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가 워싱턴에 심겨진 지 20년이 되었다.

사람들은 “세상이 악하다. 말세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신문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의외로 선한 사람이 많다. 착하게 살려는 사람이 많다. 20주년을 맞이하여 기록을 정리해 보니 10년 이상 매월 후원금을 보내 온 사람이 33명이나 되었다. 태반은 내가 만난 적도 없고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이다. 장애인을 섬기는 단체라는 것을 알고 한결같이 후원한 사람들을 볼 때 고개가 숙여진다. 세상이 악하다 해도 이런 선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10년 이상 매주 집회에 나와 장애우를 섬긴 사람들도 21명이나 되었다. 시간이 돈인 미국 생활에서 10년을 넘게 한결같이 섬기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 세상에는 참 고마운 분들이 많다. 내 물질, 시간 안 아까운 사람이 없을 텐데 긴 세월동안 섬겨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고등학생 때 밀알에 와서 40을 바라보는 분들도 있다. 초기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섬겨 오신 분들도 있다.

밀알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신학대학 교정에서 한 시각장애인을 만났다. 친구로 지내며 안내하며 도왔다. 대학 3학년 가을에 밀알선교단을 세우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거부감을 나타냈다. 선교 단체가 많은데 또 무슨 선교단체를 세우려느냐고. 그의 대답은 선교단체가 많지만 모두 일반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장애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단체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79년도에 밀알이 한국에서 세워졌고 워싱턴에서는 12년 뒤 1991년에 밀알이 세워졌다. 현재 세계 100여 곳이 넘는 곳에서 밀알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섬기고 있다. 밀알을 섬기면서 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은 험한 세상, 악한 세상에서 참 선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스스로 찾아와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분들이 많다. 어떤 대가나 보상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좋은 결과를 얻는다든지,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분은 장애인 사역은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고 했다. 수고의 대가나 보상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는 선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 되었다. 아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장애인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지 모르겠다.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다. 이 공동체야 말로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하나님의 나라의 진정한 모습이다.

세상이 악한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 속에서도 선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며 용기를 갖는다. 착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 좋은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할 때, 외롭지 않다. 든든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