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의 이야기 배경은 단 지파(각주 1)의 기업인 소라(각주 2) 땅에서 시작된다. 단 지파의 성읍이었던 소라는 Sar’ah로써 벧세메스 북쪽 소렉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다. 삼손은 소라와 에스다올(각주 3)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에게 감동되었다. 엄청난 괴력을 지닌 사사 삼손의 임무는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다. (벳세메스에서 소렉 골짜기를 향하여 찍은 사진으로 소라에서 딤나로 가는 길이다. 삼손은 이 길을 따라 소라와 딤나를 왕래하였다)

블레셋은 지중해 해안 평야에 정착한 민족으로 대표적인 성읍은 지중해 연안의 가사,아스글론, 아스돗과 내륙 쉐펠라 인접한 가드와 에그론이다. 블레셋 민족은 히브리 민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온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주한 해양 민족이다.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 삼손과 블레셋과의 첫 접촉은 엉뚱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첫 대면은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사랑하면서 시작되었다. 삼손이 사랑한 여인은 블레셋 땅의 딤나(각주 4) 여인으로서, 딤나는 블레셋과 유다 와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성읍이다. 소렉 골짜기에 위치한 딤나의 위치를 대부분의 학자들은 텔 바타쉬 (Tell el-Batash/ 141-133)로 이해한다.

블레셋 여인을 사랑하면서 삼손이 소라와 딤나를 오갔던 길은 벧세메스 길 (Beth Shemesh Road)로 불리는데, 이 길은 아벡, 에벤에셀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빼앗긴 법궤가 에그론에서 벧세메스로 운반된 길 (삼상 6)이며, 유다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 (수 15:10-11). 벧세메스에서 고대 도로는 북동쪽 기럇여아림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연결되었다 (삼상 6:20-7:2, 삼하 6).

사사기 14:5절에 의하면, 삼손은 부모와 함께 소라에서 딤나로 내려갔다. 딤나의 포도원에서 삼손은 어린 사자를 만났고,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다. 얼마 후 삼손은 사자의 몸에서 꿀을 취하였다. 이 사건은 후에 삼손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수수께끼 배경이 되었다. 삼손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제시한 삼손의 수수께끼는 다음과 같다.

마 오헬 야짜 마-아할 / 우 메-아즈 야짜 마톡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 막강한 자에게서 맛있는 것이 나왔느니라

삼손의 수수께끼는 히브리어 멤(m)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대답도 멤(m)으로 시작하되, 상식과 맞아야 한다.

마 마톡 미-드바쉬 / 우 마 아즈 메-아리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삼손이 낸 문제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어야 풀 수 있는 수수께끼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수수께끼의 기한인 7일간 고민했지만, 답은 묘연하였다. 결국 그들은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여 답을 알아내었다. 삼손은 분노하였고, 여호와의 신은 삼손에게 크게 임하였다 (삿 14:19). 여호와의 신에 의지하여 삼손은 블레셋 도성인 아스글론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블레셋 사람 삽심 명을 죽이고 외투 30벌을 약탈하였다. 삼손은 약탈한 외투 30벌을 아내를 협박하여 답을 알아낸 하객들에게 건네준 후 아비의 집이 있는 소라로 돌아갔다.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은 딤나에 있는 아내에게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때에 삼손의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에게 건네졌다. 이에 삼손은 매우 분노하였다. 그는 여우 삼백 마리를 붙잡아 꼬리와 꼬리를 묶고 두 꼬리 사이에 홰를 달고 홰에 불을 켜 블레셋 사람의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않은 곡식과 감람원을 모두 살랐다.

이 사건은 밀 거둘 때, 아직 곡식을 베지 않은 때로써 4월 경이 틀림없다. 4월의 이스라엘 기후는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는 때로, 들의 곡식은 익어 추수할 일군의 손을 기다리는 시기이다. 수수께끼 사건으로 인해 삼손은 블레셋 도성을 약탈하기는 했지만 블레셋을 응징하는 명분은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를 빼앗긴 이번은 달랐다. 블레셋을 응징하는 삼손의 고백을 들어본다: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삿 15:3). 굉장히 분노한 삼손은 블레셋 곡식단을 포함하여 감람원의 나무들을 모두 불살랐다. 하지만 사건은 점점 더 확대되어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 대한 응징으로 삼손이 사랑했던 블레셋 여인과 그 가족을 모두 불로 살랐다. 이 소식을 들은 삼손은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 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삿 15:7).” 이에 삼손은 블레셋 사람을 크게 살륙하고 에담 바위 틈에 거하였다. 평범한 일로 시작된 삼손의 이야기는 사사 본래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건으로 발전되었다. (사진은 벧세메스에서 북쪽 소고와 아세가를 마주 보며 찍은 사진이다. 앞에는 소렉 골짜기가 있으며 때는 3월 중순으로 들의 밀이 익을 때이다)

에담 바위의 위치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에담의 위치를 삼손이 블레셋 사람을 응징한 사건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성경에는 에담에 대한 두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르호보암이 건설한 병거성 중의 하나인 에담 (대하 11:6)과 시므온 지파의 기업인 에담 (대상 4:32) 두 곳이 있지만, 역사 지리학자인 요하난 아하로니 (Y. Aharoni)와 스가랴 칼라이 (Zekariah Kallai)는 이 두 곳을 에담 바위로 주장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침묵한다.

사건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이제 블레셋 민족은 군사를 거느리고 삼손을 대항하여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편만하였다 (삿 15:9). 일부 학자들은 레히를 브엘세바에 가까운 히르벳 라키야 (Khirbet Laqiya/ 136-081) 또는 벧 구브린 (Beth Guvrin/ 140-112)으로 주장하지만 사건의 현장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레히는 아마도 유다 지파의 경계선에 가까운 특정 성읍 또는 지역 이름일 것이다. 단 지경에서 일어난 블레셋과의 갈등은 유다 지파에까지 위협이 되었다. 결국 유다 사람 3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숨어 있던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에게 넘겨주었다. 삼손이 블레셋을 향하여 걸어가며, 소리 지를 때에 여호와의 신은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였다. 그리고 삼손을 묶었던 밧줄이 불탄 삼같이 떨어졌다. 삼손은 곁에 있던 나귀의 턱 뼈를 손에 잡고 블레셋 사람 1천 명을 살륙하였다. 그리고 삼손은 블렛셋으로부터의 구원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나귀의 턱 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 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삿 15:16).

싸움으로 지칠 대로 지친 삼손은 목이 말라 기진하며 이렇게 신음하였다: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 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삿 15:18).

하나님은 삼손의 모든 행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므로, 삼손을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의 방편으로 삼으셨다. 삼손은 블레셋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다 (삿 15:20).

--------------------------------------
각주 1: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기업의 지경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사알랍빕과 아얄론 (Yalo/ 152-138)과 이들라와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 (Tell Miqne/ 135-131)과 엘드게 (128-144)와 깁브돈 (137-140 or 139-145)과 바알랏 (129-138)과 에훗 (139-159)과 브네브락 (133-160)과 가드림몬 (134-167 or 132-166)과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수 19:40-46).

각주 2: 소라의 위치를 Sar'ah (148-131)로 주장하는 학자들은 요하난 아하로니 (Y. Aharoni), 로빈슨 (Robinson), 끌레르몽 가누 (Clermont-Ganneau), 앤손 레이니 (A. Rainey), 시몬 (Simon), 볼링 (Boling) 그리고 라이트 (Wright)이다. 소라는 성경 외 아마르나 문서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 문서 내용은 자폰 (Zaphon)의 왕이 하비루의 문제로 바로에게 호소하는 내용이다. 소라는 르호보암이 병거성으로 삼은 성읍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대하 11:10).

각주 3: 소라 (Zorah)와 함께 기록된 에스다올 (수 15:33, 19:41, 삿 13:25, 16:31, 18:2, 18:8, and 18:11)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아하로니와 스미쓰는 에스다올을 데이르 아부 카부스 (Deir Abu Kabus/ 151-132)로 이해한 반면, 시몬 (J. Simons), 볼링 (Boling)과 라이트 (Wright)는 'Artuf (150-130)으로 생각했으며 끌레르몽 가누 (Clermont-Ganneau)은 Aslin (150-132)으로 주장한다. 성경 외의 역사적인 문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에스다올의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소렉 골짜기에 위치한 것은 분명하다.

각주 4: 거의 모든 학자들은 딤나를 텔 바타쉬 (Tell Batash/ 141-133)로 이해한다. 텔 바타쉬는 19세기 끌레르몽 가누 (Clermont-Ganneau)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는데, 그는 이곳을 로마의 군 주둔지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1940년 대에 이르러 J. Kaplan과 B. Mazar가 텔 바타쉬를 발굴하였다. 당시 Mazar는 Tell Batash를 에그론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J. Naveh가 1953년 Tel Miqne를 성경의 에그론으로 확인한 이후 Tell Batash는 딤나의 가장 유력한 장소가 되었다.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선은 소렉 골짜기를 따라 벧세메스, 딤나, 에그론으로 이어진다. 딤나는 유다와 다말 사건 (창 38:13-14)에서 처음 기록되었으며 이집트 시삭과 앗수르 산헤립 공격 때에 멸망하였다.

.
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