쁨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찬양은 결코 시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애창곡 중 '주 안에 있는 나에게’란 찬송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해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곡을 만든 ‘히윗’여사는 어느 추운 겨울날 자신이 전도하려던 불량학생에게 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오랜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굳건했던 신앙도 차츰 짜증으로 변할 무렵에 병실에서 청소를 하며 지내던 한 흑인 여자가 일을 하면서 즐겁게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히윗’여사는 그만 짜증을 내면서 ‘청소부 주제에 뭐 때문에 그렇게 좋은 거야?’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이 흑인 여자가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주님께서 모든 형편과 사정을 찬송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었으니 즐거울 수밖에 없네요.’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 말에 자신의 초라한 믿음이 부끄러워졌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깨달아 참회의 시를 썼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 안에 있는 나에게’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주님만 따라가리.’

찬송은 사람의 마음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찬송이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되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