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이 되면 애틀랜타에서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민족의 대 이동이 시작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립니다. 이 말은 교인들의 수평이동을 예고하는 말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처음 오신 분들 중에서 "교회 투어 중입니다"라고 천연덕스럽게 말씀하시는 분을 종종 보았습니다. "처치 샤핑한다"는 말도 사용합니다. 처음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용어 자체가 참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그리 많지도 않은 교민사회에서 교회를 옮겨다니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자로서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성도분들이 교회는 많지만 갈 교회가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교회가 도대체 뭐길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쌤플이다, 구원의 방주이다, 예배당이다, 공동체다, 여러 가지 신학적 용어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이민사회에서 한인교회는 보다 더 실제적이고 특별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많은 한인교포들의 삶을 위한 정보와 의사소통, 만남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이요, 한국인의 정서를 느끼고 나눌 수 있는 한인 커뮤니티의 출발이요 중심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 내내 빠다 냄새 가득한 말로 손님을 대하고 텁텁하고 느끼한 음식만
먹고 살다가 일요일날 같은 동포들과 만나서 구수한 된장찌개과 칼칼한 김치를 즐기며 고향의 언어로 교제를 나누는 곳, 그곳이 바로 교회가 아닐까요? 많은 분들이 교회를 옮겨 가셨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교회를 옮겨 오셨습니다. 그 분들 모두 하나같이 말씀하십니다. "상처 받았거든요." 교회 목사로부터, 교회 성도로부터 말의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 미국인교회 가신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국인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이 교회생활에 만족하시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시 한인교회를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민사회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한국말 쓰면 오히려 야단쳤습니다. 한국인의 정서, 세대가 바뀌어도 그리 많이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은 한인 2세들이 오히려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 한국말을 배우려고 합니다. 왜 한국말 안 가르쳐 줬냐고 부모에게 볼멘소리까지 합니다. 기가 막히죠. '그러게, 한국학교 제대로 보낼 껄...' 아쉬움이 듭니다. 대부분 한국학교가 교회에서 열립니다. 교회는 한국인의 얼을 지속시키는 민족교육기관이기도 합니다.

아,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교회에 잘 정착해서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까, 목회자의 고민입니다. 성경 요한 3서 1장 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과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민사회에서는 한국보다 비교적 직장이나 사업, 아이들 교육문제, 가족의 만남이 교회의 예배나 기도회보다 훨씬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사업이 잘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실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 설교, 기도회 등, 너무 종교중심적인 것만 추구하기보단, 풍요로운 삶속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것이 또한 삶의 예배자로서 누릴 신앙생활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어디 내 맘 알아주는 좋은 교회 없나요?"하는 교인들에 대하여, "어디 내 맘 알아주는 좋은 교인 없나요?"라고 똑같이 생각하는 목사가 되기보단, 그냥 있는 그대로 무조건 받아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교회와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혼이 잘되면 육신이 잘되고, 육신이 잘되면 영혼도 잘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로서 전, 한 해를 돌아보며, 전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 주장만 내세우고, 내 뜻만
고집했나 반성해봅니다. 교인들 마음을 더 잘 알아줬어야 하는데 말이죠. 복음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사랑입니다. 한국인의 사랑은 "정"입니다. 새해에는 "정"을 알고 "정"을 나누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고 결단해봅니다. 만리 타국 낯선 땅에 와서도 정 붙이고 살 수 있도록, 교회가 도와줘야하지 않겠습니까? 교인들 맘을 먼저 알아주면, 교인들도 목사의 맘을 언젠가 알아주겠지요? "당신의 맘을 알아주는 교회, 바로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새해에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