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원태씨는 이왕 은행에서 일하는 것 직접 은행상품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알아야 고객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새 상품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그 내용을 주의 깊게 살폈습니다. 이전 상품과의 차별점, 장점, 단점 등을 비교, 분석해보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직원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청원경찰 주제에 신상품의 내용을 알아서 뭐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한원태씨는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밥을 사고, 커피를 사면서 끝까지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한원태씨는 정식 직원들보다 더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은행창구에서 기다리지 않고 청원경찰 한원태씨에게 상담 받으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날마다 펼쳐졌습니다.
그가 정규 직원이 아닌 것을 알게 된 고객들은 은행에 몰려와 한원태씨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 줄 것을 청원했습니다. 지점장으로서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 동안의 근무성과를 보면 벌써 채용하고도 남았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졸이라는 학력에 파견직원이라 다른 사람과의 형평성을 깨트릴 수 없다’라는 이유로 본사에서 허락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고객들이 정식 직원 추천서와 탄원서를 가지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추천서에는 무려 3백여 명의 고객 서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 은행으로부터 고액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고객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점장은 새벽 네 시에 은행장의 집 앞으로 갔습니다. 지점장은 출근하려는 은행장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S은행 석수지점에 발을 들여놓은 해로부터 꼬박 8년만에 한원태씨는 드디어 정식 직원이 되었습니다. 8년 동안 안양 석수 지역의 주민들과 동고동락한 결과였습니다.
그의 대학노트에 숨겨진 1300여명의 고객리스트는 그의 친절 비밀이 메모에 있음을 말해 주고있습니다. 만나는 고객의 인상을 잊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노트에 기록해두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한 번 마주친 사람을 잘 기억해준다면 기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한원태씨는 날마다 만나는 고객들의 인상을 떠올려보며 기억을 되새김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원태씨는 고객이 하는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3개월 후에 적금이 마감된다고 언뜻 이야기를 한 고객에게 3개월 후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고객은 좋은 상품을 추천해주고자 전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했다고 합니다. 어찌 그의 고객이 되지 않겠습니까?
석수 지역 인근의 안양유원지 상인들이 전혀 자신의 지점에 찾지 않는 점이 궁금했습니다. 지점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거의 매일 가다시피하면서 거래를 트고자 노력했습니다.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그는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상인들을 위해서 거의 매일 허드렛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상인들의 반응은 차가움을 넘어 멸시에 가까웠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S은행의 불친절에 화가 나 있었던 것입니다.
상인들과 가까이 있다 보니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한원태씨는 일주일에 세 번씩 자동차에 잔돈을 싣고 유원지로 갔습니다. 만 원짜리, 천 원짜리 뿐만 아니라 오백 원, 백 원짜리 동전까지 잔뜩 싣고 가서 상인들이 원하는 만큼 바꿔주었습니다. 어느새 상인들은 이제 그에게 재테크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원태씨는 상인들로부터 통장과 도장을 받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금융 업무까지 대신 처리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원지의 150여 명의 상인들이 모두 한원태씨의 고객이 되었습니다. 유원지의 상인들을 통해서만 모두 56억의 예금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화려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 한원태는 달랐습니다. 무의탁 독거노인들을 틈틈이 도와드리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노인들의 금융 조언자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2천만원을 장판 밑에 깔아놓고 살아가던 할머니를 은행에 맡기도록 설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자만으로도 생활하게 되었다며 기뻐했습니다.
또 한 번은 2천만원의 적금을 은행으로부터 10년째 찾지 못하고 잊어버린 할머니에게 돈을 돌려드렸습니다. 처음에 해당 은행에서는 1년간의 이자만을 지급하려 했습니다. 한원태씨는 자신의 금융지식을 발휘해서 결국 10년치의 모든 이자를 받아냈습니다. 이자만 3천만원이었습니다.
가족 같이 노인들을 보살피다 보니 노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남기며 자식보다 한원태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고객이 자신의 꿈을 맡기고 싶어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한원태씨였습니다.
한원태씨에게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교훈 한마디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원태씨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외모가 이래서 안돼’, ‘학력이 없어서 안돼’, ‘인맥이 없어서 안돼’라고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자기 자신부터 바르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금융권의 정년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퇴직을 앞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앞으로 먹고 살 일에 대해서 고민이 많은 반면에 퇴직자 한원태씨는 더 바빠질 것 같다고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자신이 겪어온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은행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결과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어진 조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 때문입니다. 주어진 조건이 같다면 얼마나 부지런히 심었느냐가 각자의 수확의 양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직원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청원경찰 주제에 신상품의 내용을 알아서 뭐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한원태씨는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밥을 사고, 커피를 사면서 끝까지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한원태씨는 정식 직원들보다 더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은행창구에서 기다리지 않고 청원경찰 한원태씨에게 상담 받으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날마다 펼쳐졌습니다.
그가 정규 직원이 아닌 것을 알게 된 고객들은 은행에 몰려와 한원태씨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 줄 것을 청원했습니다. 지점장으로서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 동안의 근무성과를 보면 벌써 채용하고도 남았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졸이라는 학력에 파견직원이라 다른 사람과의 형평성을 깨트릴 수 없다’라는 이유로 본사에서 허락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고객들이 정식 직원 추천서와 탄원서를 가지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추천서에는 무려 3백여 명의 고객 서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 은행으로부터 고액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고객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점장은 새벽 네 시에 은행장의 집 앞으로 갔습니다. 지점장은 출근하려는 은행장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S은행 석수지점에 발을 들여놓은 해로부터 꼬박 8년만에 한원태씨는 드디어 정식 직원이 되었습니다. 8년 동안 안양 석수 지역의 주민들과 동고동락한 결과였습니다.
그의 대학노트에 숨겨진 1300여명의 고객리스트는 그의 친절 비밀이 메모에 있음을 말해 주고있습니다. 만나는 고객의 인상을 잊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노트에 기록해두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한 번 마주친 사람을 잘 기억해준다면 기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한원태씨는 날마다 만나는 고객들의 인상을 떠올려보며 기억을 되새김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원태씨는 고객이 하는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3개월 후에 적금이 마감된다고 언뜻 이야기를 한 고객에게 3개월 후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고객은 좋은 상품을 추천해주고자 전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했다고 합니다. 어찌 그의 고객이 되지 않겠습니까?
석수 지역 인근의 안양유원지 상인들이 전혀 자신의 지점에 찾지 않는 점이 궁금했습니다. 지점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거의 매일 가다시피하면서 거래를 트고자 노력했습니다.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그는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상인들을 위해서 거의 매일 허드렛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상인들의 반응은 차가움을 넘어 멸시에 가까웠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S은행의 불친절에 화가 나 있었던 것입니다.
상인들과 가까이 있다 보니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한원태씨는 일주일에 세 번씩 자동차에 잔돈을 싣고 유원지로 갔습니다. 만 원짜리, 천 원짜리 뿐만 아니라 오백 원, 백 원짜리 동전까지 잔뜩 싣고 가서 상인들이 원하는 만큼 바꿔주었습니다. 어느새 상인들은 이제 그에게 재테크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원태씨는 상인들로부터 통장과 도장을 받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금융 업무까지 대신 처리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원지의 150여 명의 상인들이 모두 한원태씨의 고객이 되었습니다. 유원지의 상인들을 통해서만 모두 56억의 예금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화려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 한원태는 달랐습니다. 무의탁 독거노인들을 틈틈이 도와드리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노인들의 금융 조언자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2천만원을 장판 밑에 깔아놓고 살아가던 할머니를 은행에 맡기도록 설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자만으로도 생활하게 되었다며 기뻐했습니다.
또 한 번은 2천만원의 적금을 은행으로부터 10년째 찾지 못하고 잊어버린 할머니에게 돈을 돌려드렸습니다. 처음에 해당 은행에서는 1년간의 이자만을 지급하려 했습니다. 한원태씨는 자신의 금융지식을 발휘해서 결국 10년치의 모든 이자를 받아냈습니다. 이자만 3천만원이었습니다.
가족 같이 노인들을 보살피다 보니 노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남기며 자식보다 한원태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고객이 자신의 꿈을 맡기고 싶어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한원태씨였습니다.
한원태씨에게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교훈 한마디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원태씨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외모가 이래서 안돼’, ‘학력이 없어서 안돼’, ‘인맥이 없어서 안돼’라고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자기 자신부터 바르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금융권의 정년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퇴직을 앞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앞으로 먹고 살 일에 대해서 고민이 많은 반면에 퇴직자 한원태씨는 더 바빠질 것 같다고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자신이 겪어온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은행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결과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어진 조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 때문입니다. 주어진 조건이 같다면 얼마나 부지런히 심었느냐가 각자의 수확의 양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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