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이나 죽음도 “두려워 말라”
최근 연변 지역 선교사들 모임에 초청받아 “두려워 말라(Fear Not)”는 주제로 강연을 전하고 돌아온 이슬람권 선교사 차태광 목사 부부가 26일 선교지원그룹과의 모임을 가지고 3주 간의 선교여행 보고를 전달했다. 차 목사는 중앙아시아 선교 당시 예수를 전한다는 이유로 현지 경찰에 체포된 경험을 나누면서 “많은 선교사들이 공격받거나 체포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며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어떤 해함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을 것”을 권고하며 ‘이사야서 41장 10절’을 함께 나눴다.
연변 지역에는 북한 선교를 하는 러시아 국적의 선교사와 조선족 선교사를 비롯 한국인, 서구 지역 선교사들이 살고 있었다. 특히 중국 혹은 러시아 국적은 미국인에 비해 방북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이들의 북한 선교는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한 러시아인 선교사는 “감옥에 수감된 여성이 아기를 낳았는데, 출산한 후에 여성은 나오고 아기는 감옥에서 태어나 감옥 밖에 모르는 안타까운 신세가 되었다”라는 비유를 통해 “출산한 여성은 공산주의 체제라는 감옥에서 벗어난 ‘러시아’라면, 중국과 러시아로 인해 공산주의라는 감옥에서 태어난 아기 ‘북한’은 공산주의 밖에 모르는 안타까운 신세가 됐다”고 한탄했다.
이 선교사는 방북했을 때 북한 안내원과의 대화를 회고하며 북한 민족에 대한 사랑을 되새기기도 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의 북한 안내원이 나를 안내하던 중 ‘다른 나라 사람들은 북한을 다 싫어하지 않느냐’고 던지는 말에 ‘아니다. 나는 북한을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철통같이 굳어있던 안내원의 얼굴이 그 때부터 아이처럼 부드러워졌다.”
차 목사는 “모든 사람들은 사랑받기를 원한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사랑받지 못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북한 민족을 싫어한다는 것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북한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태도에 언 마음이 녹아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일 사망 1주일 전에 북한 접경 지역 두만강변에서 “예레미야 3장14~15절”을 선포하며 기도하기도 했던 차 목사 부부는 “양 친부가 모두 분단 전 월북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며 “김정일은 지난 10년 간 시베리아 노동캠프에 북한 주민들을 팔아서 외화를 챙겼다는 것이 최근 한 미국 기자를 통해 밝혀졌다. 하나님은 북한을 위한 참 목자를 예비하고 계신다. 중요한 시점에서, 북한에 하루 빨리 자유가 임하길 함께 기도하자”고 부탁했다.
우상숭배가 남북분단의 영적 계기
차 목사는 이날 선교보고에서 남북 분단의 계기가 영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우상숭배(신사참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일본 정부에 굴복하고 1938년 9월 9일 평양 한 교회에서 모인 총회에서 신사참배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정확히 10년 뒤인 1948년 9월 9일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북한 내각이 수립됐다”며 “같은 날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신사참배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차 목사는 “평양대부흥 사건으로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도 불리던 북한이었지만, 신사참배 결의를 통해 하나님의 신이 북한을 떠났고, 10년 후 같은 날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로 추대됐다. 우상숭배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타협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가 된 70년을 생각할 때, 신사참배를 결의한 1938년 이후 70년이 되는 2018년은 의미가 깊은 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연변을 비롯해 한국, 북경, 동경으로 약 3 주간의 선교여행을 다녀온 차 선교사 부부는 서울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할렐루야교회 등 대형교회를 방문해 이슬람 선교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권고하고 후원교회인 남서울평천교회를 방문해 교제했다. 이후 연변 지역을 방문해 선교사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북경을 돌아보고 지하교회 목회자들과 만났다. 또 차 선교사 부부의 형제가 선교사로 있는 일본의 교회들을 돌아보고, 무슬림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돌아왔다.
차 목사 부부는 “3주 간이었지만 3달 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시간이었다. 북한의 공산주의가 강제로 믿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슬람과의 공통점도 많이 있음을 발견했다”며 “북한의 개방이 지연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인터넷이나 현대 문화에 젖지 않고 매일 모이고 기도하는 사도행전 같은 교회모델을 만드는 텃밭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북한 선교에 대한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차태광 목사는 코넬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던 중 선교의 부르심을 받고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는 대사가 되기로 결심, 이후 10년 간 전기엔지니어로 종사한 후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롬비아성경신학교에서 선교사로 나갈 훈련을 받으며 이문화간 연구로 석사를 받았다. 그 후 당시 7살, 6살 3살이었던 자녀들을 데리고 중앙아시아 선교사로 파송돼 10년간 교회세우기에 주력했다. 현재 차 선교사 부부는 워싱턴 지역의 무슬림을 전도하는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최근 연변 지역 선교사들 모임에 초청받아 “두려워 말라(Fear Not)”는 주제로 강연을 전하고 돌아온 이슬람권 선교사 차태광 목사 부부가 26일 선교지원그룹과의 모임을 가지고 3주 간의 선교여행 보고를 전달했다. 차 목사는 중앙아시아 선교 당시 예수를 전한다는 이유로 현지 경찰에 체포된 경험을 나누면서 “많은 선교사들이 공격받거나 체포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며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어떤 해함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을 것”을 권고하며 ‘이사야서 41장 10절’을 함께 나눴다.
연변 지역에는 북한 선교를 하는 러시아 국적의 선교사와 조선족 선교사를 비롯 한국인, 서구 지역 선교사들이 살고 있었다. 특히 중국 혹은 러시아 국적은 미국인에 비해 방북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이들의 북한 선교는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한 러시아인 선교사는 “감옥에 수감된 여성이 아기를 낳았는데, 출산한 후에 여성은 나오고 아기는 감옥에서 태어나 감옥 밖에 모르는 안타까운 신세가 되었다”라는 비유를 통해 “출산한 여성은 공산주의 체제라는 감옥에서 벗어난 ‘러시아’라면, 중국과 러시아로 인해 공산주의라는 감옥에서 태어난 아기 ‘북한’은 공산주의 밖에 모르는 안타까운 신세가 됐다”고 한탄했다.
이 선교사는 방북했을 때 북한 안내원과의 대화를 회고하며 북한 민족에 대한 사랑을 되새기기도 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의 북한 안내원이 나를 안내하던 중 ‘다른 나라 사람들은 북한을 다 싫어하지 않느냐’고 던지는 말에 ‘아니다. 나는 북한을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철통같이 굳어있던 안내원의 얼굴이 그 때부터 아이처럼 부드러워졌다.”
차 목사는 “모든 사람들은 사랑받기를 원한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사랑받지 못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북한 민족을 싫어한다는 것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북한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태도에 언 마음이 녹아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일 사망 1주일 전에 북한 접경 지역 두만강변에서 “예레미야 3장14~15절”을 선포하며 기도하기도 했던 차 목사 부부는 “양 친부가 모두 분단 전 월북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며 “김정일은 지난 10년 간 시베리아 노동캠프에 북한 주민들을 팔아서 외화를 챙겼다는 것이 최근 한 미국 기자를 통해 밝혀졌다. 하나님은 북한을 위한 참 목자를 예비하고 계신다. 중요한 시점에서, 북한에 하루 빨리 자유가 임하길 함께 기도하자”고 부탁했다.
우상숭배가 남북분단의 영적 계기
차 목사는 이날 선교보고에서 남북 분단의 계기가 영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우상숭배(신사참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일본 정부에 굴복하고 1938년 9월 9일 평양 한 교회에서 모인 총회에서 신사참배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정확히 10년 뒤인 1948년 9월 9일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북한 내각이 수립됐다”며 “같은 날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신사참배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차 목사는 “평양대부흥 사건으로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도 불리던 북한이었지만, 신사참배 결의를 통해 하나님의 신이 북한을 떠났고, 10년 후 같은 날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로 추대됐다. 우상숭배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타협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가 된 70년을 생각할 때, 신사참배를 결의한 1938년 이후 70년이 되는 2018년은 의미가 깊은 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연변을 비롯해 한국, 북경, 동경으로 약 3 주간의 선교여행을 다녀온 차 선교사 부부는 서울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할렐루야교회 등 대형교회를 방문해 이슬람 선교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권고하고 후원교회인 남서울평천교회를 방문해 교제했다. 이후 연변 지역을 방문해 선교사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북경을 돌아보고 지하교회 목회자들과 만났다. 또 차 선교사 부부의 형제가 선교사로 있는 일본의 교회들을 돌아보고, 무슬림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돌아왔다.
차 목사 부부는 “3주 간이었지만 3달 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시간이었다. 북한의 공산주의가 강제로 믿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슬람과의 공통점도 많이 있음을 발견했다”며 “북한의 개방이 지연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인터넷이나 현대 문화에 젖지 않고 매일 모이고 기도하는 사도행전 같은 교회모델을 만드는 텃밭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북한 선교에 대한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차태광 목사는 코넬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던 중 선교의 부르심을 받고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는 대사가 되기로 결심, 이후 10년 간 전기엔지니어로 종사한 후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롬비아성경신학교에서 선교사로 나갈 훈련을 받으며 이문화간 연구로 석사를 받았다. 그 후 당시 7살, 6살 3살이었던 자녀들을 데리고 중앙아시아 선교사로 파송돼 10년간 교회세우기에 주력했다. 현재 차 선교사 부부는 워싱턴 지역의 무슬림을 전도하는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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