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5-6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첫 번째 시험은 육신적인 물질문제이다. 주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맨 먼저 시험 당하신 것이 육신을 위한 먹는 문제라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역자의 위치와 위임을 충실하게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육신의 먹는 문제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합격하지 못하면 자격 상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시험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많은 사역자들이 이 문제를 패스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길을 바르게 가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두 번째의 문제는 명예와 관련된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어 사자들이 받아 살았다면 단번에 메시야의 명예와 명성을 획득할 수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고, 그들은 초라한 신분의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기 어려웠다. 그 때 주님이 만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천사들에 의해 받들림을 받았다고 소문이 나면 즉시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며, 유명하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대번에 대단한 명성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분은 그런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 이것이 시험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멸시와 고난을 받고 흠모할 것이 없으며,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된, 구약에 기록된 대로의 메시야의 길을 선택하신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시험의 내재적인 의미이다. 이 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늘날도 진정한 주의 종의 길을 갈 수 없을 것이다.
마귀는 성경 말씀을 잘 안다. 이번에는 마귀도 ‘기록하였으되’라고 하면서 성경을 인용해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여러분 중에 이 말씀이 구약성경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 분 있는가? 마귀는 우리도 잘 찾아내지 못하는 구약의 말씀을 아주 잘도 알고 있다. 농담같지만 귀신같이 잘 안다는 말이 있다.
내가 중국에 갔을 때 귀신들린 한 여자가 우리 지체들을 농락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물론 나중에 귀신은 쫓겨 났지만 그 이전에 귀신들린 여자는 모임 가운데 와서 우리 형제자매들의 사정을 과거사까지 속속들이 좌중에 말함으로 수치를 주었단다. 사탄은 매우 여러가지를 잘 알고 있으며 사람을 속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귀는 첫 번째 시험인 음식 문제의 관문을 통과하신 예수님을 이제는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시험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마귀는 주님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한다.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했다. 다시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칭하여 부른다. 사람의 위치를 떠나게 하는 것이다. 사탄의 근본적인 목적은 주님이 사람의 위치를 떠나 하나님의 아들로 일하심으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시고자 한 구속의 역사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거기서 뛰어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자들을 명하여 손으로 받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실 것이다” 했다. 사탄은 이 말을 시편 91편에서 인용해 가지고 했다. 이는 사탄이 첫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이 성경을 인용하여 대답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시험에 걸려 들지 않으셨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주님은 마귀의 간계를 아셨다. 그리고 “또 기록되었으되”라고 대답하셨다. 오늘날도 마귀적인 성경의 인용이 있다. 오늘날도 많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신앙에 대하여 말씀을 근거하는 것처럼 말한다. 한편만 들으면 그럴 듯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다른 곳에 기록되어 있는 “또 기록되었으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그들의 전술에 넘어가기가 쉽게 된다.
대부분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고 세우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씀들은 잘못된 말씀의 적용이다. 시험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에게 뭔가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성령께서 자연히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므로 우리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신다. 우리가 자원하여 그 분의 뜻을 기뻐함 가운데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그러나 사탄은 자기의 목적을 위해 말씀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서 뭔가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험하는 것이다. 그때 주님은 믿음의 말씀으로 응수하셨다.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성경을 사람들이 간교하게 인용하는 수가 있으니 믿는 이들은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위험을 당할 때 구원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이나, 스스로 위험을 모험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이상근).
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주님은 사단이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을 아셨다. 여기서 “또 기록하였으되” 하시면서 주님이 인용하신 말씀은 아버지께서 주신 정확한 말씀이다.
그러나 사단도 예수님을 미혹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했는데 성경을 인용한다고 해서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 인용하는 것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인용하는 말씀도 있고,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인용하는 말씀도 있다.
주님은 “또 기록하였으되” 하셨다. 이렇게 성경을 인용하되 분명하고 정확하게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때 필요한 말씀을 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첫 번째 시험은 육신적인 물질문제이다. 주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맨 먼저 시험 당하신 것이 육신을 위한 먹는 문제라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역자의 위치와 위임을 충실하게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육신의 먹는 문제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합격하지 못하면 자격 상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시험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많은 사역자들이 이 문제를 패스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길을 바르게 가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두 번째의 문제는 명예와 관련된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어 사자들이 받아 살았다면 단번에 메시야의 명예와 명성을 획득할 수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고, 그들은 초라한 신분의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기 어려웠다. 그 때 주님이 만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천사들에 의해 받들림을 받았다고 소문이 나면 즉시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며, 유명하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대번에 대단한 명성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분은 그런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 이것이 시험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멸시와 고난을 받고 흠모할 것이 없으며,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된, 구약에 기록된 대로의 메시야의 길을 선택하신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시험의 내재적인 의미이다. 이 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늘날도 진정한 주의 종의 길을 갈 수 없을 것이다.
마귀는 성경 말씀을 잘 안다. 이번에는 마귀도 ‘기록하였으되’라고 하면서 성경을 인용해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여러분 중에 이 말씀이 구약성경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 분 있는가? 마귀는 우리도 잘 찾아내지 못하는 구약의 말씀을 아주 잘도 알고 있다. 농담같지만 귀신같이 잘 안다는 말이 있다.
내가 중국에 갔을 때 귀신들린 한 여자가 우리 지체들을 농락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물론 나중에 귀신은 쫓겨 났지만 그 이전에 귀신들린 여자는 모임 가운데 와서 우리 형제자매들의 사정을 과거사까지 속속들이 좌중에 말함으로 수치를 주었단다. 사탄은 매우 여러가지를 잘 알고 있으며 사람을 속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귀는 첫 번째 시험인 음식 문제의 관문을 통과하신 예수님을 이제는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시험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마귀는 주님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한다.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했다. 다시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칭하여 부른다. 사람의 위치를 떠나게 하는 것이다. 사탄의 근본적인 목적은 주님이 사람의 위치를 떠나 하나님의 아들로 일하심으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시고자 한 구속의 역사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거기서 뛰어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자들을 명하여 손으로 받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실 것이다” 했다. 사탄은 이 말을 시편 91편에서 인용해 가지고 했다. 이는 사탄이 첫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이 성경을 인용하여 대답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시험에 걸려 들지 않으셨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주님은 마귀의 간계를 아셨다. 그리고 “또 기록되었으되”라고 대답하셨다. 오늘날도 마귀적인 성경의 인용이 있다. 오늘날도 많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신앙에 대하여 말씀을 근거하는 것처럼 말한다. 한편만 들으면 그럴 듯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다른 곳에 기록되어 있는 “또 기록되었으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그들의 전술에 넘어가기가 쉽게 된다.
대부분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고 세우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씀들은 잘못된 말씀의 적용이다. 시험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에게 뭔가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성령께서 자연히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므로 우리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신다. 우리가 자원하여 그 분의 뜻을 기뻐함 가운데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그러나 사탄은 자기의 목적을 위해 말씀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서 뭔가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험하는 것이다. 그때 주님은 믿음의 말씀으로 응수하셨다.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성경을 사람들이 간교하게 인용하는 수가 있으니 믿는 이들은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위험을 당할 때 구원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이나, 스스로 위험을 모험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이상근).
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주님은 사단이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을 아셨다. 여기서 “또 기록하였으되” 하시면서 주님이 인용하신 말씀은 아버지께서 주신 정확한 말씀이다.
그러나 사단도 예수님을 미혹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했는데 성경을 인용한다고 해서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 인용하는 것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인용하는 말씀도 있고,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인용하는 말씀도 있다.
주님은 “또 기록하였으되” 하셨다. 이렇게 성경을 인용하되 분명하고 정확하게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때 필요한 말씀을 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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