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월남전쟁을 일선 지휘관으로 참전했던 이근택 예비역 대령이 1973년에 6일전쟁의 격전장이었던 골란 고원을 방문한 후, 이스라엘의 6일전쟁을 지휘한 전쟁 영웅 모세 다이얀 장군에 대한 추억담을 이렇게 전해 준 적이 있었다.

“국방장관 다이얀의 집무실은 4명 이상이 앉을 수 없는 작은 방이었다. 그에게는 허례와 과장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전쟁터의 사령부 텐트와 같은 분위기의 집무실에서 그는 부하들을 친밀한 동지로 대하였다. 그의 이런 정신은 오늘날 이스라엘군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스라엘 군 장군의 집무실에는 응접 세트나 소파 같은 가구라곤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다이얀 장군은 ‘부상당한 전우를 전쟁터에 버리지 말라. 부상병을 보면 1대1로 서로 구출할 책임이 있다’고 명령을 했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다이얀 장군의 이런 자세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최고 사령관으로부터 신병에 이르기까지 일체감을 이루었다. 이 때문인지 지금도 골란 고원 중턱에 마련되어 있는 전사자의 동판에는 희생자의 대부분이 소대장과 중대장들의 이름으로 가득차 있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당시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아랍 국가를 상대로 6일만에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한 원인이 아니겠는가?

장군에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하나 남의 희생을 담보로 전쟁을 이겨보겠다는 이기심의 모습은 6일전쟁에 임한 이스라엘 군대에게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었다. 6일전쟁은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남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이스라엘 민족 특유의 애국심과 희생과 섬김의 정신에서 온 결과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미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6일전쟁이 터졌을 때 LA 국제 공항에는 1층과 2층을 사이에 두고 너무도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장면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아랍 연합군과의 전쟁이 시작된 다음날(1967년 6월 6일) LA 국제 공항의 출국 전용 2층은 10대 말, 20대 초의 유대인 젊은이들로 붐볐다고 한다.

조국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유대인 청년들이 하나같이 이스라엘 직항 비행기로 조국을 향하여 가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날 1층 국제 공항 입국장에는 더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어른, 아이, 청년 할 것 없이 피난 봇짐을 챙겨서 재빨리 안전지역인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들어온 아랍사람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이든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의 희생을 요구하는 단체와 국가는 소망이 없다. 그 사회와 국가가 건강해지고 속하여 있는 공동체와 구성원들이 생명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기꺼이 남을 살리려는 의식과 결의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그 공동체는 비로소 하나될 수 있고 하나될 수 있는 공동체만이 소망이 있으며 미래가 있다.

지금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남을 위하여 나를 희생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나를 위하여 남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사회인가? 자신의 유익과 관계된 일이라면 촛불들고 밤을 세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 앞에는 어떻게는 피해 보려 하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무엇에서부터 우리의 사회가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모두 전쟁 앞에 서 있는 자들이다. 경제의 전쟁, 사상의 전쟁, 문화의 전쟁, 생존의 전쟁, 인생의 전쟁, 이런 모든 전쟁 앞에 우리가 과연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이 시점에 우리는 모세 다이얀 장군의 말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부상당한 전우를 전쟁터에 버리지 말라. 부상병을 보면 1대1로 서로 구출할 책임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두고 온 조국과 우리의 사회를, 그리고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이 영적인 모임 곧, 교회를 다시금 하나되게 하고 소망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생명의 공동체가 되게 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