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그리스도의 사역-3)
그리스도의 사역은 예수님의 비하, 낮아지심과, 승귀, 높아지심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예수님의 비하는 믿는 사람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고, 예수님의 승귀는 믿는 사람들의 의로운 삶과 직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를 신앙생활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낮아지심, 곧, 성육신,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신 세상에서의 의로운 삶, 무죄하시지만 가장 불의한 죄인처럼 십자가에 달려 처형 당하심, 장사되심으로 지옥의 형벌을 맛보신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친히 믿는 자 대신 살아드린 삶이었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로서는 살 수 없는 의의 삶을 대신 사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는 친히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처럼 죄의 형벌을 대신 질머지심으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죄인들의 죄를 용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을 믿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로마서 8장 1절)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비하를 믿는 신앙은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사죄의 은총이 베풀어짐과 더불어 죄인에 대한 정죄가 없고, 그에 상응하는 죄의 형벌과 심판이 없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어 준다.

둘째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높아지심, 곧, 부활, 승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 앞으로 재림하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시고 의롭고 거룩한 새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라고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승귀를 믿는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 이미 새 생명,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고 (요한복음 3장 26절), 그 생명의 역사를 따라 의롭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어졌다는 것을 (요한일서 3장 9절) 인식하도록 만들어 준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 할 때 비로소 죄인이 죄성을 따라 사는 삶을 중단하고 성령의 역사를 따라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를 따라 행하는 사람이라야 율법의 요구를 충족 시키는 삶을 살 수 있다 (로마서 8장 4절).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믿는 사람의 구원이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존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비하 사역을 통하여 믿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도, 그리스도의 승귀 사역을 통하여 믿는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살수 있도록 능력을 입혀 주시는 것도, 모두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의 구원의 성격이 믿는 사람의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이미 있었던 객관적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영적 연합을 믿는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물론 믿는 사람이 역사적으로 이미 있었던 객관적 구속 사역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영적 연합을 개인의 삶에 주관적으로 적용하여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만들어 갖게 되는 것도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무도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그러므로 믿는 사람의 구원에 대한 주관적 경험이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역사적으로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객관적 구속사역과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영적 연합이 중생한 영혼의 의식 속에 인식되어지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속사람의 기능적인 역할을 따라 겉사람의 오관에 미치는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오관을 통하여 나타날 때, 어떤 사람에게는 기쁜 감정의 표현인 웃음과 행복한 표정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슬픔과 통분한 감정의 표현인 슬픔과 애곡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감정적 동요는 없어 보일지라도 의지적 표현인 단호한 결단과 결심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다양성은 각 개인의 성품과 기질, 죄의 대한 인식의 정도나 구속의 은총에 대한 깨달음 등의 다양한 이해와 깊이에 따라 속사람에게서 일어난 내적 변화가 겉사람으로 전달되어 나타나는 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외적 현상이 어떤 사람에게는 드라마틱한 구원 체험을 한 것으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밤 하늘에 한 줄기 희미한 선을 긋고 사라진 별똥별의 흔적처럼 막연한 것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가 되었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라고 하는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구속 사역과 그리스도와 신비한 영적 연합을 믿는 내적 신앙이 오관을 통하여 나타나는 외적 현상에 우선한다고 하는 것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믿음생활을 하게 하는 지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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