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교회 허연행 담임 목사와 시니어 30여명은 지난 주말 특별한 곳을 다녀왔다. 바로 한국 초기선교사들의 후손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작고 조용한 마을 블랙마운틴이다.

방문단은 선교사 후손들을 만나고 장로교회당에 모여 그들의 한국 시절을 듣고 나누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전라도 광주태생으로 전주예수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6.25 전쟁 당시 한국인들을 돌봤던 ‘왕언니’ 마리엘라(한국명 부마리아, 88세)와 북한 선교의 개척자 유진 벨의 외손녀로 전남 순천 결핵재활원에서 30년이상 결핵퇴치사업에 기여, 얼마전 국민훈장을 받기도 한 베티(한국명 인애자, 84세) 등이 함께했다.

이들은 두 시간에 걸친 대화 후 ‘예수 사랑하심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아리랑’ 등을 함께 부르며 인종과 언어를 초월한 하나됨을 경험했다.

이후 애틀랜타에 도착한 방문단은 “평생을 바치고도 은퇴 후 여생 마저 한국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분들을 뵈니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앞을 가립니다”, “이제 나도 내 나이에서 10년을 빼어 더 젊은 마음으로 무언가 뜻있는 일을 진지하게 궁리해봐야겠습니다” 등의 대화를 나누며 은혜을 나눴다.

다음은 허연행 목사의 방문 후기 – 한국 초기 선교사 후손 마을 다녀와서

▲베티 여사(84세) 그리고 그의 막내 아들 제임스 장로(맨 오른쪽 걸어오는 이)
구한말 조선이 여러 모로 어려웠던 시절, 잘 알려지지도 않은 그 땅을 찾아가 젊음을 바쳐 복음을 전한 미국인 선교사들의 헌신적 삶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초기선교사들의 후손이 지금 미국 땅 어딘가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여전히 한국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애팔래치안 산맥이 흐르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작고 조용한 마을 블랙마운틴이 바로 그곳입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후손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이 중에는 4대째 선교에 임하는 사역자들도 있습니다. 지난 주말 교회 시니어들 30여분과 함께 이들을 방문하고 한 장로교회당에 모여 그분들의 한국 시절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 중에 탁월한 리더십으로 ‘왕언니’ 역할을 하고 있는 마리엘라(한국명 부마리아, 88세) 할머니는 전라도 광주 태생으로 남편과 함께 경주 문화중ㆍ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전주예수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6ㆍ25 전쟁 당시 외국인 대피 명령에도 불구하고 부모 잃고 떠도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한국을 떠나지 않았던 분으로, 요즘도 뜨개질로 인형을 만들어 아프리카 말라위 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베티(한국명 인애자, 84세) 할머니는 북한 선교의 개척자로 잘 알려진 유진 벨의 외손녀로, 전남 순천에서 결핵재활원을 운영하면서 자녀들을 한국 아이들 틈에서 키웠는데, 30년 이상 결핵퇴치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얼마 전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남한에서 성장한 그의 자녀들 가운데는 은 한국이 오늘날과 같이 경제적으로 우뚝 서게 되자 이제는 그 열정을 북한 선교에 쏟고 있는데, 이곳 산골 마을에 있는 베티 여사의 집은 미국을 방문하는 북한 대표단이 머물다 가기도 하는 등 남북한 인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장남 스티브(한국명 인세반ㆍ60)는 한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토종으로, 1994년 외증조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유진벨 재단을 설립, 5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김일성 주석도 수차례 만난 북한 전문가로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후손 마을의 ‘이장’ 격인 마리엘라 여사(88세)
또 차남 존(한국명 인요한ㆍ51)은 한국에서 태어나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국 여성을 부인으로 맞이하고 현재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국 토종’입니다. 이밖에도 베티 린튼 여사의 또 다른 자녀들은 1995년 북한주민을 돕기 위해 인도주의단체인 ‘조선의 기독교 친구들(Christian Friends of Korea:CFK)'를 설립해 의료와 식량, 농기계, 비상구호품, 우물개발기술 전수 등 인도적 지원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는데, 그날 우리가 만났던 막내 제임스 장로는1995년부터 지금까지 북한 지역 곳곳에 깨끗한 지하수를 끌어올려 마시게 하는 ‘웰스프링 북한선교회’ 사역을 펼치고 있는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유창한 한국말과 영어로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정감 어린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그분들과 헤어지기 전에 “예수 사랑하심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리고 “아리랑”을 함께 부르면서 인종과 언어를 초월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이곳을 방문하신 분들이 평균 연령 70세의 노령에다가 애틀랜타에서 이곳까지 편도 세 시간 반 왕복 거의 여덟 시간의 짧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분도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보이지 않아서 신기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90세, 100세에 가까운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교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 ‘영원한 현역’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 그런지, ‘노년의 삶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나도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거룩한 부담감 때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애틀랜타 도착 후 시내 한 식당에 모여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생을 바치고도 은퇴 후 여생 마저 한국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분들을 뵈니 웬지 부끄러운 생각이 앞을 가리웁니다.’ ‘이제 나도 내 나이에서 10년을 빼어 더 젊은 마음으로 무언가 뜻있는 일을 진지하게 궁리해봐야 하겠습니다’ 등의 소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제 마음 속에도 다음과 같은 상념이 창공의 솔개처럼 맴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한국에서(in Korea) 살았지만 당신들은 정녕 한국을 위하여(for Korea) 사신, 정녕 우리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분들입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진 빚을 갚는 최선의 길은 단지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것(pay back)이 아니라, 당신들이 우리에게 해준 것과 똑같이 이제는 우리가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다른 족속과 방언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는(pay forward) 일일 것입니다’ 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