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부가 싸움이 극에 달했을 때 아내가 남편을 향하여 소리 쳤다. “차라리 악마와 결혼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남편 왈 “그것은 불가능 할 걸, 오빠와 결혼은 법으로 금지야!”
세상의 부부들이 다 이와 같지는 않겠지만 금슬 좋은 부부를 찾기 어려운 때가 되었다. 워싱턴이 낳은 참 선교사 박윤석 선교사의 아내 고 박경순 사모가 지난 11월 10일(목) 저녁 현지에서 별세하여 추모하는 예배가 12월 4일(주일) 워싱턴의 한 교회에서 열린다고 한다.
탄자니아 탕가(Tanga) 지역에서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신학교 운영 등의 사역을 펼쳐왔던 박윤석 선교사의 아내이자 그녀 자신이 선교사였던 고 박경순(Esther Park) 사모는 요즘 보기드문 순애보의 일생을 살았던 분이다.
듣는 바에 의하면 故 박 선교사는 지난해 초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마친 후 워싱턴 지역에서 한 동안 요양중이었다. 그런데 최근 탄자니아에 있던 남편 선교사가 리빙스톤 중고등학교 개교를 앞두고 학생 모집차 순회 중에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세바퀴 뒹구는 사고를 당해 이를 돕고자 현지에 방문했다가 갑작스런 저혈압으로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폐암조차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그녀의 선교열정을 어쩌지 못했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그 아름다움은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가 그 순애보의 일생을 남편 곁에서 불살랐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선교를 수행함에 있어 순교로 그 일생을 헌신했던 것이다.
나와 박윤석 선교사 내외와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그들을 워싱턴이 낳은 훌륭한 선교사로 자랑스럽게 때로는 애틋하게 생각하면서 기도해왔던 것 뿐이다. 내게 있어 박윤석 선교사에 대한 기억은 눈떨림현상이 심해 언제나 눈을 심하게 깜박이면서도 얼마나 명랑한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항상 유쾌하게 했던 전도 유망한 젊은 목사로 남아있다.
십 년 전 교협회장으로 있을 때 ‘워싱턴이 파송한 선교사를 위한 기도회’를 주관한 적이 있다. 그때 그곳을 방문했던 후원자의 영상보고가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4월 워싱턴기독일보에 ‘워싱턴의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제하의 글을 통해 그들을 돕는 아름다운 기도모임을 격려했던 것도 생각난다.
그들이 워싱턴을 잠깐씩 방문할 때 마다 식사초대를 하였으나 전광석화처럼 사라져 버리고는 해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더 아쉬움으로 진하게 남는다. 그들이 워싱턴에서 계속 목회하였다면 워싱턴은 조금 더 아름다웠을 것이 분명하다.
사랑받는 아내로, 가장 훌륭했던 선교 동역자로 그리고 두 아들을 깨끗하게 길러낸 어머니로, 그 자신이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면서 목숨까지 바친 고 박경순 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청빈한 선교사의 일생을 살다가 간 그녀의 순애보는 워싱턴 한인사회와 교계에 오래 오래 회자되며 각인될 것이다.
세상의 부부들이 다 이와 같지는 않겠지만 금슬 좋은 부부를 찾기 어려운 때가 되었다. 워싱턴이 낳은 참 선교사 박윤석 선교사의 아내 고 박경순 사모가 지난 11월 10일(목) 저녁 현지에서 별세하여 추모하는 예배가 12월 4일(주일) 워싱턴의 한 교회에서 열린다고 한다.
탄자니아 탕가(Tanga) 지역에서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신학교 운영 등의 사역을 펼쳐왔던 박윤석 선교사의 아내이자 그녀 자신이 선교사였던 고 박경순(Esther Park) 사모는 요즘 보기드문 순애보의 일생을 살았던 분이다.
듣는 바에 의하면 故 박 선교사는 지난해 초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마친 후 워싱턴 지역에서 한 동안 요양중이었다. 그런데 최근 탄자니아에 있던 남편 선교사가 리빙스톤 중고등학교 개교를 앞두고 학생 모집차 순회 중에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세바퀴 뒹구는 사고를 당해 이를 돕고자 현지에 방문했다가 갑작스런 저혈압으로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폐암조차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그녀의 선교열정을 어쩌지 못했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그 아름다움은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가 그 순애보의 일생을 남편 곁에서 불살랐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선교를 수행함에 있어 순교로 그 일생을 헌신했던 것이다.
나와 박윤석 선교사 내외와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그들을 워싱턴이 낳은 훌륭한 선교사로 자랑스럽게 때로는 애틋하게 생각하면서 기도해왔던 것 뿐이다. 내게 있어 박윤석 선교사에 대한 기억은 눈떨림현상이 심해 언제나 눈을 심하게 깜박이면서도 얼마나 명랑한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항상 유쾌하게 했던 전도 유망한 젊은 목사로 남아있다.
십 년 전 교협회장으로 있을 때 ‘워싱턴이 파송한 선교사를 위한 기도회’를 주관한 적이 있다. 그때 그곳을 방문했던 후원자의 영상보고가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4월 워싱턴기독일보에 ‘워싱턴의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제하의 글을 통해 그들을 돕는 아름다운 기도모임을 격려했던 것도 생각난다.
그들이 워싱턴을 잠깐씩 방문할 때 마다 식사초대를 하였으나 전광석화처럼 사라져 버리고는 해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더 아쉬움으로 진하게 남는다. 그들이 워싱턴에서 계속 목회하였다면 워싱턴은 조금 더 아름다웠을 것이 분명하다.
사랑받는 아내로, 가장 훌륭했던 선교 동역자로 그리고 두 아들을 깨끗하게 길러낸 어머니로, 그 자신이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면서 목숨까지 바친 고 박경순 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청빈한 선교사의 일생을 살다가 간 그녀의 순애보는 워싱턴 한인사회와 교계에 오래 오래 회자되며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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