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량리역 롯데백화점의 옆을 돌아가면 그것과는 또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소위 말하는 ‘청량리 588’.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유흥가의 여인들과 세상살이의 치열함으로부터 거리의 한 구석으로 떠밀려온 부랑자와 노숙인들. ‘청량리’하면 사람들이 보통 떠올리는 이들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그들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가나안교회다.

낡은 창과 벗겨진 페인트 칠. 김도진 목사(70)가 교회를 세우고 노숙인들과 함께 동고동락 해 온지도 벌써 21년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나안교회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의 최하층민이라 불리는 청량리의 노숙인들에게만큼은 그들의 생을 지탱해주는 따뜻한 거처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다.

매일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시간만 되면 가나안교회는 노숙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들에게 제공되는 식사는 하루에만 무려 1천여명 분. 하지만 신기하게 자원 봉사자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배식을 하는 이부터 먹고 남은 음식을 치우고 설거지하는 이들까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처럼 노숙인 생활을 전전했던 이들이었다.

“그저 밥만 퍼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죽어가는 이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어 사회로 돌려보내고 싶었습니다.” 김 목사는 한 지붕 아래서 190여명의 노숙인들과 함께 몸을 부대끼고 있다. 새벽 5시만 되면 가나안교회는 어김없이 찬양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이들이 이젠 청량리역으로 나가 직접 전도지를 돌리기도 한다. 대부분 저마다 자신의 일거리를 찾아 자리를 잡았으니 이젠 엄연한 사회인이다.

그렇게 매년 새 삶을 찾아 되돌아가는 이들이 수백명이다. 하지만 이들의 과거는 누구보다 어두웠다. 대부분이 폭력범, 전과자 출신들이다. 김 목사도 42세 때까지는 전국을 주름잡던 폭력배였다. 술과 주먹으로 살던 김 목사는 믿던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알거지가 됐다. 그는 자신을 파멸시킨 3명에게 복수한 후 자살하려다 우연히 기도원으로 발길을 옮기게 됐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이 “내가 너를 도우리라”고 말씀하시는 환상을 보고 폭력배 김도진은 그리스도의 종 김도진이 됐다. 그 후 자신과 같은 사람을 찾기 위해 김 목사는 무작정 청량리에 뛰어 들었다.

처음 그가 그리스도를 외치기 시작했을 땐 날마다 폭력배들이 ‘죽여 버리겠다’며 김 목사를 위협했다. “순교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나처럼 이들도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놀랍게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철야기도가 7년이 지났을까. 온갖 냉대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김 목사의 모습에 이들도 마음을 열어 지금은 지역 바자를 열어서 수백만원을 도와주기도 하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로 변모했다. “수없이 많은 깡패들이 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나갔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오병이어의 기적 아니겠습니까?”

▲노숙인들의 삶을 지탱해 주었던 가나안교회가 청량리588 지역 재개발로 인해 철거위기에 놓였다.ⓒ 송경호 기자

하지만 하루 1천여명의 식비를 마련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 21년을 오직 가장 비참한 곳에서 고통당하던 이들과 함께 한 가나안교회에 최근 도움의 손길이 조금씩 나타났다. 근처 시장 상인들이 조금씩 재료들을 내어놓아 부식비만큼은 걱정없게 됐다. 한 기업에서는 양념을 모두 제공하고 봉사활동까지 온다고 했다. 무엇이 그리 감사한지 김 목사의 입에서 ‘기적’ 이라는 단어가 연신 흘러나왔다.

그런 가나안교회 2백여명의 노숙인들이 하루 아침에 다시 길거리로 내던져질 상황에 처했다. 청량리588 지역 재개발로 인해 철거위기에 놓인 것이다. 한달 월세 340여만원조차 일거리가 있는 노숙인들의 감사헌금과 십일조로 마련하고 있는 처지에 새로운 거처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다. 후원금은 생각도 못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의 손길만 바라보고 달려온 길. “가난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늘 처음의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오히려 감사해 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으니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