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모택동이 서거하자 중국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 등소평은 3년 후인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주장하게 된다.

흑묘(黑猫, 검은 고양이)이든 백묘(白猫, 흰 고양이)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등소평의 이 흑묘백묘론에 의하여 중국은 공산주의 정치체제 하에 자본주의식 경제체제를 수용하는 중국식 공산주의를 1980년대부터 지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3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세계의 모든 기업이 중국의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기업 활동을 할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 나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이런 등소평의 중국식 사회주의가 지금까지도 성공하며 진행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 국가 안에, 그 지도자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바뀌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핵심을 분명히 붙들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사회주의식 표현대로 한다면 인민이 잘 사는 것이다. 즉,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 혈안이 될 때 독재자가 된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통해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일에 집중할 때 그는 위대한 지도자가 된다. 이것이 모택동과 등소평의 차이였다.

혁명 1세대인 모택동은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공산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을 학살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등소평은 3번의 실각과 7번의 암살위협에서도 늘 그가 붙들려 했던 것은 자신의 권력이 아니라 백성이 잘 사는 것이었다. 이것은 후에 사람들로 하여금 모택동을 잔인한 독재자로 기억케 한 반면, 등소평을 중국 인민의 배고픔을 해결해 준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기억케 한 이유였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의 안목이다. 자신이 서 있는 그 현장에서 과연 자신이 어떤 방향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지, 그 시대의 요청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어디로 인도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바로 역사적인 안목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한 사람의 지도자의 결정과 방향은 자기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백성들의 생명과 인생의 길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역사의 안목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먼저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내려 놓아야 한다. 이기심과 탐욕은 시대를 바르게 바라 보아야 할 눈을 멀게 한다. 이기심과 탐욕은 백성들의 소리를 들어야 할 귀를 막아 버린다. 이기심과 탐욕은 아픔과 절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의 삶의 현장으로 다가가야 할 소통의 창구를 막아 버린다. 지도자가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내려 놓기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사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왜 내가 이 자리로 부름을 받았는가? 왜 나는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철저한 물음과 되새김 속에서만 자신의 사명이 다시금 발견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