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 산다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입니다. 한 가족이 더불어 울고 웃으면서 함께 살고, 친구들과 함께 더불어 오랜 기간 우정을 나누고 사는 기쁨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것이 이렇게 유쾌한 것들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을 몸에 안고 더불어 살아야 하기도 하고요, 내가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하는 배우자와 살기도 해야 하고요, 아무리 결심하고 또 결심해도 끊어지지 않는 버릇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더불어 사는 것은 그렇게 유쾌한 경험이 아닐 것입니다.

허물 많은 아내와 더불어 사는 것이 힘들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허물을 고쳐보려고 몇 십년을 씨름하는 무식한(?) 남편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도 고치지 못해서 좌절하고 있는 남편을 늘 무시하고 경멸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면서 사는 어리석은(?) 아내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을,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아니 과정이라기 보다는,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못하면 인생이 실패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때론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그런 문제들이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중독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문제들은 사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라기 보다는 더불어 안고 살아야 하는, 내 삶의 일부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질병이 당장 고쳐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고칠 수 없는 그래서 그 질병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장 고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처럼 뛰어다니지만 그렇게 노력하고 수고해도 고칠 수 없음을 알고 나서 비로소 우리는 인생이 내 생각, 내 노력, 내 계산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질병까지도 내 삶의 한 부분인 것을 인정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법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몸에 있는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고 그 몸에 가시를 그대로 지니게 하였을 때, 사도 바울이 깨달은 것이 그것입니다. 내가 문제로 여기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고 여기는 그것을, 때론 내 삶의 일부로, 내 몸의 일부로 여기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 사도 바울은 그것도 은혜라고 합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8-9)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문제”를 분별하는 것이 능력이고 은혜입니다. 내 아내는 내가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결코 고칠 수 없는 그런 버릇이나 허물을 갖고 있습니다. 내 남편도 마찬가지고요! 그 고쳐지지 않는 것을 고치겠다고 한 평생 투쟁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그게 어디 제대로 사는 삶이겠습니까?

남편의 고쳐지지 않는 부분을 (중독은 제외) 고쳐보겠다고, 그것이 고쳐지기 전까지 난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 나는 뭔가 착각하고 있고, 속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경험해 보셨겠지만, 내가 고치려고 들면 들수록 상대방은 더욱 더 방어적이 되어가고, 더욱 더 반항합니다. 사춘기 아이들만 반항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서랍 문을 절대 닫는 일이 없는 아내 또는 남편 또는 아이들, 옷을 아무데나 벗어놓는 남편 또는 아내 또는 아이들, 차려주지 않으면 굶는 남편, 자동차 안에서 운전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화장하는 여자, 가족들 다 기다리게 하면서 항상 늦는 남편 또는 아내 등등 열거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각자 기록해보세요!)

그런데 그렇게 문제와 더불어 살려면 – 내가 누구인지 꼭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문제와 더불어 살다가 그 문제 속에서 나를 잃고 맙니다. 문제와 더불어 산다는 것이 체념하고 산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문제와 더불어 살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 많은 남편과 산다고 또는 그런 아내와 산다고 해서 – 주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한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겠어요? 문제를 보지 마시고, 그 문제 속에서도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세요, 쉽지 않겠지만…… 문제와 더불어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고, 문제와 사는 법을 찾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주님의 지혜를 구하게 되고 – 그러면서 점점 더 나는 주님의 여유로움, 주님의 그 자유함을 닮아갑니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그런 문제도 있으니,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분별의 은사를 더해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